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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두달이 지옥" 학대 당하는 아동학대 조사관

[아동학대는 강력범죄] 고작 1~3명 배치…2인 1조 원칙 안지켜져
업무과중으로 벌써 '이탈현상'…"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2020-12-14 06:04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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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도 아동학대 신고 전화를 받아야 해서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자요. 주말에도 일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부서를 떠나고자 하는 공무원들이 많은데 전문성을 키울 수야 있겠어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A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은 퇴근 후에도 신고 접수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주말에도 학대 가해자를 만나야 했다.
정부는 지난 10월1일부터 아동학대 조사 업무의 공공성을 높인다며 민간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담당하던 아동학대 조사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했고 각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하도록 했다.

배치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은 가족, 학교 관계자 등을 만나 아동학대 의심 정황을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원가정 분리 조치까지 내린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핵심 업무를 맡고 있지만, 업무 과중과 부담감으로 벌써 부서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부서 이탈현상은 결국 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진다.
1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6일 기준 각 시·군·구에 배치된 평균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인원수는 대부분 1명~3명 정도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는 △서울 2.1명 △부산 1.7명 △대구 2.5명 △인천 4명 △광주 1명 △대전 3명 △울산 3명 △경기 3.7명 △강원 1.2명 △충북 1명 △충남 2.5명 △세종 2명 △전북 1.7명 △전남 1.9명 △경북 2명 △경남 2.2명 △제주 0명이다.

같은 서울시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노원구에는 5명이 배치됐지만, 용산구에는 1명도 배치되지 않았다. 지자체의 관심도에 따라 인원이 배치되기 때문에, 전담 공무원이 없는 지자체도 많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은 아동학대 신고 1건이 들어오면 학대 아동, 아동이 다니는 학교의 관계자, 학대 행위자, 학대 아동의 주변 이웃 등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7~8명을 조사한다. 원칙상으로는 이들 조사를 고작 1~3명 정도의 인원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인력을 지원받을 수도 있지만 거의 모든 서류작업과 행정작업, 법적조치 등은 공무원이 수행해야 해 업무 과중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과의 소통이 어려워 큰 도움을 못 받는다며 난색을 보이는 공무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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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신고 접수에 주말에도 업무…"초과근무 95시간"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은 퇴근 후, 주말에도 조사 업무를 진행하고 신고 접수를 위해 퇴근 후에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B씨는 "보통 학대 행위자들이 직장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퇴근한 후에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학대 행위자가 평일에 시간이 안 되면 주말에 나가서 만나야 하고 조사가 끝나면 자료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가 많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C씨는 "24시간 신고 접수를 하는게 원칙이기 때문에 심야에도 전화를 받아야 하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며 "가장 문제는 당직인데, 아무리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당직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구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긴밀하게 소통하기 힘들어 사실상 지원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A씨는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싶어도 기관이 멀리 있다 보니 한번 만나기도 어렵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 직원이 따로 일정이 있으면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지난 11일 기준 4800여명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청원인은 "밤 9시 조사 종료가 기본이고 응급조치라도 하는 날에는 새벽 2시, 3시 퇴근도 허다하다"며 "11월 초과근무 시간은 95시간인데, 하루 4시간만 인정이 되기 때문에 수당은 57시간만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월에 결혼하고 전 신혼생활도 못 보내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업무를 수행하는 2달이 지옥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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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1조 원칙인데…지키기 어려워 혼자 나가기도"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안전과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2인 1조로 현장 조사에 나가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일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인원 부족으로 혼자 조사를 나가야 할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B씨는 "안 그래도 업무 과중으로 동료들이 힘들어하는데, 주말에 불러내서 조사 업무를 하러 가자고 하기가 미안할 때가 많다"며 "그럴 때면, 양해를 구하고 혼자 나가 조사한 후 녹취록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구청에 1명만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배치되면 자체적으로 2인 1조 원칙을 지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래 일하던 구청이 아닌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출근하는 공무원도 있었다.

C씨는 "구청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저밖에 없어서, 2인 1조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예 출장 근무 식으로 구청이 아닌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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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부서 이탈현상…"내년에는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벌써 부서를 나가고자 하는 공무원들이 많다는 얘기가 돈다. 이탈 현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장기간 근무하도록 하고 전문성을 키운다지만, 부서를 떠나고자 하는 공무원들이 많아 현실적으로 '전문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는 비판이 많다.

A씨는 "벌써 업무상 고충이 있다고 다른 부서로 보내 달라고 하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있다"며 "이미 이탈 현상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경찰도 아닌 일반 공무원이 학대 가해자들을 만나야 하는 것에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공무원들도 많은데 업무까지 과중한 상황"이라며 "지금 있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중 내년에는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청원인 역시 "이런 근무환경에서 누가 일을 하겠냐"며 "아이를 지킨다는 보람도 있지만,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드니 그 보람이 사라진다"고 전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사람 수가 너무 적어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며 "장기 근속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결국 전문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간에서 아동 보호에 관심 있고 오래 근무해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hm646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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