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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 '싱크홀'로 상상해 본 북한의 재난 상황…'새 집'을 준다고?

'내 집 추락'이 진정한 재난? 영화 '싱크홀'과 북한의 재난 보도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2021-09-04 10:00 송고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영화 '싱크홀' 포스터.(쇼박스 제공) © 뉴스1
영화 '싱크홀' 포스터.(쇼박스 제공) © 뉴스1

"내 집을 마련하면 대대로 남길 가구 하나는 사고 싶었어요."

빌라 한 동이 땅 아래 500m까지 추락한 상황, 영화 '싱크홀'에서 동원(김성균 분)은 11년 만에 구입한 '내 집'과 고급 흔들의자가 재난 앞에 무용지물이 되자 망연자실하며 이렇게 말한다. 영화는 싱크홀이라는 재난에, 땅 속으로 '내 집'이 추락한다는 진정한 재난(?)이 합쳐진 영화로 불릴 만큼 험난한 '내 집 마련'에 대한 단상도 담고 있다.
북한 매체에서 재난은 그 자체보다 '복구'에 초점을 맞춰 다뤄진다. 올 여름 함경도를 중심으로 수해를 입은 북한은 인민들에게 "원래 살던 집보다 더 좋고 훌륭한 집을 마련해주었다"라고 선전하고 있다. '내 집'이란 개념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살 집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북한 매체에도 집을 잃고 망연자실한 수재민들이 아닌 새 집을 받고 좋아하는 인민들만이 소개된다. '재난영화' 같은 상황은 남한에만 벌어지는 것일까. 

◇ "재난을 전화위복으로 삼자"…집 지어주는 북한

"서방언론들은 '북조선이 제재, 악성전염병, 자연재해라는 3중고로 경제적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저마다 목청을 돋구었지만 조국은 역경을 딛고 우뚝 일떠섰다."

북한 대외용 월간지 '금수강산'은 9월호에서 지난해 태풍 8·9·10호로 큰 수해를 입은 북한이 복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자찬하는 글을 실었다. 최근 함경남북도에 폭우가 쏟아져 또 다시 복구에 나선 북한이 지난해 성공 사례를 재차 상기하며 '결속'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수해 이후 도로, 강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 인민들에게 새로운 살림집을 지어주는 북한은 재난을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재난을 겪고 흔들렸을 민심을 다잡기 위한 선전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해 수해로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함경북도 김책시, 강원도 김화군, 함경남북도, 나선시 등 전국적인 피해를 입은 북한은 새 살림집 짓기에 집중했다. 특히 김정은 총비서가 한 달 새 두 번이나 시찰한 은파군 대청리에는 그의 '특별 지시'에 따라 1동 1세대 주택이 지어졌다. 1동 '다세대'인 북한 농촌 지역에서 이 같은 주거 형태는 이례적이다. 보통은 가로로 긴 집에 내부에 벽을 세워 생활권을 나누는 '하모니카형 주택'이 일반적인데, 이는 주민 간 상호 감시를 용이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지난해 수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에 지어진 새 집들. 1동 1세대 형식이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지난해 수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에 지어진 새 집들. 1동 1세대 형식이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 매체는 대청리 현지지도에 나섰던 김 총비서가 "어떤 집을 좋아하는가"라고 미리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그들이 바라는대로 지어주자"라고 지시했다고 선전했다. '1동 1세대' 주택을 지어준 것은 수해로 흔들렸을 민심을 달래기 위한 목적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표적인 비철금속 주생산지인 함경남도 검덕지구도 수해 이후 김 총비서가 둘러보고는 단층·소층·다층의 살림집들을 조화롭게 배치할 것을 지시했다.

시골 마을에는 여전히 1동 다세대 주택이 주를 이루지만 지난해 수해를 계기로 새로 지어진 집들이 지방 건설의 모범 사례로 제시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과학자, 기술자, 교육자 등 북한 내 엘리트를 위해 지어진 평양의 초고층 살림집은 아니지만 매체에 소개된 수재민들은 모두 만족을 넘어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 북한의 '새 집 지어주기' 선전…자본주의와 비교하기도

북한이 특히 수해 지역 새 살림집 건설과 선전에 집중하는 이유는 '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자본주의 사회를 의식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지난 7월 "남조선과 자본주의 나라들 인민들에 있어 내 집 마련은 평생의 꿈"인 반면 "우리 인민들은 집값이 얼마인지도 모른다"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공화국(북한)에서는 새 집을 근로하는 인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게 국가 정책, 하나의 일상"이라는 게 북한 매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남한에서는 부동산이 자주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며 최근 드라마에서도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집값 1번지, 교육 1번지에서 벌이는 복수극을 다루며 시즌3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JTBC 드라마 '월간 집'은 집과 관련해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전세금을 사기당했지만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나영원(정소민), 재건축만을 기다리는 최고(김원해), 주택 청약 당첨을 꿈꾸는 남상순(안창환), 고액 월세를 감당하며 사는 여의주(채정안) 등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동등하게 살 집을 제공한다며 체제 우월성을 선전한다. 국가가 집을 짓고 거주자를 배정해주는 북한에서는 집 때문에 사기 당하거나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주택거래가 불법인 북한은 국가가 집을 짓고 거주자를 배정한다. 인민위원회로부터 '국가 살림집 이용허가증(입사증)'을 발급받은 인민만이 국가가 정해준 집에 살 수 있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 집을 준다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엔 주택배정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북한에서도 음성적 거래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중개업자(거간꾼)들이 입사증 명의 변경, 조작 등으로 거래를 주도한다. 거주가 아닌 되파려는 목적으로 입사증을 사는 사람도 있을 만큼 '자본주의화'되기도 했다. 북한 매체들이 다루지 않는 실상에는 남한 드라마 '펜트하우스'나 '월간 집' 같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한 함경남도의 수해 복구 사업 관련 사진. 신문은 수해 복구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수백 통의 위문 편지가 도착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한 함경남도의 수해 복구 사업 관련 사진. 신문은 수해 복구에 동원된 군인들에게 수백 통의 위문 편지가 도착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 재난 자체보단 '복구'에 초점…한 달 이상 상세히 보도

