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정유진의 핫스팟] 스티븐 연, 할리우드 톱배우로 성장한 잘생긴 아시아계 청년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1-03-13 11:00 송고
'미나리' 스틸 컷 © 뉴스1
'미나리' 스틸 컷 © 뉴스1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를 본 이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그 영화 좋더라."

'미나리'는 '기생충'처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라고 말할 만큼의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경험에 기반한 탄탄한 이야기와 그 시대, 그 상황 속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힘이 있고, 그에 대해 칭찬을 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특히 할머니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을 비롯해, 데이비사(?)를 연기한 아역 배우 앨런 김, 엄마 모니카를 연기한 한예리까지 '미나리' 주역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노장은 노장으로서, 연기를 처음 해보는 초짜는 초짜로서 자기 몫을 해냈다. 그 속에서 누가 가장 훌륭한 연기를 했는지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전작과 비교해 '미나리'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여준 배우를 한명 꼽아 보라면 어떨까. 주저없이 딱 한 명을 택할 수 있다. 아빠 제이콥을 연기한 스티븐 연이다.
'프랑스 영화처럼' 스틸 컷 © 뉴스1
'프랑스 영화처럼' 스틸 컷 © 뉴스1

미국 AMC에서 2010년부터 방송된 좀비 소재 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후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온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연에게는 '쿨'한 미국 젊은이의 이미지가 있다. '워킹데드' 시리즈 속 그가 연기한 글렌은 아시아계 미국 남자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난 대표적인 캐릭터로 손꼽힌다.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는 순수하고 따뜻한 성격, 동료를 감쌀 줄 아는 리더십까지. 과거에는 백인 남성 캐릭터의 전유물이었던 요소들을 모두 갖춘 스티븐 연의 글렌은 신선함을 줬고, 그는 이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글렌 캐릭터의 대척점에 선 인물로는 ABC 드라마 '로스트'에서 대니얼 대 킴이 연기했던 진수를 들 수 있다. 물론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그의 캐릭터에도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초반에는 아내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불친절한 데다 극 중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캐릭터라 소통이 어렵고, 고집까지 센 진수의 성격이 도드라졌다. 그런 진수를 통해 미국인이 생각하는 아시아 남자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배우들이 롤모델로 꼽을 만한 선배 배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워낙 백인들이 오랫동안 주류로 활동했었고, 흑인 배우들조차 몇몇 이름 있는 배우들 외에는 메이저에서 백인 배우들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계 배우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스티븐 연은 그 같은 흐름 안에서도 독보적인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워킹 데드' 시리즈로 한창 절정의 인기를 얻고 있었던 2015년, 스티븐 연의 프로필에 독특한 작품 하나가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감독 신연식)이다. '배우는 배우다' '러시안 소설' '조류 인간' 등을 연출한 신연식 감독의 이 옴니버스 영화에서 스티븐 연은 '리메이닝 타임'이라는 제목이 붙은 에피소드에 나와 가수 겸 배우 김소이와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배우가 갑자기 왜 한국 영화에 출연했을까. 당시 캐스팅은 상대역인 김소이와의 인연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이의 미국 내 배우 활동을 도왔던 매니저가 스티븐 연과 친구 사이였고, 매니저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친구가 된 것. 김소이는 '프랑스 영화처럼'의 시나리오를 스티븐 연에게 전달했고, 스티븐 연은 자신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찍게 됐다.
'버닝' 스틸 컷 © 뉴스1
'버닝' 스틸 컷 © 뉴스1

영화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스티브를 연기한 스티븐 연은 철부지 교포 남자친구의 캐릭터를 흥미롭게 연기했다. 여자친구의 입에서 "연애를 하는 거야 육아를 하는 거야"라는 말이 나오게 할만큼 천진난만했던 스티브의캐릭터는 실제 교포인 그가 연기했기에 사실적이면서 구체적이었고 매력이 넘쳤다.

이 때 스티븐 연이 한국 영화와 맺은 인연은 놀랍게도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영화처럼'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연기했던 그는 '옥자'에서도 비슷한 느낌으로 두 개 국어를 오가다 '버닝'에서는 장족의 발전을 보여준다. '버닝'에서 벤이라는 캐릭터를 맡은 그는 대부분이 한국어인 대사를 무리없이 소화했다. 그러다 결국 몇년 뒤 '미나리'에서는 미국에 이민 온 '한국 남자'를 연기해냈다.

한국 영화와의 만남은 '배우' 스티븐 연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봉준호, 이창동 감독과 함께 하며 그는 무려 두 번이나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특히 '버닝'에서는 벤 역할로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소시오패스의 향기를 풍기는 벤은 스티븐 연이 보여준 새로운 얼굴과 성격이었다. 그는 벤의 캐릭터를 통해 자신이 외모나 매력 뿐 아니라 연기적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미나리' 스틸 컷 © 뉴스1
'미나리' 스틸 컷 © 뉴스1

'미나리'에서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 남자를 스티븐 연이 연기한 것은 필연적이다. 몇 번의 한국 영화 출연 경험을 통해 스티븐 연은 미국 배우로서 뿐 아니라 한국 배우로서의 감각을 익혔다. 미국인이면서도 자신의 일부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어려운 한국어 대사를 소화했고, 그 시대 한국인 아버지의 초상을 공감가게 구현할 수 있었다. 마침 '미나리'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스티븐 연은 윤여정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이름을 올릴만한 유력 배우로 점쳐지고 있다.

'미나리'의 제이콥이 아칸소주의 푸른 땅에서 남들이 꿈꾸지 않았던 커다란 농장을 일궈갔던 것처럼 스티븐 연은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로서는 가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 중이다. 그는 과연 '인종'이라는 벽을 넘어 자신의 바람처럼 배우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스티븐 연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eujenej@news1.kr

오늘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