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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One]"차라리 내게 고통을"…코로나 시대 네덜란드 아동병원 입원기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2021-12-30 06:00 송고
네덜란드 지역 의료보험공단 소속 이송 전문 인력이 구급차로 아이를 이동시키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네덜란드 지역 의료보험공단 소속 이송 전문 인력이 구급차로 아이를 이동시키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육아는 흔히 극한의 기쁨과 극한의 고통을 함께 준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통은 아이의 미소에 재롱에 씻은 듯 잊히지만 아이가 갑자기 아픈 상황이 되면 부모에게는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린다. 특히 고통이나 증상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아픈 경우라면,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부모는 아이의 고통을 차라리 나에게 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만 4살 딸아이는 어느 날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더니 고열이 펄펄 끓었다. 코로나 시대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것은 코로나 감염이었고 지역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음성이었다. 네덜란드 병원에서는 아이들의 단순한 목감기 정도는 접수조차 해주지 않는 것을 잘 알기에 약국에서 해열제를 사 오고 자연스레 낫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의사들은 어린이의 경우 3-4일 열이 나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라고 하고 심하게 몸이 축 처지거나 의식을 잃는 경우가 아니라면 종합병원에는 갈 수도 없기 때문에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가는 환절기 감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의 상태는 확연히 나빠졌다. 목이 붓다 못해 고개를 들 수조차 없게 되었고 아이는 물 한 모금 삼키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주치의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보지만 금요일 늦은 오후 병원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남편은 주말까지 해열제로 버텨보자고 지금 가봤자 종합병원은 접수조차 어렵다고 했지만, 내 아이에게 뭔가 심각한 상황이 닥칠 것만 같은 엄마로서 직감에 아이를 업고 바로 병원으로 달렸다.

그야말로 큰 사고를 당해서 의식이 없거나 피를 철철 흘리는 외상이 뚜렷한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네덜란드 병원에서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증상이 약하지만 주말로 인해 주치의를 만날 수 없는 경우이거나 예약 없이 의사를 빨리 만나야 할 때는 응급실 옆에 있는 하우스 아츠 포스트라는 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곳에는 주치의들이 번갈아 상주하며 응급한 환자인지 아닌지 판단하여 다음 진료를 전문의에게 연계한다.
아이를 본 의사는 재빨리 코로나 검사부터 실시했다. 그때부터 격리된 공간에서 검사 결과를 받을 때까지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코로나 감염 양성일 경우 그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 또 음성일 경우 어떤 병이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만 6시간을 내리우는 아이를 달래고 또 달래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칠 무렵 코로나 음성 확인을 받았고 그다음 일반 병실로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극심한 고통을 서러운 울음으로 호소하는 아이의 증상을 재빨리 확인한 의사는 이 상태로는 집으로 보낼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때부터 네덜란드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네덜란드, 어린이 입원 및 치료 비용은 전액 무료

네덜란드의 소아병동에는 다양한 주제의 놀이 시설이 있다. 놀이치료 전문가들이 발달연령에 적합한 놀이를 제공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장난감과 그림을 제공했다. © 차현정 통신원
네덜란드의 소아병동에는 다양한 주제의 놀이 시설이 있다. 놀이치료 전문가들이 발달연령에 적합한 놀이를 제공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장난감과 그림을 제공했다. © 차현정 통신원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스스로 수분 섭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최대한 물을 먹여보라는 간호사들은 수시로 병실에 와서 아이에게 주스를 권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떼를 쓰자 바로 아이스크림을 가져왔다. 당장 수액이나 포도당 주사부터 꽂아줄 줄 알았는데 아픈 아이를 달래서 물 한 모금이라도 더 떠먹여야 한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염증반응을 확인했다는 의사는 아이가 어려서 주사로 항생제 투여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며 경구 항생제를 처방했다. 말짱한 상태로 주삿바늘 하나 없이 병원에 입원한 아이는 조금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코로나 시대 병원 입원이라니 주변의 걱정도 대단했지만, 너무나 느린 네덜란드 병원의 속도에 뭐든 빨리빨리에 익숙했던 한국 엄마는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

