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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코리아 스타트UP]규제 탓 애플에 자리내줬을땐 "나라가 원망스러워"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 개발했지만 규제의 벽…데스밸리 넘긴 7년차 '휴이노'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2020-03-09 07:02 송고
편집자주 "첫째, 둘째, 셋째도 인공지능(AI)."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인터넷 강국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강조한 말이다. '지능화'가 핵심 동력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AI 기술에 미래가 달려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AI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몇년 뒤진다. 그나마 혁신을 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대기업 주도의 산업 구도 속에서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AI 코리아'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새해를 맞아 <뉴스1>은 한국의 미래 혁신을 주도할 AI 스타트업을 찾아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길영준 휴이노 대표. 2020.3.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길영준 휴이노 대표. 2020.3.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회사에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주변에서 다들 포기하라고 했어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어금니를 악물고 일했습니다. 결국 주변의 '안된다'는 말들을 뚫고 나가는 게 벤처이고 스타트업인 것 같아요."

통상 창업 3~5년차에 맞는다는 '죽음의 계곡'(데스밸리·Death Valley) 시기. 올해로 설립 7년차에 접어드는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이노(HUINNO)도 예외는 아니었다. 휴이노는 창업 직후인 2015년 심전도 측정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를 개발하고도 규제의 벽으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지 못해 손발이 묶였다.
길영준 대표(47)는 "2016~17년쯤 데스밸리를 거쳤다. 재무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어려운 시기까지 갔었는데 끝까지 버텼다"고 말했다.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는 길 대표의 얼굴에는 순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기를 끝내 이겨낸 자부심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규제 탓 애플에 자리내줬을땐 "국가가 원망스럽기도"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휴이노 청담 지점에서 <뉴스1>과 만난 길 대표는 2014년 7월 휴이노를 설립하기 전까지 부산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당시 동료들과 '인간-컴퓨터 간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HCI)을 연구했던 길 대표는 연구과정 속에서 좀 더 성능화된 헬스케어의 미래를 꿈꿨다.
"미래에는 2000만~3000만원짜리 심전도 기기가 아니라 20만~30만원짜리 시계로 간단히 생체신호를 측정하면 정말 좋겠다."

동료들 또한 한마음이었지만 스타트업계로 뛰어든 이는 길 대표 하나였다. 휴이노의 시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스타트업계의 길은 녹록지 못했다. 회사 설립 직후인 2015년 지금의 휴이노를 알린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를 개발했지만 종전에 없던 새로운 제품은 기존 의료기기 규제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데스밸리가 왔다.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녔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료를 찾아가 최고기술경영자(CTO)로서 휴이노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초창기 휴이노에 작지 않은 도움을 준 투자자를 찾아가 현 최고재무관리자(CFO)로서 역할을 해달라고도 했다. 당시 길 대표의 휴대전화 배경화면도 바뀌었다. 'NEVER, NEVER,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말자)이다.

그렇게 매일을 고군분투로 보내던 중 '힘 빠지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8년 심전도 측정 기능이 탑재된 애플의 '애플워치4'가 나온 것.

"아쉬웠고 국가가 원망스러웠다." 당시 길 대표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것도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얻은 건 있었다. 휴이노는 이 일을 계기로 '애플보다 먼저' 심전도 측정 스마트워치를 개발한 국내 업체로 이름을 알렸다.

2019년 '기회'가 왔다. 그해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고대안암병원과 휴이노의 손목형 심전도 장치(메모워치)를 'ICT 규제 샌드박스(신제품·신서비스 출시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 면제) 1호'로 선정한 것.  정부로부터 사실상 휴이노 기술의 혁신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뒤이어 다음달(3월) 휴이노의 메모워치 및 AI기반 심전도 분석 소프트웨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국내 최초 의료기기 승인 허가가 떨어졌다. 휴이노의 제품을 시판할 수 있는 문이 좀 더 열린 것이다. 지난 2일 휴이노는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으로부터 50억원 규모의 투자 또한 유치했다.

길영준 휴이노 대표. 2020.3.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길영준 휴이노 대표. 2020.3.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보험수가 받으려면 하세월…KTL에도 재정 투입되길"

당초 휴이노는 자사 청담 지점에서 지난 4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초청해 국내 최초 메모워치 임상시험 개시 행사를 개최하려 했다. 행사에서 최 장관은 메모워치를 이용한 첫 임상시험자가 될 예정이었다. 메모워치로 잰 최 장관의 심전도를 고대안암병원 의료진들에게 전달해 진단하는 시연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행사는 취소됐다. 대신 오는 12일 행사를 진행하기로 정리했다.

길 대표는 "사실상 원격의료의 첫발"이라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원격으로 의료 데이터를 전송해 병원에 있는 교수(의사)분들이 피드백을 해주는 진료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휴이노가 진행 중인 임상시험의 명칭은 '원격'이란 말은 없이 '스마트 모니터링'으로 명명돼 있다. '원격의료는 동네병원을 죽이는 일'이라는 등 일부 의견을 고려해서다. 길 대표는 그러면서도 "우리 제품은 저렴하고 간단한 장비를 보급함으로써 오히려 1차 병원(동네병원)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지금은 과거보다 변화된 목소리가 많다"고 부연했다.

길 대표는 메모워치가 활성화됐다면 현 코로나19 사태에 적잖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을 집으로 보냈다가 중증이 돼 사망하는 사례들을 보고 메모워치와 같이 집에서의 증상을 병원이 원격으로 진단할 수 있는 제품이 있었다면 유용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메모워치가 규제 샌드박스로 선정된데다 국가 비상상황인 만큼 방법이 없었을까. 길 대표는 "(메모워치 등이) 규제 샌드박스로 허가가 돼있긴 하지만 고대안암병원 의료진들만 진단이 가능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규제의 벽이 크다.

길 대표는 "갈길이 구만리"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보험수가도 받아야 하는데, 보험수가를 받으려면 임상시험을 하고 논문을 작성한 뒤 논문 리뷰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 이 기간이 2년이 걸리니 사실 하세월이다. 이렇다보니 (스타트업·벤처업계가) 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길 대표는 "앞으로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에 국가의 재정이 좀 더 투입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KTL은 각종 기기·부품에 대한 시험평가를 통해 기업의 기술력 향상 및 국내 품질인증을 지원한다. 길 대표는 "혁신형 의료기기 등이 만들어지는 속도에 비해 이에 대한 심사틀을 만드는 KTL의 인원 등이 제한돼 있는 듯하다"며 "평가가 지체돼 있으면 아무리 기업이 빨리 가고자 해도 갈수가 없다"고 말했다.


cho1175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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