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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뛰어도 활짝 웃는 베테랑 염기훈과 수원 상승세의 상관관계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20-10-06 11:49 송고 | 2020-10-06 14:02 최종수정
수원삼성의 베테랑 염기훈(왼쪽). 팀을 위해 희생하는 그야말로 진정한 리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뉴스1
수원삼성의 베테랑 염기훈(왼쪽). 팀을 위해 희생하는 그야말로 진정한 리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뉴스1

현장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가장 많이 접하는 내용 중 하나가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더 중요하다. 그들이 희생해주지 않으면, 그들이 하나로 뭉쳐 '원팀'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이야기다. '뛰지 못하는 선수들'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선수 입장에서 뛰지 못하는 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다. 특히 벤치에 앉아 있는 대상이 팀의 고참급이라면, 그것도 화려한 과거를 지닌 베테랑이라면 '화기애애' 분위기는 쉽지가 않다. 반대로 그것이 가능해야 팀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수원삼성 염기훈이 보여주고 있는 베테랑의 품격은 귀감이 될 만하다.
한때 강등권까지 밀렸던 수원이 반등에 성공한 모양새다. 수원은 지난 4일 오후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인천유나이티드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0' 24라운드이자 파이널 라운드 돌입 후 2번째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7승6무11패 승점 27점이 된 수원은 라이벌 서울을 끌어내리고 8위까지 치솟았다. B그룹 선두인 7위 강원(8승6무10패 승점 30)과 격차는 3점이고, 최하위 인천(5승6무13패 승점 21)과는 6점차로 도망쳤다. 잔여 일정이 팀 당 3경기씩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강등 위기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모양새다.

박건하 감독 부임 후 달라진 수원이다. 위기에 처한 친정을 구하기 위해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부임 후 첫 경기였던 FC서울과의 첫 경기(9월13일)에서는 1-2로 패했으나 이후 4경기서 3승1무 대반전을 일궜다.
9월16일 포항과의 홈 경기서 0-0으로 비긴 수원은 정규리그 마지막 라운드였던 9월20일 강원 원정에서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 결과로 강원은 B그룹으로 떨어졌다. 이어 9월26일 파이널라운드 첫 경기였던 서울과의 리턴매치에서 3-1로 승리, 슈퍼매치 무승 고리를 끊어냈고 지난 4일 간절한 인천까지 잡아내며 3연승을 질주했다. 수원의 3연승은 올 시즌 처음이다.

전체적인 경기력은 물론 팀 분위기까지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달라진 내부 공기'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도 포착되고 있는데, 수원의 상징적인 선수인 염기훈이 조끼를 입고 필드 밖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다.

파이널라운드 첫 경기였던 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 염기훈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필드를 밟지 않았다. 경기의 무게감을 생각할 때, 라이벌전 비중을 생각할 때 이전에는 어떤 형태로든 염기훈이 필드에 있었으나 박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어느덧 37세. 아무래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염기훈이고 때문에 거칠고 빡빡하게 진행될 공산이 큰 서울전에서는 비중을 줄여줬다. 선택은 적중했고 결국 수원은 타가트의 해트트릭으로 3-1 완승을 거뒀다. 주목할 부분은 염기훈의 '태도'다.

후반 내내 몸을 풀던 염기훈은 후반 29분 이기제, 후반 41분 김건희가 투입될 때도 계속 경기장 안에 선수들을 독려하면서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종료 휘슬이 울리던 순간, 벤치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나 돌아오는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5년5개월 만에 서울을 꺾는 경기에 정작 그는 없었으나 염기훈의 표정은 행복했다.

인천과의 경기도 다르지 않았다. 몸에 특별한 부상이 없는 염기훈은, 서울전을 뛰지 않아 체력이 보충된 그는 또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수원이 전반 43분에 터진 김태환의 득점을 끝까지 지켜내 1-0으로 승리했던 그날, 염기훈은 무려 후반 50분에서야 필드를 밟았다. 표현이 미안하나 사실상 시간 지연용 성격이 있었던 교체다. 하지만 이날도 염기훈은 힘껏 박수치며 자신의 소임을 다한 뒤 후배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한 축구인은 "염기훈이라는 선수가 수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라면서 "코칭스태프가 충분히 이유를 설명했겠고 선수는 그것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고 있으니 저런 형태의 교체가 가능하다. 설령 이해를 한다고 해도 고참급 선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데, 확실히 염기훈이라는 선수의 인성도 읽힌다"고 해석했다.

자신이 뛰지 못함에도, 최고참임에도 궂은일을 처리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팀을 위해 희생하는 염기훈의 모습에서 수원 상승세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 말로만 '원팀'을 외치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역할에 따라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팀들이 많은데, 적어도 지금 수원은 다르다. 잘 되는 팀은 다 이유가 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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