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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의 畵音] 인생이 바뀌는 결정적 순간

알폰스 무하와 안토닌 드보르작

(서울=뉴스1)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 2021-03-30 07:00 송고 | 2021-06-08 15:18 최종수정
알폰스 무하의 '황도 12궁'© 뉴스1
알폰스 무하의 '황도 12궁'© 뉴스1
오, 달님이여,
잠시 제 곁에 머물며
제 사랑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부디 그에게 전해 주세요……
여기서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의 영혼이 제 꿈을 꾼다면
어쩌면 깨어서도 저를 기억할 수 있겠지요.
(오페라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 가사의 일부 )

인간과 사랑에 빠진 물의 요정 루살카. 영원한 삶이 약속된 자신의 세계를 떠나, 사랑을 위해 유한한 인간의 삶으로 뛰어들어간 그녀의 이야기는 슬라브 신화를 모티브로 한다. 이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가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 -1904)의 '루살카'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와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오페라는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보헤미안의 숲 속 물안개 가득한 호수에 사는 루살카는 가끔 수영을 하러 오는 왕자에게 마음을 뺏긴다. 그가 호수에 몸을 담글 때면 물의 모습을 한 루살카가 그를 안아주곤 했지만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는 왕자 때문에 그녀는 서운하기만 하다. 마침내 인간이 되어 그에게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루살카. 하지만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그녀의 모습은 안타깝지만 아름답다.

'달에게 부치는 노래'는 루살카가 달을 보며 부르는 아리아로 인간이 되기 전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서정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곡은 기억하기 쉽고 친근한 멜로디로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도 삽입됐고, 크로스오버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러 대중에게 더욱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구불거리는 긴 머리칼, 물 안개 속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물의요정 루살카는 드보르작과 동시대를 살았고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1939)는 꽃이나 식물 덩굴과 같은 자연의 곡선을 이용한 장식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는 어릴적부터 천재적 소질을 보였다. 그가 그린 '십자가'를 보면 8살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성인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그는 189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새로운 연극 '지스몬다'를 위한 포스터 제작을 위해 인쇄소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맞아 인쇄소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황.

때마침 베르나르의 매니저가 알폰스 무하가 일하던 인쇄소를 찾았고, 무하는 인쇄소의 작가를 대신해 포스터를 제작해주게 된다. 그리고 이 포스터가 사라에게 채택되면서 무하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것이다. 포스터는 당시 파리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거리에 붙여지는 족족 소장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뜯겨질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무하가 만든 포스터는 그 동안의 포스터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가로로 만들어졌던 기존의 개념을 뒤엎고 사라의 실물사이즈인 세로로 제작되었다. 거기에 더해진 아라베스크 양식이 조합된 장식은 사라 베르나르를 신화 속 여신처럼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묘사했다.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연극 '지스몬다' 포스터© 뉴스1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연극 '지스몬다' 포스터© 뉴스1
그의 독특한 작풍은 이후 현대 일러스트와 일본 애니메이션, 심지어 타로 카드에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로 인해 더욱 대중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인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무하의 영향을 받은 수 많은 그림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세일러문'도 그 중 하나다.  

무하가 포스터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처럼 드보르작 역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육점의 아들로 태어난 드보르작은 음악을 공부했지만 이렇다 할 성공을 이루지 못했고 가업을 이어받으려 정육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된다. 하지만 1874년, 33세에 한 공모전에 참가를 하게 되는데 이때 인생을 바꿀 인연을 만나게 된다. 다름아닌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였다.

당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었던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곡에 매력을 느끼고 독일의 한 출판사에 그의 음악을 소개시켜주게 된다. 그리고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에서 영향을 받은 드보르작은 슬라브 지방의 민속곡들을 모아 '슬라브 무곡'을 작곡한다. 그리고 이 곡은 드보르작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다.

민족주의적 예술은 드보르작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드보르작은 스메타나, 야나체크와 함께 민족주의 음악가로 불린다. '슬라브 무곡' 이후로도 드보르작은 계속해서 그의 곡에 보헤미안의 정서를 담아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미국적인 요소를 체코의 민족적 요소들과 결합시키며 민족음악을 더욱 국제적인 것으로 만들어냈다. 제 4악장의 도입부가 흡사해 죠스의 사운드트랙을 떠올리게 하는 '신세계로부터' 역시 미국의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작곡했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며 슬라브적 요소를 담아낸 곡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상업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알폰스 무하도 말년에 가서는 민족주의 회화를 그리게 된다. 무려 18년 동안 '조국의 역사에 선 슬라브인들', '불가리아 황제 시메온', '러시아의 농노해방령' 등 총 20작품으로 이루어진 '슬라브 서사시'라는 거대한 연작을 그려낸 것이다. 기존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이 연작에서 무하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무하는 체코의 지폐와 우표에도 슬라브 민족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민족적 전통 예술에 뿌리를 두면서도 쉽고 편안한 그림과 음악으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무하와 드보르작. 지금도 그들의 영향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주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다.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를 튼다. 책장에 놓인 타로 카드를 꺼낸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감동을 주는 예술가들을 떠올린다. 카드를 한 장 뽑는다. 지난 2주간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드보르작과 무하를 떠나 보내기 싫은 마음이 반영된 걸까? 미련을 상징하는 '파이브 오브 컵스'다.

알폰스 무하의 자화상과 안토닌 드보르작© 뉴스1
알폰스 무하의 자화상과 안토닌 드보르작© 뉴스1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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