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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9만원인데 1년 40만원"…'먹튀' 걱정이지만 가격 할인에 선결제

"고물가에 헬스장 장기 회원권"…추가 할인에 PT 선결제
창업 구조에 근본 문제…"선결제 말고 카드 할부 결제를"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2023-06-17 06:30 송고
 서울시내 한 헬스장에서 회원들이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2022.1.3/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서울시내 한 헬스장에서 회원들이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2022.1.3/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한 달 9만원인데 1년 40만원이라니. 혹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헬스장 앞에서 만난 이소은씨(31·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씨는 고물가로 지갑 열기가 두려웠지만 올해 말 결혼을 앞둬 큰 맘 먹고 1년 치 회원권을 끊었다. "개인운동강습(PT)도 함께 선결제하면 더 깎아주겠다"는 말에 88만원을 또 결제했다.
이씨는 "'헬스장 먹튀' 기사를 접하며 내게 그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면서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 장기 회원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전국에 28개 지점을 둔 유명 헬스장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선결제 회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회원권과 PT 수업료를 선결제해 피해액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한다. 그런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1이 확인한 서울시내 헬스장 한 달 회원권 가격은 7만~10만원이지만 6개월 치를 내면 월 5만~7만원, 1년 치는 월 3만~4만원이었다. PT도 10회 50만원대, 20회 80만원대로 횟수가 늘어날수록 싸다. '먹튀'의 위험을 안고 장기 회원권을 선택하는 이유다. 

경기 부천시의 헬스장이 불이 꺼진 채 굳게 닫혀 있다. 23.06.12 © 뉴스1 한병찬 기자
경기 부천시의 헬스장이 불이 꺼진 채 굳게 닫혀 있다. 23.06.12 © 뉴스1 한병찬 기자

◇ 헬스장 '먹튀' 고질 문제지만…'선결제' 악순환의 시작
장기 회원권을 팔고 헬스장을 폐업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무리한 사업에 부도가 나면 회원이 피해 입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인터넷 카페와 오픈채팅방 등에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 적지 않다. 

김모씨(53)는 "제가 겪은 헬스장 대표 야반도주가 세 번째인데 이번처럼 대규모 사기극은 처음"이라며 "대형 프랜차이즈여서 의심하지 않고 1년 치를 끊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3년5월) 헬스장 관련 소비자 상담은 총 10만2042건이었다. 구체적으로 △2018년 1만7173건 △2019년 2만190건 △2020년 2만5962건 △2021년 1만6349건 △2022년 1만5346건이다. 올해 5월까지만 벌써 7022건이 접수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오성영 한국헬스클럽관장협회 회장은 헬스장 창업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오 회장은 "헬스장 창업에 수억원이 드니 공사를 시작하며 2만~3만원의 할인 이벤트로 회원권을 선불 발급해 자금을 마련한다"며 "돈을 끌어모아 차렸는데 금리가 오르고 회원 모집이 안 되면 폐업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명 헬스장의 일부 지점은 문도 열기 전에 회원을 모집하고 폐업을 통보해 피해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오 회장은 헬스장의 이런 행태가 불법이라면서 "헬스장 허가 법안에는 체육시설은 헬스기구, 샤워장 등이 구비된 다음 허가증이 나와 회원을 모집할 수 있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적자를 메꾸기 위한 무리한 선결제 요구에 소비자 피해는 더 커진다. 3년째 헬스장 PT트레이너로 일하는 박모씨(28)는 "수익과 직결되다 보니 PT를 무리하게 권유하는 트레이너가 있다"며 "그러다 경쟁업체가 생기면 회원이 줄어 폐업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민체육센터 헬스장에서 한 남성이 운동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 마포구민체육센터 헬스장에서 한 남성이 운동하고 있다. 2021.10.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 관련 법안 '계류 중'…"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피해 구제 법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2020년 발의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체육시설업의 폐업·휴업 등으로 영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 소비자로부터 받은 이용료를 기준에 따라 반환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의 변호사는 "먹튀 사건은 폐업 한 달 전쯤부터 강사가 갑자기 그만두거나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등의 징조를 보이는데 이 때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게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 회장은 "지자체가 체육시설 허가증을 내줄 때 담당자들이 현장을 방문해 완공을 확인하게 해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벤트나 할인에 현혹되지 말고 단기계약이나 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당부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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