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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제주 남서쪽 아름다운 언덕 위 ‘동심원’을 아시나요

제주 이주 10년차 농부, 이형재 대표
농사 3년 만에 감귤대회 휩쓸어

(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 | 2020-08-08 10:00 송고 | 2020-09-24 09:36 최종수정
편집자주 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2020.8.3 /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2020.8.3 /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지난 3일 오후 제주 남서쪽 대평포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알록달록 꽃밭과 함께 감귤나무가 여름의 푸른빛을 더하고 있었다. 이형재 대표(70)가 운영하는 농장 '동심원'이었다.
한참 뜨거운 햇볕이 드는 낮에도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언덕 위 농장 ‘동심원’ 곳곳에는 이 대표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 대표가 직접 100년 된 나무 간판에 새긴 ‘동심원’의 이름부터 남다르다. 농부와 소비자가, 사람과 자연이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갖는다는 뜻이다.

평소 기르는 나무에게도 친구처럼 말을 거는 이 대표는 나무 한 그루도, 꽃 한 송이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앞마당의 꽃밭부터 자로 잰 듯 반듯반듯 심어진 감귤나무 124그루와 창고까지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쳐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농장 중 하나가 되었다.
서울 토박이 출신의 제주 이주민인 이 대표가 손에 검은 흙을 묻힌 지도 어언 10년 가까이가 됐다.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 동심원 앞마당에는 이 대표가 직접 심은 꽃들이 피어 있다.2020.8.8/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 동심원 앞마당에는 이 대표가 직접 심은 꽃들이 피어 있다.2020.8.8/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명함에도 ‘농부 이형재’를 자랑스럽게 새긴 그는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농사일이 정말 즐겁다”고 말한다.

대기업 임원까지 지냈지만 도시생활과 사람에 지쳤던 그에게 자연은 큰 안식처가 되었다.

이 대표는 “나무에 물을 주고 비료 한번을 주면 보답을 하듯 풀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며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가 눈에 보이니 나무가 내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고 나도 나무에게 참 고맙더라”고 말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구경도 오는 농장의 주인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다.

제주에 내려와 경치가 좋아 처음 샀던 서귀포 강정의 땅은 알고 보니 과수원이었다.

운명처럼 다가온 농사일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이 대표는 처음 1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귀농인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서귀포시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 1기생이다. 서귀포농업기술원의 교육도 이수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시키는 대로 했다”는 그는 감귤밭을 정비하는 일부터 했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밭은 입구로 가는 길부터 넝쿨이 뒤엉켜있고 감귤나무는 비실거렸다.

길가의 넝쿨을 정리하는 데만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빼곡했던 감귤나무 밭은 평탄화 작업과 성목이식사업으로 정리했다.

당시만 해도 되도록 많은 나무를 심어 많은 감귤을 키우려 했던 제주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 못할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길가의 넝쿨 정리할 시간에 감귤밭 잡초나 정리하라고도 했고 멀쩡한 나무를 뽑는다고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성실한 모습에 사람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2020.8.8 /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2020.8.8 /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이 대표는 “좁기만 했던 길이 본래 모습을 찾아가니 어느 날 한 할머니께서 같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짜장면이라도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시더라”라며 “그걸 받고 속으로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처음엔 밭에 물 주는 방법도 모르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도 마을 사람들이었다.

농업용수도 없던 밭에 물을 끌어다 쓰라고 호스를 연결해주고 물을 주는 방법도 알려줬다.

제주 사람들의 도움과 따뜻한 마음 덕분에 농사일에 즐거움이 더해졌다.

그의 노력은 3년여 만에 빛을 발했다. 2015년 우수 감귤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같은 해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 감귤부분에서도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감귤의 모양, 무게, 과수원 상태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만큼 그 의미는 더 컸다.

모두가 농사짓기 궂은 땅이라고 했던 감귤밭에서 ‘초짜 농부’ 이 대표가 이뤄낸 성과는 입소문을 탔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의 동심원을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서귀포 안덕면 대평리에 있는 동심원 역시 처음에는 기울어진 언덕 위 수풀이 우거진 황무지나 다름 없었지만 이 대표의 손길로 3년여 만에 친환경 농장이 되었다.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 이 대표는 '아름다운 언덕에 다다르다'는 뜻의 '비파리'라는 이름을 지어 이웃과 어울려사는 마을을 꿈꾸고 있다. 2020.8.8 /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 이 대표는 '아름다운 언덕에 다다르다'는 뜻의 '비파리'라는 이름을 지어 이웃과 어울려사는 마을을 꿈꾸고 있다. 2020.8.8 /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2013년 제주에서 처음 결성된 귀농·귀촌인 협의회의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한 이 대표는 요즘 제주로 귀농하기가 더 쉽지 않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농사 지을 땅도 구하기 어렵다”며 “귀농·귀촌인을 위한 대출로는 과수원을 얻기 힘들고 돈을 구해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작은 평수의 땅에서 나는 수익으로는 이자를 내면서 생활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제주 이주 열풍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내려왔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제주는 낙원이 아니다.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똑같은 곳”이라며 “처음부터 두 팔 벌려 낯선 이를 환영해주는 곳이 얼마나 있겠느냐. 살려고 왔다면 일주일 안에 먼저 다가가 사람들에게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어딜 가든 지낼 곳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안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며 “그곳의 역사도 공부하고 문화도 배우면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해 폭도 커지고 대화 폭도 넓어지게 된다”고 당부했다.

“내가 하나라도 더 주자는 마음으로 다가서니 제주에서 만난 이들은 고마운 사람들뿐이었고 다양한 기회를 갖게 됐다”는 그는 동심원에서 또 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동심원을 중심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따뜻한 마을을 꾸려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언덕에 다다르다’라는 뜻의 ‘비파리’ 마을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150여 년 된 호두나무에 새긴 비파리 간판을 언젠가 마을길에 걸어두고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대표는 “아직은 동심원 주변 언덕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지만 언젠가 이웃들이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가끔 손님들을 불러 바비큐 파티를 하는데 이웃이 더 생기면 함께 어울리며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2020.8.8/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2011년 말 제주로 내려온 이형재 대표(70)는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포구 앞 언덕에 농장 '동심원'을 꾸려 감귤나무를 키우고 있다.2020.8.8/뉴스1© News1 홍수영 기자



gw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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