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14일 택배 없는 날'…택배기사들 “1박2일 가족여행, 설레요”

직원들끼리 휴가 계획 짜는 진풍경 벌어져
일부에선 "휴무 이후 업무 가중된다" 우려도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2020-08-14 07:00 송고 | 2020-08-14 14:36 최종수정
서울 금천구 CJ대한통운 가산동 터미널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의 모습./뉴스1 © 
서울 금천구 CJ대한통운 가산동 터미널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의 모습./뉴스1 © 

14일 국내 택배 산업이 시작된 지 약 28년 만에 처음으로 택배노동자들을 위한 여름휴가인 '택배 없는 날'을 맞은 가운데, 택배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 맞이하는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기분좋은 상상에 택배노동자들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 듯했다. 
다만 매일 업무가 이뤄지는 업계 특성상 '택배 없는 날' 이후의 업무가 다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13일 전국택배연대노조에 따르면 우체국,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택배 등 5대 대형 택배사는 14일을 '택배인 리프레시 데이'(택배 없는 날)로 지정했다. 5곳에 소속된 택배 노동자는 4만명가량으로, 전체 택배 노동자의 약 95%를 차지한다.

택배 없는 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택배 기사들의 업무 강도가 갈수록 가중되고 있어, 이들을 위한 '휴식권 보장' 차원에서 이뤄진 휴일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택배노동자 9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고, 그중 7명은 과로사로 숨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유통·물류 산업은 호황을 맞았지만, 정작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 노동자들은 뼈를 깎는 '과중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택배연대노조는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 기사들은 하루에 13~18시간 장시간 일해왔다"며 "이들을 위한 휴식 보장권을 국민이 사회적으로 많이 지지해준 덕분에 택배 없는 날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 택배노동자들은 이번 택배 없는 날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가중된 업무로 인해 누리지 못했던 여가 시간을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심신을 달래는 '힐링 타임'으로 보낼 것이라는 계획이다.

권용성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부산지부장은 "택배 기사들끼리 휴가 계획을 논의하는 진풍경이 역대 처음으로 벌어지고 있다"며 "노동자들 사이에서 내년에도 공식 휴무일이 제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권 지부장은 "코로나 시국에만 물량이 약 30% 늘어나면서 하루에 1~2시간씩 추가로 일해왔다"며 "그동안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왔다. 3일간 쉬고 나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A씨는 "택배 없는 날이 과연 생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많이 들었다"며 "특히 코로나 이후에 기본 주 6일, 하루 12~14시간씩 일해왔다. 몸이 계속 나빠지는데도 파스나 반창고를 붙인 채 계속 참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7살 된 딸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해 너무 미안했다"며 "이번 기회에 가까운 곳이라도 가족과 1박 2일 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택배연대노조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월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쉼 없이 일하며 올해만 3명이 과로로 사망했다'고 밝히고, 늘어난 물량에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휴식 보장을 촉구했다. 2020.7.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전국택배연대노조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월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쉼 없이 일하며 올해만 3명이 과로로 사망했다'고 밝히고, 늘어난 물량에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휴식 보장을 촉구했다. 2020.7.9/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하지만 일부 택배 기사들에게선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물량 폭탄에 시달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감지됐다.

택배 상하차직원 B씨는 코로나19로 업무가 가중되자 많은 택배 기사들이 과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택배 없는 날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17일부터 업무가 가중돼 모든 직원이 힘들어질 것이다. 환영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휴무 이후 집하 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판매 업체에서 물건을 보내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늘어난 물량으로 인해 배송이 제때 끝나지 않으면 집하 시간을 맞추는 데 적지 않은 부담이 든다는 의견이다.

5대 대형 택배사를 제외한 5%의 소규모 택배노동자들은 '사상 첫 공식 휴무'라는 혜택을 보지 못한 채 이날 정상적으로 업무를 진행한다.

전국택배연대노조는 "경동택배, 대신택배 등 소규모 택배 업체들이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지 못한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진보당 부산시당은 지난 12일 택배 주문을 자제하자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보당 부산시당은 "휴무 전 택배 주문이 줄어들지 않는 한 휴가 후 과다한 업무량으로 인해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며 "완전한 휴식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연대가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생활물류서비스법'을 제시하면서 "정부는 코로나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택배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심각한 과로사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공공 기관인 우체국을 제외한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택배는 오는 17일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예정이다. 우체국은 임시공휴일인 17일까지 휴무하고 18일부터 정상 업무에 돌입한다.


blackstamp@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