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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에 닭들 모으듯 안돼"…20년차 노숙인이 말하는 '서울역 노숙'

노숙인들 "천막이라도 설치해주면…" 고통 호소
지원시설 있지만 코로나 '음성' 결과서 요구 및 '집합시설' 문제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2021-06-12 08:25 송고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노숙인들이 앉아 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완전 땡볕이야. 여름철에 이렇게 있으면 사람 죽어요."

올해 중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전영호씨(53·가명)의 말이다. 다른 노숙인들과 길바닥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던 그는 "나도 7번이나 쓰러졌다"며 때 이른 무더위에 고통을 호소했다.

광장과 붙어있는 노숙인 지원시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가리키자 전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못 들어간다"며 "옛날에는 저런 쉼터에 200~300명씩 들어가서 에어컨 틀어주면 시원하게 잤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해 더 힘들다"고 했다.

뉴스1이 이날 노숙인들이 흔히 거처로 삼는 서울역 일대를 돌아본 결과 대부분의 노숙인은 반팔 옷을 입거나 햇빛을 막을 수 있는 얇은 긴 옷을 입고 있었지만 초여름 날씨에 힘들어했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 겨울철부터 입었을 법한 경량패딩 같은 두꺼운 옷을 입은 노숙인도 있었다.

이들은 여름에 다가올 무더위와 장마를 걱정했다. 마땅한 거처가 없는 이들은 날씨와 환경에 취약하다. 노숙인들은 여름이 되면 더운 거리를 침대 삼고, 비바람을 이불 삼는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이 터진 지난해부터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던 노숙인 쉼터 등의 출입이 제한됐고,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건축일 등 일거리가 사라졌다고 이들은 토로했다.

노숙인들이 여름을 수월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쉼터, 급식소 등 지원센터에 출입하는 방법 정도만이 존재한다. 문제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음성확인서'를 시설에서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검사결과를 통보받기 위한 휴대전화가 없는 노숙인이 많고, 매번 검사를 받는 일도 번거롭다는 이유 등으로 지원받기 자체를 포기한 노숙인도 많다.

홈리스행동은 노숙인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날씨 등 환경에 더욱 취약해진 이유를 지원 시스템 자체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코로나 검사는 밀접접촉이 의심된다든지, 확진자와 함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데 기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시가 지난달 거리노숙인 쉼터 5곳에 전신자동살균기를 설치한다고 발표한 '약 5개월간 여름철 종합대책'이 "노숙인들에겐 모욕적인 일"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등 유행병이 도는 상황에서 단순히 쉼터 방역을 철저히 해 노숙인들을 들이는 방법은 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밥을 주거나 잠자리를 제공하는 많은 노숙인 시설은 노숙인을 최소 수십 명 넘게 한곳에 모아 집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라며 "케이지에 닭들을 모아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겪은 생활환경이나 서비스가 얼마나 비인권적이었나 봐야 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말 서울시에 코로나19 상황에서 노숙인의 생존·안전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하라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권고했다. 인권위 결정문에는 일시적 잠자리 제공시설의 '과밀 수용' 문제 해결 및 급식 양·질 개선과 횟수 확대 등이 담겼다.

이 활동가는 "무더위 쉼터도 노숙인을 집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지난해 서울시가 취약계층노인을 위해 운영한 '무더위 안전숙소' 등의 방식을 쓰면서 궁극적으로는 주거기준법에 근거한 최저주거기준에 맞춘 서비스를 노숙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씨와 함께 있던 20년차 노숙인 김준호씨(45·가명)도 "천막으로라도 쉴 곳을 설치해주고, 코로나 안 걸리게 칸막이 설치만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라며 "재정 지원 대상도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에 해당하고, 절차도 복잡해서 신청 못 한다"고 했다. 전씨는 "오세훈 시장이 나설 때"라고 덧붙였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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