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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잃은 우크라 젤렌스키…절체절명 위기 속 재선 지지율 23%

러 침공 임박했다는 서방 경고 무시하다 뒤늦게 대응
공약 무산·인사 실패로 민심 싸늘…러시아 침공은 드라마 아니었다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2022-02-24 10:34 송고 | 2022-02-24 10:49 최종수정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AFP=뉴스1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AFP=뉴스1

한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국민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의 위협이 숨통을 조여오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지도자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키예프 국제사회연구소가 지난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재선을 원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국민 드라마' 후광, 위기관리엔 안 통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희극배우 출신이다. 2015년 '국민의 종'이라는 드라마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 극중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일하다가 반부패 운동으로 소셜미디어(SNS) 스타가 된 뒤 끝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역을 맡았다.

그는 TV를 깨고 나와 새바람을 일으키며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을 누르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기성 정치인에게선 볼 수 없었던 젊음과 신선함, 패기가 매력으로 작용했다. 동부의 반군 지역과 분쟁 해결에 나서겠다는 공약 또한 지지율에 한몫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린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때 시청자였던 국민들이 기대하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2022.01.20/news1 © AFP=뉴스1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2022.01.20/news1 © AFP=뉴스1

지난달 그는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미국과 서방의 경고를 그는 거듭 무시하며 "서방 국가들이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우크라이나가 맞닥뜨린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가 아닌 국내의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국경 지대에 러시아가 10만명이 넘는 병력을 배치한 것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봄에도 비슷한 규모의 병력이 배치됐었고 그때와 비교해 더 큰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며 둔감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등이 대사관을 철수하는 와중에도 소셜미디어에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불안감을 잠재우기에 바빴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상당수가 정부의 '고요한 대응'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야당 지도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침착하라는 요구는 그만하고 전쟁에나 대비하라"며 쓴소리를 했다.

야당 의원들과 전직 대통령, 총리, 외무장관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치명적인 위협을 인정하고, 이에 맞설 군대를 동원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르세니 야체누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젤렌스키는 지지율 하락이 두려워 국민을 안정시키려 한다"며 "하지만 러시아가 침공하면 다음 총선이나 대선이 아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 우려 속 리브네의 군사 훈련장을 방문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 우려 속 리브네의 군사 훈련장을 방문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부랴부랴 예비군 소집령…국민 시선은 싸늘

그리고 러시아의 침공은 현실이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반군 장악 지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며 땅을 도려내 갔고, 이 지역으로의 군 진입을 허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예비군 소집령을 내리고 한 달간 국가 비상사태를 발령하는 등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그리고 24일이 돼서야 러시아 지도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침공을 승인했음을 인정하며 큰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정부의 대응에 우크라이나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 NYT는 이미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민병대를 조직해 전투훈련을 하는 등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침공 위기 전에도 이미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부패 척결과 내전 종식이라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키예프의 운전사인 아나톨리 루덴코(48)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젤렌스키가 전쟁을 끝내고 부패를 물리치겠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물가는 오르고,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우린 훨씬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사 실패도 있었다. 부족한 정치 경험을 보완해줄 유능한 인사를 기용하지 않고, 대신 배우일 때 연을 맺었던 영화 제작자들과 스튜디오 감독, 극작가 등으로 참모진을 구성했다.

우크라이나의 차기 총선은 2023년에 열린다. 여러 여론조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당인 '국민의 종'은 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신들은 그다음 해 치러지는 대선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며 정치 지형이 급격히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 틈새를 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숨은 친러 정치인'들을 비밀리에 지원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페센코 펜타 응용정치연구소장은 AP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선거에서 대놓고 친러시아를 표방하며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대신 러시아는 숨은 동맹을 찾아 물밑에서 비밀 협상을 벌여야 한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저들에게 유한 정치세력을 찾기 위해 경제, 에너지, 정치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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