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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걸려도 첫차 타고 서울역 찾는 이유 "온기·무료급식·TV"

추위에 도드라진 '가난'…서울역·탑골공원서 만난 노인의 하루
무료급식소 20분 만에 바닥…"집에 먹을 게 없어 남양주에서 왔어요"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임윤지 기자 | 2023-11-14 05:30 송고 | 2023-11-14 08:27 최종수정
13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 2층에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앉아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2023.11.13 © 뉴스1 김예원 기자
13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 2층에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앉아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2023.11.13 © 뉴스1 김예원 기자

#1. 인천에 거주하는 박모씨(81)는 매일 새벽 5시반 첫 지하철을 타고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역이다. 2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는다. 따뜻한 지하철에서 밤새 언 몸을 녹일 수 있고 무료로 끼니까지 해결할 수 있어서다.

#2. 탑골공원에서 만난 70대 박모씨는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새벽 첫차를 타고 왔어요. 너무 추워 새벽에 눈 뜨기도 힘들지만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때이른 겨울 추위에 '가난'도 예년보다 빨리 드러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노년층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 "돈 없이는 앉아 있을 곳도 없어"…서울역 대합실이 '명당'

"돈 없이 앉아있을 곳이 많지 않아요. 역이 추위를 피하기엔 딱 맞죠."
13일 오전 8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역사 2층 대합실. 영하권을 기록할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명당'엔 장갑과 귀마개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서너 명 정도 앉아있던 대합실 좌석은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40여 명의 사람들로 꽉 차 북적북적해졌다.

이곳에서 만난 박씨는 인천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두꺼운 패딩 속에 바람막이를 겹겹이 껴입고 귀마개까지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밥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2시간가량 서울역 안에서 볕을 쬐다 9시 반쯤 친구들과 교회 예배를 드리고 무료 아침 식사를 먹는 게 하루의 시작"이라며 "날이 좋을 땐 밖에 주로 있었지만 요즘 너무 추워져서 서울역 아니면 딱히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최저 기온은 지역별로 영하 7도에서 3도 사이를 오갔다.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아침이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쓰고 안감이 두툼한 재킷을 목 끝까지 올린 안모씨(63)는 모텔방을 전전하다 지난 9월27일부터 이곳 서울역에 머물기 시작했다. 인근 시설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곤 늘 이곳에 앉아있다는 그는 냄새로 사람들이 불쾌할까 아침저녁으로 2번씩 샤워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갑자기 추워져 얇은 비닐 점퍼를 입은 채 역사에서 떨고 있으니 인근 봉사단체 사람들이 두꺼운 솜 재킷을 줬다"며 "여기 있으면 TV 뉴스가 늘 틀어져 있지 않나.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고 덧붙였다.

인근에 탑골공원과 무료 급식소가 몰려 있어 노인 등 취약계층 유동 인구가 많은 종로3가역도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에 거주하는 60대 석모씨는 아침과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늘 지하철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석씨는 "난방비가 부담돼 보일러는 잘 때만 딱 켜고 보통 지하철로 온다"며 "사람들 오가는 걸 보면 덜 외롭지만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눈치가 보여 해가 뜰 땐 잠깐 밖에서 바람을 쐬곤 한다"고 설명했다.

13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무료 배식한 주먹밥과 국물. 2023.11.13 © 뉴스1 임윤지 기자
13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무료 배식한 주먹밥과 국물. 2023.11.13 © 뉴스1 임윤지 기자

◇ "고물가에 지원금으론 끼니 해결 못해"…무료급식소 20분만에 '바닥'

이날 오전 8시5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원각사 무료 급식소엔 이미 100여명이 긴 줄을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거주하는 60대 황모씨는 "밥 먹고 마시는 커피 믹스 한 잔이 하루 식사의 전부"라며 "기력이 없으니 몸도 떨리고 감기도 잘 걸린다. 물가가 계속 오르는데 이것까지 없어질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탑골공원 인근에 거주한다는 60대 김모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물가가 너무 오르니까 도저히 생활이 안된다"며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근처 다른 무료 급식소에서 점심을 해결 후 집 가서 패딩을 껴입고 잠에 든다"고 말했다.

배식을 기다리던 이들 중에는 냉기를 이기려는 듯 발을 구르거나 목을 잔뜩 움츠린 이들도 눈에 띄었다. 

8시30분쯤 시작된 170~180여 명분의 식사 배급은 20여 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배식 봉사 중이라는 자광명 보살은 "추운 날씨에 오는 사람들일수록 정말 한 끼 한 끼가 간절한 사람이 많다"며 줄을 선 사람들에게 주먹밥과 된장 국물, 단무지 등을 나눠줬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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