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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여군 성폭행' 대법 판결에 공대위 "믿을 수 없는 반쪽짜리 판결 규탄"

피해자 직속상관 무죄 판결은 파기
함께 재판 넘겨진 해군 소령은 무죄 확정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2022-03-31 14:28 송고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3.31/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3.31/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공대위)는 부하 여성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장교 2명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믿을 수 없는 반쪽짜리 판결"이라며 대법원을 규탄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군인권센터 등 10개 단체가 모인 공대위는 31일 낮 1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년4개월을 기다려왔는데 대법원은 이해할 수 없는 반쪽짜리 판결을 내렸다"며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군의 군대 내 성폭력 엄중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부하 여성 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해군 장교 A씨와 B씨에 대해 각각 파기 환송과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A씨는 고등군사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리인단 박인숙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너무 당황스럽고 참담하다"며 "2차 가해자의 성폭행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사건 발생의 원인이 된 1차 가해자의 성폭행 혐의는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2차 가해자는 일부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1차 가해자는 모든 범죄사실 부인하고 있다"며 "2심 판결을 봤을때 두 가해자들이 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두 사건을 따로 판결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동떨어지지 않은 일련의 같은 사건인데 하나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다른 하나는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대법원이 재판부를 달리하는 경우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경우 한 재판부가 사건을 병합해 제대로 판단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법원 선고 판결을 접한 피해자가 입장문을 보내와 대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피해자는 입장문을 통해 "3년을 넘게 기다렸는데 파기환송 소식과 무죄 판결 소식에 절망에 빠졌다"며 "성적 소수자라는 점을 알고서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강간과 강제추행을 일삼은 자에게 무죄를 판결한 대법원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또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고통들에 대해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결한 법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오늘의 저는 또한번 죽었다"고 덧붙였다.

공대위는 기자회견문을 내고 "대법원의 기각결정을 규탄한다"며 "시대착오적인 판결에 분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공대위는 "이번 선고 기각은 피해자와 피의자의 관계, 군대 내 강력한 위계질서, 해군 함정이라는 특수성, 성소수자라는 피해자의 위치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협소하게 해석한 군사법원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무죄판결 당시 분노한 국민들이 국민청원과 탄원서 등으로 목소리를 모아 상고했고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기다렸다"며 "그러나 대법원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3년4개월간 사건을 방치하는 바람에 그 기간에 또다른 군대 내 성폭행 사건들이 연이어 나왔다"고 설명했다.

또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로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대했던 1만여 여군들의 목소리를 묵살한 것"이라며 "군대를 성평등한 상식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 피해자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오판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대법원은 군인등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군 대령(당시 중령·함장)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피해자의 직속상관이자 당시 소령(포술장)이었던 B씨에 대해선 군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 행위에 관한 피해 장교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할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고, A씨가 무력해진 피해 장교의 상태에 편승해 간음행위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간음행위 역시 A씨의 유형력 행사로 인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B씨의 혐의에 대해선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한 정황이 있고 따라서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B씨의 유죄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A씨와 B씨에 대한 판단이 갈린 이유에 대해선 "사건의 구체적 경위,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해자의 진술 등이 서로 다르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나 그 신빙성 유무를 기초로 한 범죄 성립 여부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피해 장교의 직속 상관이었던 B씨는 2010년 9~11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를 10회 강제추행하고 2회 강간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장교는 B씨와 진행한 신상면담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고백했는데 B씨가 도리어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함장이었던 A씨는 피해 장교가 B씨에 의해 임신한 뒤 중절수술을 받자 이를 빌미로 2010년 12월 강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A씨에게 징역 8년을, B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2018년 11월 두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2심 판결에 불복한 군검찰이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buen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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