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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의 뼈 때리는 언니]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서울=뉴스1) 안은영 작가 | 2020-11-01 15:23 송고
1일 경남 함양군 함양읍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상림공원이 늦가을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함양군 제공) 2020.11.1/뉴스1
1일 경남 함양군 함양읍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상림공원이 늦가을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함양군 제공) 2020.11.1/뉴스1

계절과 노래가 제대로 어우러질 때 우리는 '센치해진다'고들 하지. 모든 계절을 다 타는 나로서는 가을이라고 더 감정적이 되진 않는데 얼마 전 차 안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걷잡을 수 없는 추억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어. 가로수 물 드는 꽉 막힌 강남대로에 있던 나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던 어느 가을의 경부선을 달리고 있더라.

사랑하는 일에 에너지의 8할을 쓰던 시절이었어. 하루의 대부분을 사랑하는 마음에 쏟았고, 겨우 일하고 겨우 잠을 잤어. 몸은 피곤한데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게 내가 봐도 기묘했지. 그날은 지방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어. 곧바로 애인에게 가는 길이기도 했지. USB에 저장해둔 음악을 듣는데 하필 어느 한 곡이 심장에 꽂혀서 펑 하고 터진 거야. 뭐가? 울음보가. 곧 만날 건데, 떨어진 시간이 이삼일 밖에 되지 않는데 그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 절절하고 섹시한 그 노래를 반복재생하면서 톨게이트에 도착하니 겨드랑이에 땀이 배더라. 마치 사랑을 나눈 직후처럼 후련하고 짜릿했어. 미친 거 아니냐고? 당연하지. 미치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하니?
그 노래만 들으면 그날의 바운스가 떠올라. 스피커를 쿵쿵 울리던 비트에 따라 내 심장이 쾅쾅 뛰었어. 바라보이는 산의 나무들도 울긋불긋한 잎을 달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곤 했어. 본연의 색을 드러내는 중이었지. 나무들은 봄여름에 광합성을 하면서 에너지를 냈다가 가을이 되면 한해 살림살이인 열매 맺기도 끝났겠다 광합성이 필요 없어지걸랑. 그래서 초록을 벗고 본인의 타고난 색소만 남기지. 노란 색소를 가진 애들은 노랗게, 붉은 색소를 가진 애들은 붉게 물들어. 사실은 물 드는 게 아니라 본래의 색이 나타나는 거야.

뜨겁던 연애는 끝났고 기억은 사라진지 오래야. 그러다 단풍이 아름다운 가로수와 추억송의 콜라보에 나의 지난 계절이 떠오른 거지. 보고 싶어서 겨드랑이에 땀이 배거나 심장이 간질거려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던 그 시절, 아마도 나는 사랑을 숭배하며 힘껏 광합성을 했던 모양이야.

사랑하고 사랑받느라 행복했지만 당시로 다시 돌아가라면 단연코 노. 묵은 떡잎으로 새 이파리 내는 나무 봤어? 한 번 떨어진 낙엽은 흙으로 돌아갈 때 가장 아름답지.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한 남자랑 두 번 연애하느니 두 남자랑 한 번 씩 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는 게 나의 지론이야. / 안은영 작가. 기자에서 전업작가로 전향해 여기저기 뼈때리며 다니는 프로훈수러.   
© 뉴스1



ar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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