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연예 > 영화

[N리뷰] '정말 먼 곳'에도 없던 안식처…강길우·홍경이 남긴 여운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2021-03-11 18:01 송고
정말 먼 곳 스틸 © 뉴스1
'정말 먼 곳'엔 그들이 꿈꾸던 평화로운 안식처가 있을까.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멀리 떠나면, 사람들이 없는 곳이라면, 과연 사람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그 질문을 지속적으로 이어간다. "정말 먼 곳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었다"는 극 중 시처럼, '정말 먼 곳'에 있어도 극복할 수 없는 현실들이 또 다른 물음표를 띄우고 관객들의 마음에 파장이 일게 만든다. 그렇게 영화는 주연배우 강길우와 홍경이 그린, 기대와 희망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담담히 담아내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정말 먼 곳'(감독 박근영)은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은 진우(강길우 분)에게 뜻하지 않은 방문자가 도착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는 일상을 섬세하게 담은 영화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와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제24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등 국내외 수많은 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호평을 이끌어냈다. 첫 장편 데뷔작 '한강에게'로 제18회 전북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박근영 감독의 신작이다.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강길우와 넷플릭스 'D.P.'에 캐스팅돼 기대주에 등극한 홍경이 각각 진우와 현민 역을 맡았다.

영화는 강원도 화천을 배경으로 한다. 화천의 평화로운 목장에서 진우는 조용한 일상을 보낸다. "엄마"라고 설(김시하 분)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는 이는 진우다. 설은 진우를 아빠가 아닌 엄마라 부르지만, 목장은 이를 어색하게 생각하는 이가 없는 곳이다. 진우와 설,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목장 주인 중만(기주봉 분)과 중만의 딸 문경(기도영 분), 그리고 치매에 걸린 중만의 어머니 명순(최금순 분)이다. 대상과 거리를 둔 카메라를 통해 이들이 단란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평범한 한 가족 같지만 이들에게 가까이, 깊숙이 다가갈수록 개별적인 서사와 사연이 일반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카메라의 거리두기를 통해 보는 대상과 가까이 다가갔을 때의 대상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면서 관객들이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만든다. 이를 테면 오랜만에 진우가 있는 화천 목장을 찾아온 현민의 첫 등장신에서 멀리서 본 두 사람의 만남은 친구간의 반가운 재회 같다. 진우는 현민을 세게 끌어안고 카메라가 진우의 표정을 가까이 포착한 순간 둘의 관계에 정보가 없던 관객들은 이 장면을 의미있게 눈여겨 보게 되고, 이에 대한 관객들 각자만의 감상과 생각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거리감'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영화를 연출해간 박근영 감독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박근영 감독은 인간 관계의 거리감, 성소수자와 사회와의 거리감, 생각의 거리감에서 비롯되는 고정관념, 편견 등 여러 상념들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

진우는 화천에 온 현민과 애틋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자신의 쌍둥이 동생 은영(이상희 분)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면서 조금씩 평화가 깨진다. '정말 먼 곳'에서 자신만의 안식처 찾고 평화를 지키고자 했던 진우였지만, 은영으로 인해 또 다시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절망과 좌절을 느낀다. 현민이 "멀리 가서 살까?"라고 질문하지만, "어딜 가나 똑같다"며 그 희망도 접어야 하는 게 진우의 현실이다. 남들이 누리는 평화와 일상을 두고 이들은 '욕심'이라 표현하고, 외려 자신들이 빠르게 체념하고 현실에 기꺼이 순응한다. 사회와 사람들의 편견, 혐오를 피해 '정말 먼 곳'으로 왔지만, 이곳도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진우 현민의 서사와 함께 그려지는 화천의 풍경은 경이롭다. 공간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두 남자에게 안식처가 될 수 없는 아이러니도 현실과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단 한 장면도 허투루 찍은 것이 없다"던 박근영 감독의 말처럼 길고 느릿한 호흡으로 공들여 담은 풍경이 돋보인다. 제작진은 특히 양이 출산하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삽입하기도 했는데, 실제 출산의 순간을 담기 위해 한달 가량 순번을 정해 24시간 대기한 끝에 촬영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롱테이크 신으로 각 인물들의 장면을 긴 호흡으로 이끌어간 점도 좋다. 배우들이 호흡을 끊지 않고 장면을 이어가면서 더욱 리얼하고 사실적인 연기가 가능했다. 그래서 배우들은 더욱 인물 그 자체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진우 현민의 서사 외에도 은영과 설, 중만, 문경, 명순까지 그 관계와 의미를 모두 담으려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고 다소 번잡하다는 인상이다. 양의 출산 장면 또한 의미가 있지만 '거리감'이라는 키워드를 넘어 어떤 생명의 탄생과 죽음까지 메시지를 확장시키려 한 점에 있어 부조화도 느껴진다. 이는 감독의 의욕 과잉으로 비쳐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영화의 보다 명료한 메시지와 의미, 상징을 위해 넘치는 의욕을 조금 더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말 먼 곳'을 통해 강길우와 홍경이라는 좋은 배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그 인물이 된 듯 자연스럽고 담백한 연기들이 큰 울림과 여운을 준다. 강길우의 절제된 감정 연기와 홍경이 낭송하는 박은지 시인의 등단작 '정말 먼 곳'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억에 남는다. 홍경이 읽는 그 시가 곧 진우와 현민의 현실이고,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밀접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aluemchang@news1.kr

오늘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