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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One] '가성비 끝판왕' 네덜란드에서 예체능 사교육을 시켜봤다.

음악 교육은 평생 취미가 목적, 저렴한 수업비와 악기 대여는 기본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2023-05-15 10:40 송고
평생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음악 취미가 목적인 네덜란드 음악 사교육. 음악 동호회 활동은 나이 구분이 없다.
평생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음악 취미가 목적인 네덜란드 음악 사교육. 음악 동호회 활동은 나이 구분이 없다.

일요일 오전 체육 대회에 참가한 6살 딸아이에게 같은 운동 모임의 선배뻘인 11살 아이는 "중요한 것은 즐기는 마음이야"라고 큰 소리로 격려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배웠던 토종 한국인 엄마에게 네덜란드 육아는 십 년이 되도록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음악 교육은 평생 취미가 목적, 저렴한 수업비와 악기 대여는 기본 
올해 만 10살이 되는 딸아이를 데리고 네덜란드 예체능 사교육을 경험해 본 내 판단은, '네덜란드는 취미 부자의 나라고, 부캐 춘추전국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이는 피아노와 오보에를 배우는데, 피아노와 오보에는 주 1회 30분 수업과 추가적으로 오보에는 오케스트라 연습 주 1회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바이엘, 체르니 등의 교재로 수업을 받으며 연주 수준을 평가받았던 한국 엄마에게 네덜란드 피아노 학원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시련이 무척이나 길었다고 할 수 있다. 4년째 늘지 않는 피아노 실력이 괜히 엄마 탓인 거 같아 연습 방법을 물어본 나에게 네덜란드 선생님은 명확한 답을 줬다. "아이가 좋아하면 연습하고, 싫어하면 하지 마세요."

자고로 예체능이란 어느 정도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야 즐길 수 있고, 그 과정에 오르기까지 피아노 책 위에 '바를 정(正)' 자를 써가며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배웠던 나에게는 문화 충격이었다. 
"어머님, 아이는 피아노 전공을 할 아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부터 연습으로 기운을 빼고 즐거움을 뺐죠? 일주일에 한 번 쳐보는 것만으로 음악을 즐기는 취미가 될 수 있잖아요"라고 되묻는 피아노 선생님에게 나는 두 번 다시 아이의 피아노 책은 언제 바뀌는지 묻지 않았다. 

네덜란드에는 지역 구분 없이 동네에 예술센터가 있다. 각자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예술센터에서는 여러 악기 수업, 뮤지컬, 성악과 미술 수업까지 모두 한자리에서 받을 수 있다. 

시에서 지원을 받는 이런 지역 예술 센터는 학기 시작을 할 즈음 동네 거리에 나와 수강생을 직접 모집한다.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야 만나 볼까 한 희귀한 악기들을 아이들은 직접 만져보고 3-4번 정도까지 무료로 수업을 받아 볼 수 있고, 그 후에도 나와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때 등록을 해도 늦지 않다. 수업료는 일 년 단위 또는 6개월 단위로 나누어 지불하는데, 신중하게 악기를 선택하고 나면 더 다양한 음악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지역 음악단에 연계돼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악기를 지원받을 수도 있다. 

오보에라는 악기를 선택한 아이는 지역 예술 센터에서 오보에를 전공한 선생님에게 개인 수업을 받는다. 수업료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첫 수업 등록 프로모션으로 10회 개인 수업에 50유로(약 72000원)를 지불했다. 그 이후에는 수업료가 조금 더 인상되지만, 오보에라는 흔하지 않은 악기 수업을 1회당 5유로(약 7200원)에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지역 예술센터에서 기본 악기 수업을 담당한다면, 지역 음악단은 취미 동호회인데 그 스펙트럼이 무척 다양하다. 

단원으로 가입하면 100유로(약 14만5000원)에 악기를 대여해 준다. 음악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단원은 86세이고, 가장 어린 단원은 6살이다. 수업을 이끌고 오케스트라를 조직하는 성인 단원은 대부분 직업이 있거나 은퇴한 후에 취미로 단원 생활을 하는 네덜란드인들이 대부분이다. 교통비 정도의 수고비가 주어지지만 모두 진지하게 주 1-2회는 음악 활동에 몰두한다. 

