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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할 권리②] "성인 되면 더 힘들까요?…제가 바꿔 볼게요"

채식 선택권 보장 위해 공부하는 중3 윤성우군
"한목소리 낼 친구들 모집중…비건 뜻 접지 않을 것"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22-04-30 06:30 송고 | 2022-05-13 09:04 최종수정
편집자주 채식은 요즘 '힙'하다. 건강에 좋다고 해서 기후 위기나 동물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MZ세대들의 관심은 날로 커진다. 채식주의자(vegetarian)들이 자신의 식생활을 주변에 고백하기까지 어려움을 담은 '채밍아웃'이란 표현도 이젠 낯설다. 그러나 단체급식이 이뤄지는 학교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일선 교육청이 채식 급식을 확대하고 있으나 완전한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들에겐 여전히 급식실은 괴로운 공간이다. 정작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다. 육류나 어패류로 채워진 식판을 받아들고 나면 자기 신념마저 침해당한 느낌을 받는다. 채식 선택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뉴스1>은 이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짚어본다
비건 채식주의자인 중학교 3학년 윤성우군. © 뉴스1 조재현 기자
비건 채식주의자인 중학교 3학년 윤성우군. © 뉴스1 조재현 기자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에 위치한 사단법인 유기농문화센터. 일요일임에도 바르고 즐겁게 채식을 하려는 시민 30여명이 모였다. 이날엔 농부의사로 알려진 임동규씨의 특강이 열렸다.

촘촘하게 놓인 의자 사이로 눈에 띄는 참석자가 있었다. 유일한 10대 참가자인 중학교 3학년생 윤성우군(15)이었다. 성우군은 강사가 준비한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거나 수업 내용을 부지런히 노트북에 정리했다. 
◇ 채식 전문 요리사를 꿈꾸는 소년, 선배들이 쏘아 올린 공을 보다

성우군은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기숙형 대안학교에 다닌다. 채식을 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채식을 시작한 지는 이제 2년째다. 아버지의 반대로 집에선 유제품과 달걀, 어패류까지 섭취하는 '페스코'로 지내지만, 학교에선 완전한 채식을 뜻하는 '비건' 식단을 유지한다. 고등학교 과정까지 포함된 이 학교의 전체 학생은 40여명이다. 2년 전 비건을 하던 선배 4명이 졸업하면서 성우군은 이 학교의 유일한 비건이 됐다.

그의 장래 희망은 요리사다. 먹는 게 좋았기 때문에 꿈을 일찌감치 정했다. 키도 185㎝를 훌쩍 넘겨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체격이 크다. 그런 성우군에게 어머니는 채식 관련 영상을 자주 보냈다고 한다. 균형 잡힌 식사를 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였다. 정성이 통한걸까. 성우군은 문득 어머니가 보내준 영상을 돌려보며 단번에 채식을 결정했다고 한다. 목표도 '채식 전문 요리사'로 틀었다. 
성우군은 "채식을 하기 전엔 몸이 안 좋았는데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확실히 몸이 가볍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더 이상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없다. 되레 자신은 비교적 좋은 환경에 있다며 웃어 보였다.

성우군은 "우리 학교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평소 식단도 채식에 가깝다"며 "만약 육류 반찬이 많은 날이면 학교에서 별도 반찬을 제공해 준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들도 분명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 배려해 주고 신경을 써 준다. 그래서 더 미안할 때가 많다"며 멋쩍게 웃었다.  

성우군이 학교에서 제공받는 급식. 고기 반찬은 빼고 받았다. (윤성우군 본인 제공) © 뉴스1
성우군이 학교에서 제공받는 급식. 고기 반찬은 빼고 받았다. (윤성우군 본인 제공) © 뉴스1

일반 학교라면 분명 쉽지 않았을 일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도 차가웠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친구들이 모여 있는 지금의 학교가 일종의 울타리인 셈이다.

그런 성우군이 울타리 너머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계기는 지난해 6월 선배들의 인권위 진정(관련기사: '채소 없는 식판' 옹호한 인권위에 맞서다)이었다. 성우군은 일반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제공받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을 친구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성인이 된 후 외부 환경에 따라 채식을 포기했다는 형·누나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남 일 같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하는 노력이 쌓여 본인이 사회에 진출했을 땐 채식주의자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갖고 있다.

◇ "콩고기 말고도 맛있는 비건 식단 많아요"

앞서 인권위는 학생들의 채식 선택권 보장에 대한 진정을 기각하면서도 "교육 당국은 채식 식단 보장을 위한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급식체계 개편에 드는 인적·물적 지원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채식 선택권에 대한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성우군은 불씨를 더욱 키워보려 한다.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해 인권위 진정을 넣었던 김서진씨(19) 등과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도 한다. 채식 급식을 희망하는 또래도 모집 중이다.

성인들 사이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채식 선택권 보장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어떤 의견을 내야 하는지에 대해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성우군은 "채식을 일반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어떻게 전달하고,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 위해 배우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성인을 대상으로 열린 '유기농 비건 라이프 안내자 과정' 중 성우군이 필기한 내용. © 뉴스1 조재현 기자
지난 24일 성인을 대상으로 열린 '유기농 비건 라이프 안내자 과정' 중 성우군이 필기한 내용. © 뉴스1 조재현 기자

성우군은 "비건이라고 하면 대체 식단으로 대체육만 떠올리는 데 이는 이런 접근은 올바르지 않다"며 "비건 식단으로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채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향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채식 급식을 둘러싼 논의는 진행형이다. 학교도 채식 조리를 확대하는 추세다. 하지만 초기다 보니 현장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비건 학생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지적과 동시에 채식 기피로 인한 잔반 증가의 어려움도 있다. 영양교사나 급식 노동자들의 업무 증가, 예산 문제 등도 대두된다. 육식 역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도 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채식, 영양 불균형?…'채식 선택권' 정착 하려면 

식습관이 점차 서구화되면서 학생들의 영양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발간한 '우리 국민의 식생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과일 및 채소 적정섭취자 분율은 아동, 청소년과 청년층에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채소·과일을 하루 500g 이상 섭취하는 분율은 26.2%로 2019년에 비해 1.9%포인트 감소했다. 대신 음료나 육류 섭취는 늘고 있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의 동물성 식품 섭취는 날로 증가한다. 학교 급식에서는 아이들의 선호도만 반영하지 말고 식물성 식품 섭취를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채식·건강식 확대에 힘을 쏟는 이의철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센터장도 "동물성 식품이나 가공식품 섭취가 늘면서 소아 비만은 물론 10대 고지혈증 관련 환자도 늘어났다. 여학생들의 초경 연령이 어려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과제도 있다. 채식이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먹일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윤지현 교수는 "공감대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채 채식 급식이 강행되면 여기저기서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채식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는 관련 교육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의철 센터장은 "학생들의 건강 악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교육을 통한 관계자들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단체 급식 환경에서 특히 채식만으로 영양학적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윤지현 교수는 "채식으로도 영양소 결핍은 막을 수 있다. 다만, 영양교사와 급식 노동자들의 전문성, 예산 증액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교육 당국도 공감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기후 위기 극복과 지속 가능한 미래 먹거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 중기 계획을 추진 중이다.

권순주 서울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진흥원 식생활지원과장은 "채식 급식 확대에 따른 일선 학교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선도학교 지정 등을 통한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며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교사, 영양교사 등 전 주체가 참여하는 체험형 교육 등을 통해 채식의 필요성을 더 알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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