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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엄동설한에 찬물 욕조서 죽어간 여덟살 다원이

육아 스트레스 새엄마의 모진 학대…끝내 하늘나라로
새엄마 1심 징역 6년에 항소→2심서 징역 12년→상고

(경기=뉴스1) 최대호 기자 | 2020-11-06 06:01 송고 | 2020-11-06 09:21 최종수정
뉴스1 그래픽. © News1 DB
뉴스1 그래픽. © News1 DB

"엄마, 다원이(가명·지적장애 3급) 이제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안 될까?" 12살 딸이 말했다.

엄마는 "안 돼 벌을 더 줘야 해"라며 딸의 요청을 단박에 거절했다.
지난 1월10일 오전 10시 경기 여주시의 한 아파트. 여덟살 다원이는 베란다에 놓인 찬물이 담긴 욕조 안에서 엄마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던 동생들을 건드려 깨웠다는 이유로 엄마로부터 '찬물 체벌'을 받게된 지 약 30분이 흐른 때였다.

다원이도 물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엄마는 "말을 잘 들어야 나올 수 있다"며 겁을 줬고, 더 심하게 혼날 것이 두려웠던 다원이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다원이가 찬물 욕조 안에서 한참을 떨고 있을 당시 바깥 기온은 영하 3도를 기록했다. 베란다 바깥 창문은 열려 있었고, 다원이의 몸은 그렇게 천천히 식어갔다.

찬물 학대 2시간여가 지나면서 다원이는 더이상 숨을 쉬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사인은 저체온증.

다원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A씨(31)는 친엄마가 아닌 의붓엄마였다.

딸 출산 후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A씨는 2014년 10월부터 다원이 아빠 B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다원이는 이때부터 A씨의 양육을 받았다.

A씨는 2019년 7월 전남편과 낳은 딸을 집으로 데려왔고, 한 달 뒤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재혼남편과 두 딸(3살·1살)을 출산했다.

경제적 빈곤과 가사·육아 부담에 B씨와 불화를 겪던 A씨의 화풀이 대상은 다원이었다. 그는 다원이가 사소한 잘못을 하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체벌을 가했다.

다원이가 네 살 때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으로 얼굴과 배 등을 때리고, 효자손을 이용한 종아리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이처럼 다원이를 학대한 이유로 2016년 2월과 5월 두 차례 아동보호사건 송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 일로 다원이와 A씨를 약 21개월 간 격리조치했다.

A씨는 2018년 2월 다원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건강하게 잘 키우겠다"는 말로 아동보호시설을 안심시킨 후 다원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A씨는 변하지 않았다. B씨가 자신의 친딸을 엄하게 훈육하는 것을 보면서 다원이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고, 체벌의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밀치고 때리고 꼬집고, 다원이의 몸에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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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치사 재판서 징역 6년…항소했지만 형량 두 배로 늘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A씨가 어머니로서 마땅히 해야 할 아동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다원이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A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그러나 살인의 고의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고 판단,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비록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지 못했지만 A씨에게 살인에 준하는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며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 아동을 직접 폭행하지 않았고 사망에 이를 것으로 예견하지 못한점 △아동에 대한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점 △피해 아동의 아버지가 처벌을 원치않고 선처를 탄원한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A씨는 법원의 이 같은 선처에도 불구하고 형량이 과중하다며 항소했다. 징역 20년을 구형한 검사는 반대로 약한 처벌이 내려졌다며 맞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A씨보다 검찰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리고 A씨에게 1심 형의 두 배에 해당하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자신을 양육할 의무가 있는 피고인으로부터 잔혹하게 학대당한 끝에 차가운 물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짧은 생을 마쳤다"며 "피고인의 학대행위의 내용과 강도는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 명백한 폭력 행위로,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2심의 징역 12년은 이 사건 권고형(징역 6년~11년6월)을 다소 초과한 형량이다.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한 다원이 아빠의 A씨 선처 탄원을 '처벌불원 감경요소'로 고려하지 않았다.

A씨는 이 같은 판결을 수긍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3일 2심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계모의 '락스 학대'로 숨진 신원영(7)군의 유골함. /뉴스1 DB
계모의 '락스 학대'로 숨진 신원영(7)군의 유골함. /뉴스1 DB

◇다원이는 제2의 '원영이'…아동학대범죄 더이상 없어야


다원이 사건은 2016년 전국의 '엄마'를 울린 원영이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일곱살이던 원영이는 한겨울 난방이 되지 않는 화장실(가로 174㎝, 세로 189㎝)에 갇혀 계모의 락스학대를 받아 사망했다.

계모의 학대와 친부의 방임이 부른 '비극'이었다. 이 사건으로 원영의 계모는 징역 27년, 친부는 징역 17년 형을 확정받았다.

원영이가 숨지던 그해에만 모두 36명이 아동학대에 의해 이 세상을 떠났다.

전국의 부모들은 이 같은 일이 반복될 때마다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한다.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 건수는 2014년 1만27건에서 지난해 3만45건으로 지속해서 늘고 있다.

아동학대는 주로 부모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해 학대 행위자가 피해 아동의 부모인 경우는 전체 피해 건수 중 75.6%(2만2700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죄 없는 아이들이 죽임을 당할 때마다 '이 같은 비극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전에 왜 막지 못했나'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학대 자체를 막지 않으면 '사망 예방'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위기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올바른 양육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아동학대 사망 예측요인을 연구한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세 미만 아동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신체적 학대가 사망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우연히 아이들이 죽을 수 있기에 학대 자체를 막지 않으면 사망 예방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장화정 아동권리보장원 본부장은 "많은 부모가 처음에는 매 들기를 주저하지만, 일단 한 번 들면 그 횟수와 강도는 점점 심해지는 것을 경험한다"며 "폭력은 그 특성상 자주 사용할수록 그 강도는 점차 세질 수밖에 없고, 그 심각성에 대한 체감도나 인식이 낮아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대의 체벌도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복지법 개정(2015년 3월27일)으로 가정 내 체벌 금지가 명문화돼 있다"며 "가정 내 체벌 금지에 대해 모든 부모가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sun07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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