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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의사들이 '진짜 의사' 조롱하는 기막힌 상황[이승환의 노캡]

책임감과 사명감 사이…진짜 의사는 누구일까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4-03-24 06:00 송고 | 2024-04-01 12:34 최종수정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료 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22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복도를 걷고 있다. 2024.3.22/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료 공백이 길어지는 가운데 22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복도를 걷고 있다. 2024.3.22/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사명감과 책임감은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사전을 보면 사명감은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책임감은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두 단어 모두 임무에 진심인 마음 또는 마음가짐을 뜻한다.

일상에서는 사명감이 더 무거운 의미로 사용된다. 기자의 사명감, 경찰의 사명감, 의사의 사명감이란 표현이 시사하듯 사명감이라는 단어는 '숭고함'도 자아낸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에 맞서 사명감으로 취재했다'는 식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사명감이 있는 기자들은 실제로 권력형 비리를 파헤쳐 특종을 터트리곤 한다. 문제는 일부 기자가 아집과 독선에 빠진다는 점이다.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정의 구현을 가로막는 타도 대상'으로 간주하는 사례를 적잖게 봐왔다.

자신만의 정의 기준으로 미리 결론을 내리고 그에 맞춰 취재내용을 취사선택해 기사의 논리를 전개하는 식이다. 이럴 경우 기사는 침소봉대돼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자신은 선이며 상대는 악으로 규정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5년째 출입하는 경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다. 지난 2020년 전후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 2022년 경찰국 사태 때 사명감을 입에 올리는 경찰이 부쩍 많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경찰 발전에 헌신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부는 결국 정치판을 기웃거리거나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숭고한 사명감을 스스로 훼손했다. 경찰 내 평가도 좋지 않았다. 본인 일은 제대로 하지 않아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언론에 나와 정의로운 척한다는 하소연이 그들 주변에서 나왔다.
사명감과 달리 책임감은 어딘가 '직업인스럽다'는 느낌을 풍기는 단어다. 자신의 일을 그저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인상이다. 조직 내에서 책임감을 요구하다가 꼰대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 반면 공개적으로 사명감을 외치는 이들은 한쪽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의료계 집단사직 파행 초기부터 의사들은 '사명감'을 강조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의협) 전 회장은 지난 9일 경찰에 출석하면서 "이렇게 많은 의사가 정부의 대규모 의사 증원 정책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이 정책이 대한민국 의료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고, 이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 전 회장은 의협 소속인 주수호 비상대책위 언론홍보위원장·박명하 비대위 조직위원장·김택우 비대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인 임현택 씨과 함께 전공의 집단 사직을 부추기고 집단행동을 교사·방조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의사들이 '사명감'을 고수하는 동안 '빅 5' 등 주요 병원 안은 텅텅 빌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아픈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난 4일 기준 사직서를 제출한 7000명 이상의 전공의가 업무에 복귀하지 않아 환자들이 수술이나 진료를 받기 어려운 해당 병원으로 가지 않고 있다. 수익 구조에 타격을 받은 병원은 간호사 등 일반직 직원에게 '무급 휴가' 신청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사이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환자 곁을 지키는 전공의들을 '참의사'라고 조롱하고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병원을 떠나지 않고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책임감 있는 자세이다. 평범하지만 책임감 있는 사회구성원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갔고 앞으로도 나아갈 것이다.

이런 의사들이 환자 곁에 남아 있기에, '사직 대란'에도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사명감의 의미를 훼손하는 무책임한 의사들이 책임감 있는 '진짜 의사들'을 비아냥대는 것을 보면서 의료 개혁이 왜 시급한지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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