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귀거래사] 평범한 주부서 농군 변신…귀농 5년차 괴산 박지혜씨

'두 번째 고향'서 절임배추·옥수수·꽃으로 부농의 꿈 키워
"지식·경험·노하우 쌓아 농업기반 확실히 잡는 게 목표“

(괴산=뉴스1) 김정수 기자 | 2021-10-02 05:30 송고
편집자주 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에서 어촌에서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귀농 5년 차 주부농군 박지혜씨.© 뉴스1
귀농 5년 차 주부농군 박지혜씨.© 뉴스1
 
올해로 귀농 5년차. 시골살이 적응에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다. 도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농사일이 좋아 충북 괴산에 정착해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는 박지혜씨(41‧여)다.

인천이 고향인 박씨는 5년 전 가게를 운영하던 남편 김영훈씨(42)와 커가는 아이들을 생각하게 됐다. 삭막한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기보다 시골이 좋겠다고 마음을 굳혔고 문득 시할머니와 시아버지 고향인 괴산을 떠올렸다.
이렇게 박씨는 남편과 문광면 송평리 은행정 마을로 2017년 1월 무작정 귀촌했다.

처음에는 하는 일 없이 쉬고 무료한 일상을 보냈으나 뭐라도 하고 싶어 이리저리 동네일에 일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감자 캐고 옥수수 심고 인삼밭과 고추밭이며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절임배추 생산 농가에서 일을 돕다가 말도 안 되는 재미를 느끼게 됐다.

농사 중 제일 힘들다던 절임배추 생산이 재미있다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만의 감동과 희열을 느꼈다.

내가 생산한 배추를 따다 예쁘게 다듬고 손질해서 고객한테 보내주고 덕분에 너무 맛있게 김장했다며 감사 인사까지 받는 일은 최고의 감동과 기쁨이 됐다.

나의 농업의 길은 2310㎡(700평) 임대로 얻은 밭에 전작으로 옥수수를 심고 후작으로 배추농사를 짓는 것으로 시작됐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고 본격적인 농번기가 매년 시작됐다.

온통 밭에는 퇴비를 뿌려놓아 가득한 시골의 냄새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환경에 적응도 되기 전 나의 첫 농사를 준비한다.

매년 4월 초에는 옥수수 파종을 해야 했다. 20여일 모종을 키워 밭으로 나가야 하는 등 농사의 절반 이상이 모종에 달려있다고 한다. 마땅히 모종을 키울 만한 장소가 없어 앞집 아저씨의 하우스를 한 해 얻어 사용하기로 했다.

물주는 시간과 하우스 환경관리 등 앞집 아저씨는 농사에 있어서 첫 스승이다. 스승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지나가는 소리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옥수수 수확일이 다가왔다. 옥수수 숙기를 알고 수확 일을 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박지혜씨가 트랙터를 타고 밭을 갈고 있다.© 뉴스1
박지혜씨가 트랙터를 타고 밭을 갈고 있다.© 뉴스1

제철이 되자 옥수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열심히 옥수수 주문을 받았다. 네이버 판매 스토어도 개설하고 SNS 활동도 열심히 했다.

면적대비 생산량을 대충 파악했다. 양에 맞게 70% 선주문을 받아두고 굉장히 뿌듯했다.

옥수수를 따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선별해 상자포장까지 한다. 택배 보내는 작업까지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이다.

다음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답변할 틈도 없이 전화는 끊겼고 바로 문자가 들어왔다.

이가 빠진 옥수수가 보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옥수수. 선별하고 좋은 것만 고르고 골라 보냈지만 냉혹한 고객의 쓴 소리에 가슴이 졸여온다.

된통 한소리 듣고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도 고객이다.

내용은 오전 일찍 받아 삶아 먹고 있는데 너무 부드럽고 맛있어서 한 상자 더 사서 동생네 보내주려고 연락하셨다고 한다.

고객의 소리에 울고 웃고 잠깐의 몇 시간이 너무 피곤하다. 농사의 끝이 수확이라고 생각했는데 농사의 끝 그리고 결과는 고객의 소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옥수수 수확을 이래저래 마무리하고 잠깐의 쉼도 없이 배추 파종의 중요한 시기가 왔다.

첫해 농사라 긴장은 놓지 않았다. 8월초 배추 파종을 했다. 가장 더운 시기인 만큼 어린 육묘를 기른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다. 오랜 경력의 베테랑 농부들도 한여름의 배추육묘는 힘들다고 한다.

한 낮 하우스 내부 온도는 40도를 훌쩍 넘는다. 어린 새싹이 버티기엔 당연히 힘든 조건이다.

힘든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버티어 야무진 묘종으로 키워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힘겨운 육묘기간인 20일의 시간이 지나고 본 밭으로 옮겨 심었다.

이틀 뒤 다시 밭으로 나갔다가 눈을 의심했다. 배춧잎들이 벌레들의 공격에 구멍이 여기저기 나있고 심지어는 줄기가 통째로 끊어진 곳도 보였다. 귀뚜라미와 벼룩잎벌레의 습격이었다.

박지혜씨가 남편 김영훈씨와 튤립 부군을 심고 있다.© 뉴스1
박지혜씨가 남편 김영훈씨와 튤립 부군을 심고 있다.© 뉴스1

정식 전 육묘상에서 방제를 하고 내보냈었어야 하는데 미처 몰랐던 것이다. 뒤늦은 방제로 뒷북을 치고 한순간에 배추들이 흉측해졌다. 그날의 경험으로 또 한 가지 농사법을 배우고 알아간다.

90여일이 지나가고 11월. 배추 수확을 하고 절임배추를 시작했다. 옥수수에 이어 절임배추 판매문자를 발송하고 네이버 스토어에도 상품등록을 새롭게 했다. 나의 절임배추 첫 고객은 옥수수를 구입해주셨던 분들이 대상이었다.

판매목적 달성보다는 고객 한 명 한 명과의 통화에 집중해 편한 대화로 원만한 관계를 형성했고 그들의 특성을 기억하게 됐다.

우선 이름을 기억해주는 일에 고객은 감동하고 첫 해 절임배추 판매는 생각보다 좋았고 이후 반응도 만족스러웠다.

절임배추와 옥수수를 시작으로 지난해부터는 꽃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재 5동의 하우스(4620㎡·500평)에서는 튤립, 백합, 프리지아를 재배하고 있다. 1년도 되지 않았지만 품질을 인증 받아 대도시 도매시장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5년 차 귀농인 박씨와 남편의 고생으로 얻는 수익은 연간 2억원 이상이다.

절임배추를 생산해 연간 1억5000여 만원과 옥수수 수확으로 3000여 만원, 꽃을 판매해 3000여 만원의 수익을 올리며 부농으로 성장하고 있다.

박씨는 농사일도 힘든데 문광면 생활개선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회장을 맡은 생활개선회는 봉사활동을 하거나 여성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충북도 농업기술원이 마련한 유튜브 할용 소득창출 부분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괴산에 정착하면서 개설한 유튜브 채널 '괴산 울엄마'에 들어가면 고구마 보관방법, 백합 심는 방법, 농업용 드론 활용하기, 꽃의 모양과 수확방법, 고추 심는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구독자는 5만5000여명, 조회수는 767만3890회에 달하고 있다.

박씨는 "농업에 대한 지식, 경험, 마케팅 노하우 등을 쌓아 기반을 확실하게 잡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올바른 농산물 생산으로 우리농산물의 가치를 높이겠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나 자신만의 농업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쌓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농작물도 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벌써 내년이 기다려진다.
 



5229@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