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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본 '인국공 사태'…"어른들은 '시험'에 충실하라 했다"

경사노위, 인국공 사태 관련 토론회…청년위원회 주관
"정규직화, 당위성만 있다…청년의 '공정' 이해해야"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2020-08-21 19:28 송고
2020.7.7/뉴스
2020.7.7/뉴스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려면 기성세대가 청년의 입장에서 바라본 '정의와 공정'을 보다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정보영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21일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서울 종로구 S타워에서 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청년: 인국공 논란, 공정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경사노위에서 청년층을 대변하는 계층별 위원회인 청년위원회가 직접 주관한 토론회다. 정 팀장은 청년 위원회의 위원장이다.

정 팀장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등장하며 너무나도 일반화됐기에, 저희는 살면서 비정규직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는 점점 벌어졌고, 마치 신분제처럼 공고해졌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이런 양극화는 분명 문제지만, 사회는 이때까지 자라나는 이들에게 '공부를 잘 하면, 그래서 시험을 잘 보면, 보상이 따를 것'이라고 주입해 왔다"며 "또 그 시험에 따른 보상이 그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보상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고 지적했다.
정 팀장은 "청년 입장에선 이 사회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이 시험이었는데, 이젠 시험만이 공정하진 않다니, 도대체 이젠 공부 말고 뭘 해야 하나 생각 드는 것"이라며 "바로 여기서부터 대화를 시작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S타워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청년위원회 주관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논란 관련 토론회.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S타워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청년위원회 주관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논란 관련 토론회.

◇정규직화 '찬성론자'조차…"정의라는 논리론 설득 불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정 팀장이 속한 단체인 청년유니온은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정 팀장은 "지금 청년을 대변해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분들은 해당 활동을 사익 추구로는 느끼지 않는다. 어떤 정의감 같은 것이 반대 운동을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반대 진영의 분노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정 팀장은 "모든 각자는 사회가 청년에게 내어준 시험이라는 룰(규칙)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인국공 사태에서는 '시험'이라는, 지금까지 공정하다고 알려진 절차를 통하지 않은 듯한 이들이 대거 등장해 청년들이 일제히 분개했다는 것이다.

결국 기성세대는 '정의'라는 당위성을 이유로 청년들이 체화한 '공정' 절차를 무시했고, 이것이 분노와 억울함이라는 감정으로 표면화됐단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 팀장은 인국공 사태를 풀어가기 위한 첫 단추로, 정규직화가 반드시 옳고 필요한 것이라는 '논리'에서 탈피할 것을 기성세대에 제안했다.

정 팀장은 "인국공 사태와 관련해 틀린 정보를 교정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공정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것, 비판해 보는 것 그 나름에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설득에 있어서 충분한 역할은 하지 못했다"며 "결국 공공부문 정규직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논리뿐만 아니라 감정의 차원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무급제 등 채용방식의 획일적 공정성을 넘어서기 위한 논의 없이, 정규직화가 바람직하다는 당위성만으로는 청년을 설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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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는 부모' 뒀다고 맘 편할까…"기계적 정규직화 안돼"

'부모의 도움으로 정규직 채용에 도전하는 청년'을 마치 불공평의 원인처럼 언급하는 데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놨다.

그는 "청년들이 '열정페이', '헬조선' 등의 자조적인 담론을 등장시킨 지 10년이 지났지만 변화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며 "많은 청년들은 스펙 경쟁을 비판해 거기서부터 변화를 추구하는 것보다, 그냥 그 스펙을 나 혼자 쌓는 게 더 빠르다는 점을 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과정에서 부모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당장 노동시장에 진입한 사람이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부모에게 의존했던 사람이라고 마음이 편했을 리는 없다"고 꼬집었다.

결론적으로 정 팀장은 "지난 20년간 공고해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경험한 청년들은 단순히 공공부문 정규직화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며 "전체적인 구조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없는 정규직화는 중심부 노동시장을 넓히는 데 그칠 테고, 만일 당장 구조적 대안이 어렵다면, 좋은 일자리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진입 과정에서 치룬 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인식을 바꿔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논쟁은 서울·수도권·상위권 대학을 위주로 이뤄진 것으로, 사실 이번 논쟁에 무관심이거나 관심조차 가질 수 없는 소외된 청년들이 더 많다"며 "결국 지금 분노하는 청년이 '일부'라고 응수할 것만 아니라, 소외된 청년들을 찾아 인국공 문제를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로 확장해야 한다"고 세심한 소통을 주문했다.

◇"본질은 노동시장 양극화" 같은 진단…해법은 '제각각'

앞선 토론자들도 인국공 사태와 관련해 노동시장 양극화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며, 기계적인 정규직화가 아닌 노동시장 내 불평등 완화와 함께하는 정규직화를 제안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 △근속기간에 따른 과도한 차별 △대중소기업 격차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등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는 포용적 사회 구현을 위한 '정규직의 기득권 포기'를 촉구했고, 어떤 이는 '극소수 일자리에만 보장된 평생 혜택을 완화할 것'을 강조했다.

전혜원 시사IN 기자는 "인국공 정규직화 논란이 폭로한 것은 공공부문 정규직이 단순한 일자리라기보다 '신분'이나 '특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도 정규직화 반대를 외치기보다는 연대적 관점에서 공공부문 고용 규모의 증가나, 민간부문 노동자들의 처우를 높이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7.1/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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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격차 확대로 양질의 일자리는 언제나 소수일 것이고 이들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청년들의 진입 경쟁은 늘 치열할 수밖에 없다"며 "저성장 양극화 시대에 입사 순간의 공정성으로 모든 게 공정해진다고 볼 수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거나 시험을 잘 준비했다는 이유로 상위 10% 일자리에 진입해 평생 혜택을 보는 게 공정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이 얽힌 비정규직 문제의 악순환을 끊는 과감한 정책이었고, 누구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당위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다만 권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그 환부가 생각보다 깊게 곪아 있었다. 불안은 영혼을 침식하는 법"이라며 "외과 수술에 앞서 시간을 두고 불안을 덜어주기 위한 내과 치료부터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사회적 배제로부터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동법 및 사회보장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보호의 격차를 줄여야 할 것"이라며 정부에 "일하는 사람 모두를 노동법 보호대상으로 포섭하는 보다 포괄적인 노동법제 구축"을 제안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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