이런 지역 음악 센터 등에서 수업받다가 재능과 소질이 보이면 콘서트헤바우(Concert gebouw)와 같은 전문 연주홀에서 영재 수업 과정에 지원할 수 있으며, 선발이 되면 전문 교육과정을 받을 수 있다. 일 년에 몇 차례에 걸쳐 공개 오디션을 통해 음악 영재를 선발하는 단체도 많다. 

네덜란드의 음악 교육은 부모가 음악적 소양이 없어도,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아도 아이가 관심이 있다면, 시에서 지정한 예술센터를 통해 검증된 교사와 체계적인 음악교육 시스템 안에서 저렴하고 질 높은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 음악 그대로를 평생 취미로 즐기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체육 동호회원은 매주 지역 대항 전문 경기에 참여 가능하다. 육상 동호회 회원인 아이가 경기에 참여했다.
체육 동호회원은 매주 지역 대항 전문 경기에 참여 가능하다. 육상 동호회 회원인 아이가 경기에 참여했다.

◇국영수 모두 포기해도, 체육은 절대 포기하지! 

국영수 학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네덜란드에 가장 많은 사교육은 체육 사교육이다. 

네덜란드 국민들의 유난한 체육 사랑은 전 국민이 올림픽에라도 나갈 기세다. 

돌도 안된 아기들은 부모 품에 안겨 베이비 수영 수업부터 시작한다. 만 4개월부터 가능한 베이비 수영은 네덜란드의 젊은 부모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 

그 뒤에 만 4세가 되면 생존 수영 수업을 필수적으로 받는다.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난 네덜란드 수영 센터는 수강생이 몰려 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베이비 수영 수업을 등록하면서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아야 만 4세부터 정규 생존 수영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들 한다. 

옷을 그대로 입고 물에 뛰어들며 내 몸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물 위로 뜨게 해서 위험한 순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수영 과정은 네덜란드 안전 수영 기관에서 발급하는 정규 디플로마를 획득할 수 있으며 네덜란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영유아 익사율을 갖고 있다. 

수영을 기본으로 네덜란드 어린이들은 1-2개의 전문적인 체육 수업을 받거나 체육 동호회에서 주관하는 정말 다양한 체육 수업을 즐길 수 있다. 축구, 육상, 필드하키, 기계체조 등이 저학년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운동이다. 일 년 단위로 체육 동호회에 가입을 하면 대부분 자원봉사를 하는 선생님에게 기본 트레이닝을 받는다. 수업료는 동호회 가입비 정도로 무척 저렴하지만, 시설이나 수준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체육 특성화 고등학교의 시설을 함께 사용하거나 체육 대학급의 기구들을 쓸 수 있고, 전공 학생들은 보조 교사로 여러 해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실질적인 경험을 쌓는다. 

네덜란드 부모들은 이 체육 동호회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일상의 당연한 일과로 받아들인다. 동호회 발전 기금 마련을 위해 바자회를 하거나 옷을 판매하는 것은 부모들의 몫이고 교사진들을 보조해서 운동장을 정비하거나 청소를 돕기도 한다. 

예체능 수업으로 주말 스케줄이 꽉 찬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나의 네덜란드 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달리기 대회에 나간 아이는 고작 3분 정도 달리기를 하며 온 동네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격려를 받았다. 아이는 몇 분 몇 초에 결승점에 들어와야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는 당연한 삶의 이치를 매 주말 배운다. 

특별한 경력을 가진 선생님도 비밀스러운 교육과정도 없다. 모두가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흘린 땀에 대해 보상을 받고 기쁨을 느낀다. 운동을 하며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 해결력을 기르고 인성을 배운다. 네덜란드의 어린이들이 수학 선행 학습과 영어 레벨 테스트를 하지 않아 세계에서 행복한 어린이가 됐다는 판에 박힌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도 과외를 받는 아이들도 있고, 과외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코로나19 이후 현저하게 떨어진 네덜란드 학생들의 어휘와 수학 능력은 네덜란드 교육부의 필수 과제로 지적받고 있다. 

값비싼 학원이나 개인 레슨 수업을 받지 않아도, 공평하고 합리적인 시스템 아래에서 예체능 사교육 접근이 가능한 점과 예체능의 문턱을 최대한 낮추어 평생 취미로 예체능을 받아들이는 네덜란드의 예체능 사교육 시스템은 영어 수학 선행 수업에 밀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돌아보게 한다.


chahjli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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