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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혼 금지' 4촌 이내 축소 논란…정말 '막장 드라마'일까

[서상혁의 팩트프레소]법무부 용역 보고서 논란…연내 해법 찾아야
가족관계 규범 붕괴 vs 달라진 시대상 반영해야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2024-03-04 05:30 송고 | 2024-03-07 16:26 최종수정
편집자주 현대 사회를 일컬어 '인포데믹(infodemic)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번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정보 중 '올바른 정보'를 더 많이, 더 자주 공급하는 것이죠. 뉴스1은 '팩트프레소' 코너를 통해 우리 사회에 떠도는 각종 이슈와 논란 중 '사실'만을 에스프레소처럼 고농축으로 추출해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제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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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8촌 이내 혈족으로 금지하는 배우자의 범위를 4촌 이내로 좁히는 내용을 담은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부 용역 보고서는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높은 탓에 많은 이들이 '정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법무부는 "친족간 혼인 금지에 관한 기초조사를 위해 다양한 국가의 법제 등에 대해 전문가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신중하게 검토 중으로 아직 법무부의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올 연말까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하는 만큼 논란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족관계 규범이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반면 5촌 이상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고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헌재 "근친혼 금지 조항은 합헌, 무효 조항은 헌법 불합치"

이 보고서는 2022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시작합니다. A 씨는 2016년 6촌과 결혼했다가 혼인 무효가 되자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당시 A 씨는 무효 결정의 근거가 된 민법 제809조 1항, 민법 제815조 2항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헌재는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는 혼인을 금지하는 809조 1항(금지 조항)에 대해선 5:4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반면 8촌 이내 혈족과 혼인할 경우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제815조 2항(무효 조항)에 대해선 '헌법 불합치'로 판단했습니다. 근친혼을 금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의 해체'를 막기 위해서인데, A 씨의 사례와 별개로 무효 조항으로 잘살고 있는 이들을 떼어놓는 건 본래 입법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것이죠.

특히 자녀에게 가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혼인의 무효와 취소는 다른 개념입니다. 무효는 기록에서도 지워지지만, 취소는 기록에 남습니다. 무효에는 소급도 적용됩니다. 둘 사이의 아이는 '혼외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헌재는 이같은 판결과 함께 법무부에 연말까지 무효 조항을 개정하도록 했습니다. 개정하지 않는다면 이 조항은 없어집니다. 내년부터 8촌 이내 혈족과 결혼하더라도 어떠한 페널티도 받지 않는 이상한 꼴이 되는 것이죠.

◇"4촌 이내 결혼 금지·무효는 직계혈족과 형제, 자매부터" 한국 사회 발칵

논란의 보고서는 법무부가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보고서는 무효 조항의 적용 범위를 '8촌 이내 혈족과 결혼한 경우'에서 '(혼인의) 당사자가 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 관계인 때'로 좁혔습니다. 또 '금지 조항'의 범위도 '8촌 이내 혈족'에서 '4촌 이내 혈족'으로 제안했습니다.

보고서는 혼인 금지 범위를 축소한 이유에 대해 "5촌 이상의 혈족과 정기적으로 만나 가족으로서 유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현저히 감소했다"며 "5촌 이상 혈족 간 근친혼과 유전병 발병률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인 가족관이 붕괴됐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세계 주요국을 둘러봐도 한국의 근친혼 금지 범위가 가장 넓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유교의 본산인 중국마저도 직계혈족, 4촌 이내 방계혈족만 혼인을 금지하고 있죠. 상황이 이런데도 8촌 이내 혈족과 결혼을 금지하는 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한다는 지적입니다.

◇"친척과 결혼?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거센 비판 여론

나름의 이유는 있지만, 아직 한국사회가 받아들이긴 어려운 듯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사촌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선조들이 왜 근친혼을 금지했는지 모르는 듯" "5촌 당숙과 결혼한다니, 막장 드라마다"는 비판 글이 쇄도했습니다.

한국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유도회총본부도 성명을 내고 "오랫동안 통념으로 받아들여 온 근친혼 기준을 성급하게 바꿔서는 안 된다"며 "혼인 문화에 대한 급진적 변화는 결국 가족 해체는 물론 도덕성 붕괴를 초래할 것은 더할 나위도 없다"라고 비판 대열에 가세했죠.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기본 정서가 유교라는 점에서, 친족과 관련한 법은 그 점을 특히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법안을 논의하기 전에 여론조사 등이 선결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전통적 가족관 붕괴되고 새로운 가족 탄생…최종 결론은?

그렇다고 이번 논란이 무의미한 건 절대 아닙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바뀌고 있고 '새롭게 생겨나는 가족의 형태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죠.

시선을 외국인으로 돌려볼까요. 파키스탄의 경우 사촌간 혼인을 할 수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직계혈족과 형제자매, 필리핀은 직계혈족과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만 혼인을 금지하고 그 외에는 결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현재 각 지자체는 초저출산 시대 '노동력 수급' 대책 중 하나로 적극적인 '이민·귀화 정책'을 펴고 있죠.

금혼 조항이 '헌법불합치'라고 판단한 재판관 4인은 "우리 사회는 혼인신고 없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라며 "근친혼 당사자들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가정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연말까지 결론을 내야 합니다. 아직 9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곧 22대 국회가 새롭게 출범하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시간이 없습니다. 부디 다양한 의견을 정부가 듣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길 기대해 봅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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