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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그 후 4년…불이 난 삶은 진화되지 않았다

[재난이 된 산불] ②컨테이너에서 암 투병…"그냥 죽으라는 거죠"
피해 보상 제자리걸음, 한푼도 못 받아…"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고성=뉴스1) 박동해 기자, 박상휘 기자, 박혜연 기자, 이정후 기자 | 2023-03-23 06:37 송고
편집자주 매년 봄마다 발생하는 산불이 이상기후와 함께 점차 대형화, 연중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울진·삼척에서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산불이 일어났고, 올해 역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정부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대형 산불 위험성이 큽니다. 뉴스1은 산불의 대형화, 연중화의 원인과 이를 부추기는 이상기후, 또 그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이재민들의 삶을 현장에서 살펴보는 4편의 기획물을 만들었습니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재민 차광주씨(59). 차씨는 산불 발생 이후 간암 진단을 받고 4년째 임시주거시설인 컨테이너에서 투병 생활하고 있다. 2023.3.17/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재민 차광주씨(59). 차씨는 산불 발생 이후 간암 진단을 받고 4년째 임시주거시설인 컨테이너에서 투병 생활하고 있다. 2023.3.17/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컨테이너로 만든 7평짜리 임시주택. 그 현관 옆에는 '차광주'라는 이름 석자와 연락처, 그리고 '환자가 있으니 문 두드리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차광주씨(59)는 변변한 난방 장치도 없는 이곳에서 4번의 겨울을 보냈다. 그를 죽음의 문턱으로 내몬 것은 2019년 4월 강원도 고성군을 휩쓴 산불이다.

2019년 4월4일 저녁 발생한 불은 고성군 토성면에 있던 차씨의 삶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이른 잠에 들었던 차씨는 창밖이 낮처럼 환한 것을 보고 눈을 떴다. 이미 집안까지 불이 번진 상태에서 차씨는 불길을 헤치고 뛰어나와 목숨을 건졌다. 
이후 이재민에게 제공된 컨테이너가 차씨의 새집이 됐다. 그나마 기존 거주지의 지상권만 가지고 있었던 차씨는 컨테이너조차 원래 살던 곳에 짓지 못했다. 그저 군청이 정해준 임시거주지를 떠돌아야 했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던 차씨는 그해 12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피해보상 문제가 얽히면서 차씨는 제대로 된 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했고 국민들이 모아준 성금은 수술비와 병원 치료비로 사용해 한푼도 남지 않았다. 

화재 이후 불을 무서워하게 된 차씨지만 모든 것을 잃고 투병의 고통 속에서 사는 삶을 스스로 끝내고 싶어 '컨테이너에 불을 지를까'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 평생 모은 재산 모두 잃었는데…보상은 요원

2019년 4월4일 오후 7시17분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미시령터널 인근에 설치됐던 전신주의 개폐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은 건조경보가 내려졌던 마른 땅 위를 강풍을 타고 내달렸다. 고성을 넘어 속초까지 번진 화염은 축구장 1700배가 넘는 산림을 태웠다. 

해안가에 다다른 불은 사흘 만에 꺼졌고 4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불길이 몸을 할퀴고 지나갔던 고성군 일대의 산과 들은 여전히 헐벗은 채 누워있다. 산을 빼곡히 메웠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베어지고 새로 심은 소나무들은 채 정강이 높이까지도 자라지 못했다. 산림을 초토화한 산불은 이곳을 근거지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도 까맣게 태워 버렸다. 

