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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의 IT프리즘]"굿바이 011"…내거 같은 내거 아닌 휴대폰 번호

(서울=뉴스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사이버법센터 부소장 | 2020-07-03 07:00 송고 | 2020-07-03 15:23 최종수정
이성엽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회장 © 뉴스1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으로 남아 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스피드 011 등 국내 최초 이동전화서비스인 2G 서비스가 종료된다. KT가 2012년 2G 서비스를 종료했고 SK텔레콤은 내년 6월 말 2G 서비스를 종료한다. 이런 2G 서비스 종료는 정부의 2011년 ‘010 번호통합정책’의 시행과 함께 시작되었다. 011·017 같은 이동통신사 식별번호가 브랜드화하고 독과점 현상이 심해지면서다. 이를 모두 010으로 통합하여 통신사 간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010 번호통합이 이뤄지면 전 국민이 8자리만 눌러 통화할 수 있는 편익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2G 장비 노후화와 부품 부족으로 서비스가 갑자기 멈추는 경우 2G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생기는 불편을 조기에 막자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010 통합에 반대하는 010통합반대운동본부의 인터넷 카페에는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용하던 번호를 받았다”는 애틋한 사연도 있고 “번호를 바꾸면 영업손실이 상당해 폐업도 고려하고 있다”는 생계형 사연도 있다. 이동전화번호는 개인별로 부여되어 개인을 식별하는 정보에 해당하고 사례에서처럼 경제적 가치 있는 자산으로서의 성격도 가지는 것인데, 정부가 이를 내 동의 없이 임의로 회수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과연 이런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전기통신번호는 통신망, 통신사업자, 가입자, 서비스 단말기 및 이용자위치 등을 구분하여 식별하고 교환시스템 간의 통신회선 구성, 고객관리 및 통화요금 산정 등을 위해 제공되는 기본정보이다. 이는 정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기초자원으로서 서비스 제공 국가, 통신망, 단말기, 이용자 간의 중복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전기통신번호는 무한히 부여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는 점, 여타 통신정책과 연계되어 하나의 정책수단이 될 수 있는 점 등에서 정부 차원의 관리체계가 중요하다.

이에 전기통신번호는 주파수와 마찬가지로 통신서비스 제공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통신자원으로서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호 소통을 위해 한 나라의 번호체계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번호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지침)인 ITU (국제전기통신연합)의 권고안의 범위 내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이처럼 전기통신번호는 국유의 자원으로서 관리통제권은 국가에 부여되어 있으며 개인은 이런 국가의 권리의 범위 내에서 일시적인 사용권만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주파수의 경우도 국유의 자원으로서 주파수 할당을 받은 자는 일정 기간 주파수를 이용할 배타적 권리를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소속 회원 633명은 2G 서비스 종료 후에도 본인들의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6월 24일 법원은 "이동전화번호는 유한한 국가자원이고, 정부의 번호이동 정책에 대한 재량권이 인정된다"며 "소송을 제기한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의 구체적 권리가 도출되지 않는다"고 밝혀서 이런 입장을 확인한 바 있다. 앞서 2013년에도 번호통합정책이 국민 권리 침해라는 헌법소원이 있었지만 당시 헌법재판소는 “이동전화번호를 구성하는 숫자가 개인의 인격 내지 인간의 존엄과 관련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동전화번호는 유한한 국가자원으로서 가입자들의 번호이용은 사업자와의 서비스 이용계약에 관한 것일 뿐, 번호통합정책으로 인해 가입자들의 인격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재산권이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면서 헌법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전기통신번호는 주파수가 사업자에게 부여되는 것과 달리 개별 이용자의 통신서비스 이용환경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통신요금 등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번호체계의 변경은 이용자 혼란 등의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번호체계의 변경은 최대한 기존 이용자를 보호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도 기간통신사업의 휴업ㆍ폐업으로 인하여 별도의 이용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기간통신사업자에게 가입 전환의 대행 및 비용 부담, 가입 해지 등 이용자 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6월 1일 기준 약 38만4000명의 잔존 2G 가입자에 대해서는 정부는 2G 폐지 승인의 조건으로 휴대전화 교체를 무료로 지원하고, 011 등 번호는 내년 6월 말까지 1년 더 쓸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택시사업면허, 주파수 이용권과 같이 공법에 근거하여 민간에 부여된 권리는 양도, 임대가 허용되고 주파수 이용권의 경우에는 주파수 회수, 재배치에 따른 손실도 보상하고 있다. 번호자원은 위 권리와 같이 사인이 대가를 납부하거나 신청을 해서 국가에 의해 부여된 공법상 권리는 아니지만 일정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에서 향후 국가정책에 따른 번호체계의 변경에 대해서 한층 투명하고 구체적인 이용자 보상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bric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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