북한은 수해 이후 몇 달 간은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는 각지 소식을 꾸준히 매체를 통해 보도한다. 재난 자체보다 복구, 특히 이 과정에서 제공되는 당과 김 총비서의 '은혜로운' 조치가 중점이다.

지난해 여름 폭우와 태풍 8·9·10호를 연달아 맞은 북한의 보도를 보면 피해 상황을 예견한 뒤, 한 달 이상은 복구 상황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 북한은 지난해 8월7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홍수 피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를 찾아 피해 상황을 파악했다면서 처음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후 살림집 건설 시작부터 골조 공사 완료, 새집들이 등 모든 과정을 같은 해 10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셔츠 차림으로 큰물 피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를 둘러보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셔츠 차림으로 큰물 피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를 둘러보고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함경남도 검덕지구가 지난해 9호 태풍 마이삭으로 인해 받은 피해도 9월 김정은 총비서가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6차 확대회의를 소집하면서 알려졌다. 황해북도 금천군 강북리도 같은 달 김 총비서가 현지지도에 나서면서 피해 사실이 공개됐다. 모두 김 총비서의 현지지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김 총비서는 지난해 유독 수해 현장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매체를 통해 드러내며 애민 정신을 부각했다. 김 총비서는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는 8월과 9월 두 차례 찾았고 8월엔 황해남도를, 9월엔 함경남도를 살폈다. 태풍 9호 마이삭으로 피해를 입은 함경도에는 1만2000명으로 구성된 수도당원을 급파해 복구를 돕게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총비서는 직접 승용차를 몰고 가 진흙길 위를 걸으며 복구 상황을 지시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집권 초기, 지시만 하고 현장에는 당 간부들을 투입했던 이전과는 달라진 행보다. 2012년 태풍 '볼라벤'이 닥쳤을 때는 최영림 당시 내각총리가 현장을 살폈다. 김 총비서는 2015년 여름 홍수 피해가 난 나선 지역에 처음 시찰을 나간 뒤론 재해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재난을 통해 흔들렸을 민심을 다독이는 주요 계기로 삼은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를 각종 재난이 겹친 '잊지 못하는 해'임과 동시에 김 총비서의 '은정이 깃든 해'로 선전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수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주민들이 자신 명의의 예비양곡과 필수 물자를 보내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수해를 입은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주민들이 자신 명의의 예비양곡과 필수 물자를 보내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 재난 이후 북한 주민들은? '감사' 일색

재난보도에 등장하는 북한 주민들도 망연자실하기도 보다는 당의 은덕에 감사하는 분위기다. 특히 새 집을 얻은 주민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자주 노출된다.

지난해 9월 황해북도 금천군 강북리, 10월 은파군 대청리에서 복구를 마치고 새집들이를 하는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김 총비서가 다녀가거나 특별 조치를 취해준 지역의 주민들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금천군 강북리, 은파군 대청리 주민들, 올해는 함경남도 신흥군 주민 등이 김 총비서에게 편지를 통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함경남도 주민들은 감사 편지에서 "너무 호강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옹색하기 그지없다", "더 많은 일을 하여 당의 은덕에 보답하자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여인들도 파괴된 제방복구장에 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껏 일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집을 잃은 슬픔보다는 새 집을 얻은 데 대해 감사하며 더 열심히 일할 각오를 다진다는 말이다. 

영화 '싱크홀'의 한 장면. (싱크홀 스틸 컷) © 뉴스1
영화 '싱크홀'의 한 장면. (싱크홀 스틸 컷) © 뉴스1

"10년 뒤의 행복보다는 지금 당장 오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에요."

영화 '싱크홀'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승현(이광수)과 은주(김혜준)는 결혼 뒤 캠핑카에 살림을 차리고, 함께 생존한 사람들을 초대해 이렇게 말한다. 언제 땅으로 꺼질지 모르고, 구하는데 10년 이상 걸리는 '내 집' 대신 '오늘의 행복'을 위해 어디에든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캠핑카를 택한 것이다.

1년 평균 900건, 하루 평균 2.6건의 싱크홀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아직 싱크홀이 나타났다는 보도는 없다. 만약 있더라도 복구에 집중하며 "너무 호강"한다거나 "은덕에 보답하자"라고 말하는 인민들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집안 대대로 남길 가구가 사라져 망연자실하는 동원이나 오늘의 행복을 위해 '움직이는 집'을 택한 승현과 은주가 북한에도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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