화재로 주택이 전소된 최인선씨(70)는 보상 문제를 두고 여전히 전국을 돌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펀드매니저로 활약하며 증권사 임원까지 지냈던 그는 은퇴 후 2018년 8월 아내와 함께 고성군으로 이주했다가 산불을 맞았다. 400평 부지의 정원과 주택은 새까맣게 타버려 숟가락 하나 건질 게 없었다. 최씨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이재민이 산불 발생의 책임이 있는 한국전력으로부터 보상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에 분노했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재민 최인선씨(70)가 불에 타 흔적만 남은 자신의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2023.3.17/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2019년 고성-속초 산불 이재민 최인선씨(70)가 불에 타 흔적만 남은 자신의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2023.3.17/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2019년 12월31일 산불 피해 보상과 관련해 설치된 '고성지역 특별심의위원회'는 산불 발생의 원인자인 한국전력공사 측의 최종 보상 지급금을 손해사정 금액의 60%로 결정했다. 다수의 주민들이 보상금 결정에 반발해 소송을 택했다. 최씨는 소송을 택한 이유에 대해 "손해사정을 할 때 실제 피해가 증빙되지 않아 50%는 피해로 잡히지 않았는데 거기에 60%만 보상해주면 실제 30%도 되지 않는 것"이라며 '납득할 수 없는 보상액'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민들의 속이 타들어 가는 상황에서 보상금 문제는 답보 상태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가 산불 피해 당시 이재민에게 제공한 재난지원금 등에 대해 한전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하자 한전이 이에 반발하면서 양측 간 소송전이 진행 중이다.

상당수의 피해 이재민이 특별심의위가 제시한 보상안을 인정하지 못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정부와 한전 사이의 구상권 소송도 진행되면서 보상 문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한전은 구상권이 인정되면 구상권 청구액을 제외한 금액만 피해보상금으로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민 한용운씨(69)는 "구상권이 청구되면 오히려 보상금이 마이너스가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산불은 아직 진행 중…망가져 가는 삶

산불은 피해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만 회복의 시점은 보이지 않는 것이 주민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최씨는 주민들이 정부나 한전의 보상을 믿고 빚을 냈던 주민들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가 현재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실제 지난 2020년 산불로 피해를 입었던 8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2019년 산불 당시 불길이 지나간 고성군 토성면 일대의 모습. 황폐화된 능선에 어린 묘목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2023.3.17/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2019년 산불 당시 불길이 지나간 고성군 토성면 일대의 모습. 황폐화된 능선에 어린 묘목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2023.3.17/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산불로 유족이 된 김영봉씨(66) 또한 분한 마음이 치올라 아직도 쉽게 밤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영봉씨는 세살 터울의 동생 고(故) 김영갑씨를 화마에 빼앗겼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외국 출신의 제수를 대신해 한전 측과 동생의 피해 보상을 협의하던 김씨는 동생의 죽음을 값싸게 흥정하려 하는 담당자들의 태도에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고 했다. 

고성에서 45년 동안 공예사업을 했던 김씨는 산불로 전 재산을 잃었음에도 사업소의 명의가 타인으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이후 소송을 통해 사업소의 실소유를 인정받았지만 한전 측이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며 동생의 죽음이 계속해 "조롱당하고 우롱당했다"고 말했다. 치미는 울화에 하루에도 수면제를 여섯알씩 먹어야 잠이 들 수 있다는 김씨는 "솔직한 이야기로 수류탄만 있다면 (한전 본사가 있는) 나주로 달려가고 싶다"고 했다. 

이재민들은 "사람들은 고성 산불 문제가 다 끝난 줄 알고 있는데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며 "산불 이전의 삶을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빚이 생겼고, 마음의 상처는 깊어졌다. 더불어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생긴 주민들 사이엔 메워지지 않는 갈등의 골이 생겼다. 

문제는 2019년 이후에도 꾸준히 큰 산불이 나고 있고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이재민들의 삶이 초토화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20년간 산불 발생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740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기후위기 속 산불이 대형화, 연중화되면서 이재민의 고통도 극대화, 영속화되고 있다. 

4년째 컨테이너에 거주하는 차씨는 주변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와 또다시 이주를 고민해야 한다. 벌써 5번째 이주다. 차씨는 "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거나 살거나 신경도 안 쓴다"라며 "이런 건 나라가 아니지…. 그냥 죽으라는 거지"라고 읊조렸다. 차씨는 그저 치료받고 살아가기만 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내가 불에 놀라서…, 여기 불 날 게 게 뭐가 있다고 이걸 가져다 놨어." 산불이 났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던 차씨는 책상 밑에 놓여 있던 가정용 소화기를 마른 손으로 어루만졌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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