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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참사 언제든 재발"…10년 산재 6144건 중 원청 징역형 거의 '0'

2009~2019년, 총 6144건 산재 중 자유형 이상 형은 35곳 뿐
2005~2019년, 18개 대표산재 중 1곳만 원청 징역 1년 받아

(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2020-05-05 05:00 송고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2020.5.3/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3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창전동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긴 채 조문하고 있다. 2020.5.3/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어떤 조건에서도 불이 날 수 있는 조건이었죠. 전깃불 스위치만 올려도 거기는 빵 터질 수 있었던 거예요. 2008년 이천화재였죠. 올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도 2008년이랑 사실상 같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4월29일 경기 이천시 소재 물류창고 지하 2층 우레탄작업 현장에서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불이 나 4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2년 전 2008년 1월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화재가 발생해 현장 노동자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안타까운 반복이었다.
5일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이번 사고도 정확히 조사를 통해 밝혀야겠지만 (2008년 사고와) 환경은 똑같다고 볼 수 있다"며 "그 이후 제도 개선이 없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천 화재가 또 날 수도 있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그게 제일 문제"라며 끄덕였다.

결국 원청이 하청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시키지만 이천 물류공장같은 사건이 2008년에 터졌을 때 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사고가 반복된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사고를 가장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원청 사업주"라며 "논리상으로 1차적 책임있는 주체가 처벌을 받아야 다음에 책임을 제3자에게 넘기지 않고 적극 예방하는 풍토가 만들어지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원청과 하청을 포함해 산업재해 사고가 났을 경우 징역형 이상의 형을 집행받는 업체는 드물었다. 처벌받지 않으니 사고가 재발하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에서 산재판결과 관련해서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09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산안법 위반 1심 판결현황' 자료에 따르면 총 6144건의 산재 중 자유형(금고·징역형) 이상의 형을 집행받은 곳은 0.57%인 35곳 뿐이었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br><br>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가장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할 원청은 다른 누구보다 그 책임에서 빗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이 제공한 '중대재해사고 책임자 처벌사례'가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총 18개의 대표적인 산재 처벌결과를 분석해보니 2015년 4월 광주 남영전구공장의 집단 수은중독사건의 원청회사인 영세기업 남영전구측 관계자들이 징역 1년을 받은 것 이외에는 나머지 17개 산재에서 원청은 대개 무혐의거나 벌금형, 집행유예에 그쳤다.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건으로 6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삼성중공업은 300만원의 벌금만 냈다.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수리 하청업체의 28세 노동자가 도어에 끼어 사망한 사건의 경우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5년 한화케미칼 울산공장에서 폭발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원청인 한화케미칼 법인은 벌금 1500만원만 물었다.

2008년에 있었던 이천 코리아 2000의 냉동창고 화재사건의 경우도 원청인 이천 코리아 2000 법인은 산안법 위반 죄로 벌금 2000만원만 냈다. 대표자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역시 벌금 2000만원을, 현장소장은 과실치사와 산안법 위반죄로 집행유예 2년(징역 10월)에 벌금형을 받았다.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의 외주화된 죽음에 노동·사회단체의 반발이 점점 더 거세져왔다. 올해 1월부터 개정 산안법(김용균법)이 실시됐고 근로자 사망시 사업주의 처벌 중 징역형이 형량이 7년에서 10년 이하로 상향됐고, 법인인 사업주는 벌금이 1억에서 10억으로 10배 증가했다. 

1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현장 앞에 한 시민단체가 가져온 국화꽃이 놓여 있다. 2020.5.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1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화재현장 앞에 한 시민단체가 가져온 국화꽃이 놓여 있다. 2020.5.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그러나 현실에서는 김용균법을 적용하는데 온도차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형사처벌의 하한선이 없고 실제 기업처벌까지 하기에는 판례가 없어 이를 적용하기가 무리수라는 이유다. 또 다시 책임질 수 있는 자가 없는 셈이다.

이 대표는 "산안법상 법인처벌규정은 양벌규정이라고 해서 법인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관리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10억원으로 형량이 높아져도 관리감독을 잘못했다고 해서 10억원까지 처벌한다는 것이 법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검찰과 법원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임 원장은 "산안법 처벌규정이 세지더라도 검찰과 법원이 바뀌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원청의 책임성 강화에 대한 제도도 김용균 전부터 확대되고 있었는데 실제 처벌이 많아지지 않았을 만큼 현장에서 온도차가 엄청나게 크다"고 지적했다.

임 원장은 "검찰이나 법원이 안전문제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부족한 것"이라며 "이천참사 같은 경우 슬퍼하고 애도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을 것이며 검찰과 법원도 여기에 반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이천 사고를 조사했던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안법은 일반의 상식과 많이 다르며 권력이 막강한 사업주를 조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책임기관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검찰의 구형이 하청업체 책임자나 원청의 현장 파견 책임자에만 그치는 것에 대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원청의 경영진까지 영향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민애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는 "비용을 확인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윗선이 (산재가 났을 경우) 책임을 지는 것이 없다"며 "회사에 소속된 누군가가 잘못되면 법인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책임자들까지도 처벌대상이 되게 규정을 확대하는 것이 기업살인법의 요지"라고 설명했다. 기업살인법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고 회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한편 이번 이천 물류창고 참사에서 원청인 시공업체는 주식회사 건우이며 공사 발주처는 주식회사 한익스프레스다.


suhhyerim77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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