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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 '쿠데타 주역' 육사11기…비극의 역사 속으로

[전두환 사망] 軍사조직 '하나회' 결성…'12·12군사반란' 및 '5·17내란' 일으켜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2021-11-23 13:54 송고 | 2021-11-23 16:27 최종수정
지난 1988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지난 1988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42년 전 '12·12군사반란'의 주역 2명이 올해 모두 세상을 떠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지병 악화로 숨을 거둔 데 이어,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며, 발견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1980년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했던 두 사람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제11기 동기생(1951년 입교)이다. 전 전 대통령은 1931년 12월 경남 합천,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월 경북 달성 출신이다.

이들은 전두환·노태우·김복동 등 육사 재학 시절 영남 출신 생도들을 중심으로 '오성회'란 친목모임을 만들었고, 이 모임이 훗날 군내 최대 사조직 '하나회'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육사 졸업 뒤 서울대 문리대 학생군사교육단(ROTC)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1년 박정희 소장(당시 육군 제2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주도의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군부를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전두환은 국가혁명위원회 및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관에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박 대통령 집권 내내 군에서 승승장구했다. 하나회는 그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1.23/뉴스1

그는 1979년 '10·26사건'(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고, 이후 하나회를 동원한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을 장악했다. 노태우는 이때 육군 제9보병사단장으로서 휘하 부대를 동원해 전 전 대통령을 도왔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은 민주화 논의가 한창이던 1980년 5월17일 정권 장악을 위해 비상계엄 확대조치(5·17내란)를 발동했고, 이튿날 광주에서 벌어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이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사실상 국정을 장악한 전두환은 대장까지 '셀프 진급'한 뒤 1980년 8월 전역했다. 그리고 그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 축출 뒤 소집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직에 올랐고, 이후 12대 대통령까지 지냈다.

노태우는 전두환 집권기간(1980~88년) 정권의 '2인자'였지만, 동시에 '1인자'(전두환)로부터 견제를 받는 처지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1981년 7월 보안사령관(육군 대장)을 끝으로 군 생활을 마친 노태우는 이후 정무 제2장관과 체육부·내무부 장관, 1988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그는 1985년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정당(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전두환 임기 말 정치적 후계자로 낙점된 노태우는 1987년 당시 민정당 총재로서 '6·10민주항쟁'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등을 수용하는 내용의 '6·29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노태우는 그해 10월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통과된 뒤 12월 치러진 13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우리나라의 첫 직선제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0.26/뉴스1
노태우 전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2021.10.26/뉴스1

선거과정에서 '보통사람'을 표방했던 노태우는 취임 후 군부 출신 인사들을 정리하고, 그간 정치활동이 금지됐던 재야인사들을 복권시키는 등 '통합'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도 노 전 대통령 집권기에 이뤄진 일이다.

그러나 그는 1993년 퇴임 뒤 '12·12군사반란'과 '5·17내란'을 주도한 등의 혐의로 1995년 전두환과 함께 구속 기소돼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같은 해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됐다.

전두환도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노태우와 함께 풀려났지만, 두 사람은 그동안 기본적인 경호 외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모두 박탈당한 상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2002년 전립선암 수술 뒤 건강악화로 오랜 기간 칩거생활을 해왔으며, 특히 희소병인 소뇌위축증을 앓아오다 올 10월26일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작년까지만 해도 나이에 비해 건강한 모습을 보여 왔으나 올 들어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날 오전 자택 화장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친구'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28일 만이다.

전 전 대통령은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부인 이순자씨로부터 전해 듣곤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당시 거동이 불편해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직접 찾진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생전에 칩거생활을 하는 동안 아들 재헌씨가 부친을 대신해 수차례 '5·18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관련 재판을 이어오는 등 사뭇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군 당국은 앞서 노 전 대통령 사망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전 전 대통령 사망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방부는 지난 5월18일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선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ys417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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