의사들과 간호사는 수시로 아이를 관찰했고 마신 물, 먹은 음식과 배변 양까지 정확하게 기록했다. 올 때마다 아이에게 작은 사탕 및 장난감을 가져다주며 엄마인 내가 느끼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반응했다. 하지만 입원 후 아이의 온몸에 발진이 올라오고 눈이 충혈이 되는 다른 증상이 나타나자 의사들의 병명도 제각각 엇갈렸다. 전담 소아과 의사는 있지만 매일 만나는 의사는 바뀌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아이의 병명에 불안해진 나는 의료진에게 심도 있는 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우리 아이보다 더 위급한 상황의 다른 환자에게 기회를 먼저 줘야 하고 한정된 의료 인력으로 인해 환자를 골라낼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순간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네덜란드란 것이 더욱 명확하게 다가왔다. 돈이 더 있다고 상급 병원에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유명한 의사를 고를 수도 없다. 검사를 원한다고 내가 검사 항목을 지정할 수도 없고 요청한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순서는 응급환자를 우선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마스트리흐트 대학병원 전경. 곳곳에 과도한 업무와 그에 비해 낮은 임금과 처우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차현정 통신원
마스트리흐트 대학병원 전경. 곳곳에 과도한 업무와 그에 비해 낮은 임금과 처우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차현정 통신원

네덜란드에서는 만 18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의료보험이 무료로 지원되고 입원비, 치료비는 대부분 의료보험에서 모두 충당된다. 아이가 병원에 입원한 뒤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네덜란드의 의료진과 의료시스템이었다. 추가적인 검사를 받아야 할 경우 비용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원무과에 가서 미리 수납을 하고 검사장으로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MRI 검사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전문의가 아이가 있는 병실에 이동 가능한 장비를 가지고 와서 검사를 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로날드 맥도날드 재단, 아픈 아이의 부모도 함께 보살핀다.

결국 일주일의 시간 동안 제대로 된 병명도 듣지 못한 채 아이의 상태는 확연히 나빠졌다.

의사들은 여러 차례 회의를 한 뒤 아이를 대학병원 소아병동으로 이동할 것을 결정했고 그곳에서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아 볼 것을 제안했다.

바로 이동할 수 있을 줄 알고 짐을 싸놓고 기다리는데 소아 병동으로 이동 중 아동의 상태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곰 인형을 잔뜩 가지고 도착한 앰뷸런스 수송팀은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틀어주겠다고 했고 일주일 넘는 병원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이동 중에 잠시 눈을 붙이라고 했다. 갑자기 앰뷸런스에 타고 있는 아이와 나 자신을 생각하니 서러움과 불안함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 내부 전경, 장기간 치료를 받는 소아환자들의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주말이면 가족 방문객으로 가득 찬다. © 차현정 통신원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 내부 전경, 장기간 치료를 받는 소아환자들의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주말이면 가족 방문객으로 가득 찬다. © 차현정 통신원

아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동안 엄마인 나는 애타는 마음에 물 한 모금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밤새 아프다고 보채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내가 여기까지 견딘 것은 인간으로서가 아니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대학병원 소아병동 입원은 상황이 매우 위중한 아이들을 선별적으로 치료하는 곳이다. 병실을 배정받자마자 간호사가 와서 소아병동에 입원하는 부모와 가족을 위한 숙박시설에 대해 안내했다.

남편에게 아이를 잠시 맡기고 간호사가 준 안내문을 따라가니 소아 병동과 바로 연결되어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작은 건물이 보였다. 두 손을 맞잡은 그림 표지판 아래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Ronald Mcdonald House)라는 글자가 보였다.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에 들어가 입소 신청을 하자 자원봉사자들이 따스히 안내해 준다. 아이가 대학 병원에 입원한 경우 간병을 해야 하는 가족들의 심적 고통이 상당하고 부모 중의 한 명이 번갈아가며 병실을 지켜야 하는 상황 및 집과 거리가 먼 경우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숙박 비용을 덜어주겠다는 개념의 글로벌 비영리 법인에서 운영되는 곳이었다.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에서는 원하는 요리를 직접 해서 먹을 수 있고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제공 받을 수도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에서는 원하는 요리를 직접 해서 먹을 수 있고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제공 받을 수도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네덜란드에는 1985년부터 총 12곳의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가 운영되고 있고 ‘병원 가장 가까운 집’이라는 모토로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의 기업 후원 및 개인 후원을 바탕으로 아픈 아이를 둔 부모에게 잠자고 쉴 곳을 제공하고 있다.

