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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의사 수술…한국은 처벌 못해도 美英선 징역형·면허 취소

최근 3년 음주의료 6건 모두 '1개월 자격정지'
의료법 개정안 발의돼도 의료계 반발에 난항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2021-03-28 08:0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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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술 취한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해 아기가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의사의 음주 진료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의사가 음주 상태로 진료해도 형사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의료사고가 발생해 문제가 되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처벌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영역이라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다. 
지난달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가 논의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과실에까지 면허를 취소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법 개정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이에 비해 주요 선진국들은 의사의 음주 진료가 의료사고로 이어질 경우 면허 취소는 물론 징역형으로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에서도 고의가 아닌 경우 법적 처벌보다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행정기구가 자율 징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법원은 프랑스 남서부 오르테즈 병원에서 음주 상태로 수술을 집도하다 산모를 산망하게 한 의사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또 피해자 가족에게 약 165만달러(18억 6764만원)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미국 켄터키주에선 2018년 만취한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온 성형외과 의사가 간호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이 의사는 켄터키주 당국으로부터 무기한 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1994년 법을 제정해 비정상적인 사망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24시간 안에 경찰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법을 위반해 사건을 은폐할 경우 형사 처벌한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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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사안에는 좀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응급 상황이거나 대체가능한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술을 마셨더라도 환자를 수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청주 산부인과 사건도 공휴일이라서 출근하지 않은 의사가 당직 의사로부터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에 복귀해 수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사례를 보면 소송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 1982년에서 2001년까지 약 30년간 25건의 의료사고에서 관련 의료진이 형사 처벌을 받았다. 대부분 음주 진료로 인해 환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였다. 

그러나 미 법무부에 공개된 2003년 이후 2021년까지 18년간 의사 295명이 형사 처벌을 받은 사례 중 음주 진료로 처벌받은 경우는 없었다. 대신 미국 의료계는 자체 윤리기구를 두고 내부 징계를 하고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진과 법률 전문가, 윤리학자들이 참석해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면허 취소 등 처분을 내린다.

영국도 의사가 윤리 지침을 위반하는 경우 환자 측이 의사심의회(GMC·General Medical Council)에 책임을 묻는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관련 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의료법 66조와 의료법 시행령 32조에 따라 의사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의료인의 품위를 손상할 경우 1년 이내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음주 의료행위도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모두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술을 마시고 의료행위를 해 적발된 의사는 6명인데 모두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입법 필요성이 대두돼 지난 20대 국회에서 의료법상 음주 의료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 두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이번 의료법 개정안도 '금고 이상의 형'에 과실 사고가 들어갔을 뿐 음주 진료를 처벌하는 명시적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는 음주 진료를 처벌하더라도 징계권을 의료인 단체에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음주 의료행위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당연히 업무 중 술을 마셔선 안된다"면서도 "이를 일률적으로 법으로 처벌하는 건 과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음주 진료 등으로 도의적 문제가 생겼을 때 (형사처벌이 아닌) 면허 관리 기구를 통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방식"이라며 "의협도 면허관리원을 신설하려는 노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정부가 의사 면허의 실질적 권한을 의료계에 이양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술을 마시고 정상적인 진료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음주운전이 처벌받는 것처럼 음주진료로 환자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의료법에 따라 처벌받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운영되는 윤리위원회도 민간 기구라기보다는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된 행정기구에 가깝다"면서 "의료계가 자정 능력이 있고 사회적 신뢰를 받을 때라야 자체 기구를 만들 수 있으며 개별 이익단체에 자율징계권을 주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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