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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죽음 내몰고 유산까지"…한국 웹툰의 그림자 '과로'

"손목 끊어진듯 아프고 가위 눌려…건강한 사람도 못버텨"
살인적인 컷수 회당 120컷도…'세이브 원고'도 증가 추세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2022-09-13 06:30 송고 | 2022-09-13 15:14 최종수정
'록사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의 작화를 담당하는 여름빛 작가의 트위터 © 뉴스1
'록사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의 작화를 담당하는 여름빛 작가의 트위터 © 뉴스1


'록사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의 작화를 담당하는 여름빛 작가의 트위터 © 뉴스1
'록사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의 작화를 담당하는 여름빛 작가의 트위터 © 뉴스1

"세이브원고 2~3개라도 덜 푸는 걸 간곡히 부탁드렸는데도 안 된다셔서 그날 전후로 하혈하며 원고를 했는데."
웹툰 작가를 과로로 몰아넣는 웹툰 플랫폼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록사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의 여름빛(필명) 작가가 과로로 유산을 경험했다고 8월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한 것이 계기다. 과로 의혹이 불거진 고 장성락 작가가 지병으로 사망한 지 불과 한달 뒤다. 

◇ 작가 노동력 갈아넣고 성장한 K웹툰

1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웹툰 작가들은 한결같이 과로 문제를 호소하고 있었다. 
익명을 원한 웹툰 작가 A씨는 "웹툰업계의 노동 강도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버틸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잔병치레라고는 몰랐다는 그는 4년간 웹툰을 연재하며 손목 상태가 악화해 끊어질 듯 아팠고 쉬려고 누우면 곧바로 가위에 눌렸다고 고백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고혈압까지 생겼다.

A씨는 연재 기간 동안 주 평균 7일, 하루 평균 12시간 작업했다고 말했다. 마감 전 이틀은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 2021년판에 따르면 국내 웹툰 작가의 67%가량이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70% 이상이 주 6일 넘게 작업한다고 답했다.

2000년대 초 등장한 한국 웹툰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는 각각 북미 웹툰·웹소설 플랫폼 타파스+래디쉬, 왓패드 등을 인수하며 무대를 해외로 넓히고 있다. 

◇ 늘어나는 '컷수'와 '세이브 원고'의 압박

작가를 쉴 수 없게 만드는 대표적 요인이 살인적인 '컷수'다. 컷수는 만화 속 그림을 세는 단위다. 웹툰작가이자 유튜버인 '마감인생'은 자신의 영상에서 "회당 연재 컷수를 60컷 이상으로 해달라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고 많이 그리는 분은 회당 100컷이 넘어가며 120컷 정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유튜버 '마감인생'이 계약할 때 요구받는 기본적 컷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유튜버 '마감인생'이 계약할 때 요구받는 기본적 컷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A씨는 컷마다 요구되는 작화의 퀄리티도 상향평준화해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잠시만 분량이 줄어도 비난 댓글이 쇄도하는데 플랫폼은 손을 쓰지 않고 있다"며 "작가는 그 사이에서 사면초가 신세"라고 울분을 토했다.

작가들이 웹툰 플랫폼과 계약할 때 요구받는 '세이브 원고', 즉 예비용 원고 분량도 느는 추세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대형사는 적게는 10~15화, 많게는 50화의 세이브 원고를 깔아두고 연재를 시작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백종성 호남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작가의 리스크가 더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컷수와 세이브 원고의 압박을 작가 홀로 감내해야 하는 이유는 웹툰과 같은 창작업은 대체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뉴스1 취재진이 인터뷰한 작가들은 '내가 멈추면 작품도 멈춘다' '순위가 떨어지면 매출도 떨어진다'는 압박에 스스로를 과로로 밀어넣었다.

◇ 작가 건강권 위해 플랫폼이 개혁 나서야

일선 작가와 업계 전문가들은 일정한 휴식의 보장을 입을 모아 요구했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은 "작품을 그리지 않는 유급 휴가를 모든 작가에게 최소 연 2회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금처럼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동시에 연재를 쉬어야 한다'고 권 국장은 강조했다. 

'웹툰 상생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백종성 교수는 "작가와 작품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휴재(연재 중단) 시스템을 만들고 독자에게 충분히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행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A씨는 "작가가 대부분 프리랜서지만 작품 계약 후에는 고정된 소속을 갖는다"며 "그럼에도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어 법률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시스턴트와 작가 모두 예술인고용보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고 장성락 작가의 사망에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 카카오엔터 측은 여름빛 작가의 폭로에 대해 "계약부터 연재까지 2년이 주어졌고 5주 연재하면 한주간 휴재 기간이 주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여름빛 작가의 트위터 폭로 이후 사과문을 내고 '작품창작 및 연재 시스템, 그리고 작가와의 소통 채널 강화 제도 등에 관한 더욱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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