내가 지내게 된 마스트리흐트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에는 9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그중 대부분은 20년 넘게 이곳에서 묵묵히 자원봉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안내에 나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피부색이 다른 나에게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지 않았지만 따스한 눈빛 인사해 주었고 입원한지 열흘이 지나도록 병명조차 모르는 아이의 상태에 망연자실하여 앉아있는 나에게 오늘 저녁은 수프를 끓이는 날이니 잊지 말고 꼭 먹고 가라는 메모를 남겨주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여느 호텔 못지않게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을 제공받았다. 장기간의 병원 생활에 지친 가족들을 위한 집과 똑같이 생긴 거실 구조의 응접실이 인상적이었다. 신생아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킨 부모의 경우 모유 수축을 해서 병원으로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층마다 유축 시설이 따로 있었다. 2020년 기준 12곳의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에서는 4천 명이 넘는 가족을 지원했고 전국적으로 2천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휴일에도 24시간 교대를 이어가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에는 층마다 모유를 직접 짜서 신생아에게 가져갈 수 있도록 유축기를 보유하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에는 층마다 모유를 직접 짜서 신생아에게 가져갈 수 있도록 유축기를 보유하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또한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는 장기적인 장애나 후유증을 지닌 아동들과 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휴가 리조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와 그 가족도 어느 가정과 다름없이 당연히 누려야 할 휴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숙박 시설 이용 비용은 최소한으로 책정되고(한화 기준 1만 5천 원 정도) 그마저도 의료보험에서 대부분 감당하고 있다.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 안에는 무료 음식이 제공되기도 하고 스스로 빨래를 할 공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잠시라도 병원을 떠나 조용한 공간에서 눈을 붙이고 재충전을 한 뒤 아이의 간병을 교대하러 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2주가 넘도록 입원을 하고 받을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했지만 끝끝내 아이의 병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왜 찾지 못하냐고 당신들은 병명을 당연히 찾아내야 할 의사들이 아니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2년이 넘도록 봉쇄를 거듭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상황에서 내가 탓할 것은 의료진이 아니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병원 안에 덕지 덕지 붙은 현수막을 더듬더듬 읽어봤다.

‘더 높은 보수와 더 나은 근무환경을 제공하라. 우리 의료진은 벼랑에 서있다. 우리가 무너지면 당신의 목숨도 무너진다.’

병원 곳곳에 붙어있는 의료진들의 항의 서한들. 계속된 코로나로 업무가 가중되고 지쳐가는 네덜란드의 의료진들은 과중한 업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병원 곳곳에 붙어있는 의료진들의 항의 서한들. 계속된 코로나로 업무가 가중되고 지쳐가는 네덜란드의 의료진들은 과중한 업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 © 차현정 통신원

병명은 아직 모르지만 아이의 상태는 차도가 있었고 통원 치료가 가능한 상태이니 퇴원 결정이 내려졌다.

한 달간 알게 모르게 정들었던 친절한 의료진은 퇴원 전 마지막 브리핑을 위해 우리 부부를 불렀다. 병명 파악을 위해 최선의 검사를 실시했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으며 이러한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의료진으로서 겸허히 인정한다고 했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의료진의 태도에 억울한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다행히 큰 병으로 확산되는 증상이 아니었고 아이의 상태도 모두 정상 수준으로 회복했으니 한 달간 통원치료를 통해 지켜보자는 결론이었다.

입원, 치료, 검사, 퇴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의료진은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호자와 논의했다. 때로는 느린 속도에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기도 했지만, 보호자는 병원비나 검사 비용 앞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고, 의료진은 자본의 논리보다 환자 우선으로 치료를 이어나갔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감사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와 병원에서 받은 따스한 응대를 잊을 수 없어 아이와 다시 함께 방문했다.

장기 입원 아동의 가족 및 소아암 환우를 위한 개인 기부 서약을 하고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의 상징인 토끼 인형을 구매하여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다.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의 마스코트인 토끼 인형을 구매하면 수익금을 장기 입원 소아 환자 가족들을 위해 사용된다. © 차현정 통신원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의 마스코트인 토끼 인형을 구매하면 수익금을 장기 입원 소아 환자 가족들을 위해 사용된다. © 차현정 통신원

“너를 위해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애썼단다. 이 고마움을 잊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자.”

아이의 밝은 웃음 뒤로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을 담은 액자가 더 밝게 빛난다.

거듭된 강력 봉쇄로 잔뜩 우울한 네덜란드에서 연말을 맞이하지만 희망을 가슴 가득히 담아 본다.


chahjli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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