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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누가 '역사'를 조롱했나?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조롱하는 느낌"
불필요한 정치적 편향성 논란까지 불러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2020-12-04 14:23 송고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한국사 20번 문항./뉴스1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한국사 20번 문항./뉴스1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한국사 20번 문항을 놓고 변별력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나치게 쉽게 출제돼 문제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편향성 비판까지 나와 여파가 커지는 모습이다.

논쟁거리에 오른 문항은 지난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남북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다룬다. 연설문을 제시하고 해당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을 묻는 문제다.
"지난해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 대결과 단절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공영의 새 시대를 열기로 합의했다"라는 구절로 미뤄볼 때 정답은 '남북기본합의서'로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문제의 문제는 제시된 보기에서 시작된다. 정답을 제외한 선택지로 ①당백전을 발행했다, ②도병마사를 설치했다, ③노비안검법을 시행했다, ④대마도(쓰시마섬)를 정벌했다가 나왔다.

모두 고려와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현대사와는 연관이 없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수험생이라도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수준이다. 유엔이 고려·조선시대에 만들어졌을리는 없다.
유엔을 모른다고 해도 제시문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자주적으로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도"를 보면 분명 ①~④번 선택지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교사는 한국사에서 '거저주기식 보너스' 문제가 이전부터 이어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역사 자체를 조롱하는 느낌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이후 터무니없는 문제가 출제되는 일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가 되는 대신 학습부담 경감을 위해 난도는 낮게 출제됐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정치 편향성 지적도 나온다. 노태우 정부 당시 연설이지만 문재인 정부 중점과제 중 하나인 남북관계개선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다른 고교 한국사 교사도 "현재 정부를 홍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면서 "'통일은 소망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대목도 학생들에게 착각을 불러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편향성 문제야 어떤 시선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해도 변별력 문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가 출제되는 것은 오히려 수능 공부를 착실하게 해온 학생에게는 손해일 수밖에 없다.

수능 출제 방향 가운데 하나가 수험생이 정규교과과정을 성실하게 밟아왔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한국사 20번 문항은 출제 방향과 거리가 멀다.

현장교사들은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효과가 현실에서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사를 필수로 지정한 것은 학생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고 필수지식을 습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대부분 쉽게 출제된다면 학습 동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시에서도 한국사는 3~4등급까지는 일괄적으로 점수를 부여하는 등 비중이 크지 않은 점이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교사마다 원인 진단은 다르지만 학생들이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행 한국사 교육에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통된 입장이다. 교육당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kingk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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