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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간병살인 겪었던 日의 교훈…간병제도 대수술[가족간병의 굴레]⑤

日 2005년 초고령사회 진입, 간병 휴직시 급여 67% 지급
英·美, 간병인에 '휴식'주는 '레스핏 케어' 운영…'영 케어러' 지원도

(서울=뉴스1) 이유진 기자 | 2023-06-01 06:10 송고 | 2023-06-01 11:49 최종수정
편집자주 파킨슨병 환자인 80대 남성이 자신을 간병하던 70대 아내에게 말했다. "미안하다"고. 아내는 간병 후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 40대 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의 아버지 간병을 맡겨 미안하다"는 이유로.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에서 '가족간병의 굴레'는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뉴스1>은 간병가족을 직접 만나 복지 사각지대 실태를 점검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어머니를 뒤따라 죽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86세 치매를 앓던 노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54세 아들 가타기리 야스하루가 흐느끼며 말했다. 간병의 무게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를 숨지게 한 그는 자신도 극단선택을 시도했으나 살아남았다. 2006년 2월1일 일본 교토에서의 일이다.

최근 한국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간병살인'이 일본에선 이미 20여년 전부터 사회 문제가 됐다. 우리보다 20년 빨리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만큼 간병살인 역시 더 일찍 문제가 된 셈이다. 일본은 2005년 65세 이상 노년인구가 20.2%를 넘어서며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우리나라는 2025년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야스하루 사건으로 열도가 떠들썩했던 2006년부터 간병살인만을 별도로 집계해 발표하는 등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관련 통계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

실제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2006~2015년 일본에서 발생한 간병살인은 247건으로 피해자는 무려 250여 명에 달했다. 경찰청도 같은 해부터 간병살인을 발생 시기별로 따로 분류해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간병살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간병 문제를 관리하고 있다. 독신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독신간병', 노인들 간 서로 돌보거나 늙은 자식이 노부모를 돌보는 '노노간병', 간병을 위해 일을 관두는 '간병이직' 등 다양한 용어들이 생겨났다. 간병을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촘촘한 분류는 정부가 세밀한 대책을 마련하는 기초가 됐다. 
◇日, 93일 '간병 휴직' 급여의 67% 지급 
 
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일본은 이처럼 간병 관련 문제를 각각 사안별로 분류해 국가 차원의 통계를 발표하고 구체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현재 가족에 간병이 필요한 이들에게 연 93일간의 간병 휴가를 주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가족의 범위는 △배우자 △부모 △조부모 △배우자 부모 등으로 폭도 넓다.

93일을 3번에 나눠서 쉴 수 있으며 올해 기준으론 급여의 약 67%가 '간병 휴업 급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지원되고 있다. 계약직 사원도 1년 이상 일하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간병 휴직을 이용할 수 있다.

단기 간병 휴가 제도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부모님 통원이나 간병 서비스에 필요한 업무를 하기 위해 1년에 5일까지 쉴 수 있다. 대상 가족이 2명이면 10일로 늘어난다.

또 법이 정한 노동시간 외에 원칙적으로는 초과근무를 금지하고 있다. 간병인 중 심야시간을 보장받고 싶은 경우 오후 10시~오전 5시엔 회사 업무를 보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 반면 신청이 있을 경우엔 1개월에 24시간, 1년에 150시간을 넘지 않는 시간 내에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퇴근해 집에서 가족간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반대로 초과근무를 통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길도 동시에 열어놓은 셈이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론 노인들에게 필요한 의료나 돌봄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지역 포괄 케어’를 구축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힘쓰고 있다. 가족 간병인들 간 모임을 만드는 등 지역사회도 적극적으로 나서 대응 마련에 나서고 있다.

환자를 단기간 시설 등에 입소시켜 간병인과 분리시키는 ‘쇼트 스테이(단기 보호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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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권 국가도 '레스핏 케어', '영 케어러' 등 통해 '사회적 간병' 제도화

일본뿐 아니라 영국과 호주 등 서구권 국가들도 '사회적 간병'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이 운영하고 있는 '레스핏(Respite) 케어'에 대한 관심이 단연 높다.

레스핏은 '잠시 쉼', '한숨 돌린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레스핏 케어는 가족 간병에 지친 이들이 잠시 쉰 뒤 간병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우미를 파견하거나 시설에 맡기는 사회 서비스다. 이를 통해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을 지속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질병에 한해 주간 시간에만 간병인을 지원해 준다. 반면 영국과 미국에선 레스핏 케어를 통해 주말과 휴일이든 가리지 않고 신청이 가능하다. 

미국은 또 가족 간병인을 위한 '포괄적 지원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조 바이든 행정부는 "가족 보호자(간병인)를 위한 포괄적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고, 해당 프로그램에 등록된 이들을 위한 더 많은 정신 건강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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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10일 간의 간병휴가와 6개월간 간병 휴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엔 간병을 이유로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고, 가족간병을 하는 직원은 2년간 회사에 주당 15시간까지 근로시간을 줄여달라 요청할 수 있다. 휴직의 경우 국가는 무이자 대출 등으로 지원에 나서며 간병 휴가 시엔 수당을 지급한다. 

영국과 호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간병하고 돌보는 젊은 나이의 '영 케어러(Young Carer)'에게 경제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만 16세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당 최소 35시간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에게 간병인 수당(Carer Allowance)을 지급한다.

호주는 장애나 신체·정신질환, 약물중독, 고령의 가족이나 친구를 돌보는 25세 이하 청년을 영 케어러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간병살인을 별도의 통계를 내고 있는 일본처럼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한국 역시 이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는 가족 간 간병에 대한 국가적 대책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의 한국은 세부적인 가족 간 간병 정책의 단계를 논의할 수 조차 없는 단계라고 말했다.

김성천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도 "현재 한국의 간병 관련 보조 정책은 가족에 집중돼 있지 않고 너무나 획일적이고 투박하게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가족 간 간병을 국가가 도울 수 있는 다양한 지원 정책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a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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