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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인터뷰]① "위로 주는 토커" 박경림의 특별한 20주년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2018-09-17 08:00 송고
위드림컴퍼니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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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박경림(39)이 어느새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98년 KBS 2FM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로 데뷔한 후 그 누구보다 20년을 바쁘게 달려온 그였다. '일밤' '느낌표' '동거동락' 등 당대 간판 예능 프로그램 MC로 활약했고 지난 2001년 제1회 MBC 연예대상에서는 최연소 여성 예능인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활약을 인정받았다. '논스톱'에서는 배우로, 박수홍과 함께 한 '박고테프로젝트'에서는 가수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2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친 뒤 '심심타파' '별이 빛나는 밤에' '두시의 데이트'의 DJ로 청취자들과 소통했고 국내 최초로 기획했던 토크 콘서트를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결혼 이후에도 전문 토커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런 그가 올해 '리슨 콘서트'를 기획, 데뷔 2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박경림은 듣는 개념의 콘서트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상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더 좋은 토커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간 박경림이 20년간 활동하며 가장 크게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자신의 말한마디에 버틸 힘이 생겼다는 한 청취자의 사연을 받았을 때다. 그래서 "아무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줄 수 있는 한 명만 곁에 있어도 힘이 되지 않나. 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을 것이라 짐작됐다. 향후 30주년, 40주년에도 편안하게 웃음과 위로를 주고 싶다는 박경림. 대중과의 소통을 향한 그의 고민은 오늘도 계속된다. 
위드림컴퍼니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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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음 박경림과 일문일답.

- 이전에 기획했던 토크 콘서트와 달리 변화를 시도했다고. 어떤 차별점이 있나. 

▶ 이전의 토크 콘서트는 여성들이 공감하고 위로하고 나눌 수 있는 30~40대 여성들을 위한 토크 콘서트로 기획됐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형식과 콘셉트를 시도해서 더 많은 관객 분들과 소통하고자 변화를 줬다. 대중들과 어떻게 하면 더 소통할 수 있고 시청자 여러분들께 받은 사랑을 어떻게 보답할지 고민했던 결과다.
- 토크 콘서트를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이로 알고 있다. 토크 콘서트를 당시 기획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 토크 콘서트를 1999년도에 처음 대학로에서 시작했다. 당시엔 주위에서 '너가 나와서 말하는 걸 누가 보러 오겠냐'고 했다. 가수의 무대도, 배우의 뮤지컬도 아니고 토크라는 걸 누가 보러가겠냐 하더라. 가수는 노래로 관객을 만나고 배우는 연기로 만나는데 나는 관객들을 어떻게 만나나 싶었다. 다행히 많이 보러 와주셨다. 그 사이 토크 콘서트도 많아졌고 토크를 잘 하시는 분들도 너무 많아졌지만 연대와 유대를 갖고 서로 위로하고 안아주는 토크 콘서트라는 차별점을 갖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 데뷔 20주년에도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사실 나도 안주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게 안주인지 몰랐다. 내게 주어진 기회의 무게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일이라는 게 안 되면 하나가 안 되는 게 아니라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때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됐고 20주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라도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돼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앞으로 30주년도, 40주년도 올텐데 그때 부끄럽지 않게 더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 박경림이 안주했던 때라면 언제였나.

▶ 미국에서 갓 돌아왔을 때였다. 미국 가기 전과 똑같이 스케줄이 정말 너무 많은 거다. 미국에 있느라 2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는데 돌아와보니 감사하게도 스케줄이 다 차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왔는데도 미국에 떠나기 전과 상황이 똑같더라. 당시에 스케줄이 굉장히 많았는데 일을 도장깨기처럼 하곤 했다. '일이 이렇게 들어오니까 앞으로도 많이 들어오겠지'라고 안심하는 순간 프로그램이 조기종영이 됐다. 당시 내가 그만 둔 프로그램도 있고 불가피하게 하차하게 된 프로그램도 있지만 2~3개가 동시에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니까 힘들더라. 시간이 지나고 그게 내 탓이라는 걸 더 알게 됐다.

- 20대부터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박경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문 토커로 활동하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 방송인, 예능인은 프로그램으로부터 선택되고 섭외를 받는 사람이다. 나라는, 박경림이라는 사람은 변한 것이 없는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현실과 상황은 변했다. 나라는 사람이 변한 것은 아닌데 프로그램도 변하더라. 지금도 12시간 녹화도 할 수 있는데 시대가 변하다 보니 프로그램 색깔과 트렌드도 바뀌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섭외가 들어오는 것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본의 아니게 휴식기를 갖게 되면서 공백이 있었고 영화 관련 행사를 진행하게 되면서 그 분야에서 열심히 했을 뿐이지 예능은 안 하겠다고 구분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몸 쓰는 예능은 안 해'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 육아 예능, 관찰 예능 섭외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 섭외는 정말 많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가족 예능 출연은 아무래도 나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다. 가족들이 원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출연이 가능한 부분이다. 육아 예능 출연을 몇 번 거절했더니 이제는 혼자 하는 것도 잘 안 들어오더라. (웃음)

- 밖에서는 프로페셔널한 방송인이지만 집에서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로 산다. 워킹맘으로서 고충도 있을 텐데.

▶ 지구상의 모든 워킹맘들이 공감하는 고충을 나도 겪고 있다. 정말 쉽지 않다. 밖에서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콘서트도 진행하고 쇼케이스도 맡지만 집에서는 엄마이고 아내여야 한다. 아이에게는 숙제, 준비물을 안 봐주는 엄마가 서운할 수 있다. 밖에서 하는 일과 안에서 하는 일의 무게를 다르게 두면 안 되더라. 아이, 남편에게 집중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사실 병행해서 하는 것도 얼마 안 됐다. 한때 가정에만 집중할 때도 있었다. 이전에는 혼자 계획하고 실행하고 결정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모든 결정을 가족들과 조금씩 함께 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까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

- 육아 예능, 관찰 예능을 통해 사생활이 노출된 스타가 아니기에 박경림이 어떤 엄마이자 아내인지 궁금해 하는 대중들도 많다.

▶ 그건 우리 아이와 남편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미화하고 과대포장을 할 수도 있으니까. (웃음) 결혼한지 어느덧 12년이 됐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나는 그냥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대중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무엇보다 가족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편하게 생각해야 한다. 가족 한 명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고 편한 마음을 줄 수 없다면 대중에게도 그런 편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잘하고 가족에게 잘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 노력이 얼마나 보였는지 모르겟지만 아이에게, 남편에게 만큼은 편한 엄마이자 아내가 되려고 한다.

- 전문 토커로서, 박경림이 김제동과 김미경 등 타 토커와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 그분들이 더 전문적이시다. 나는 그분들 만큼 전문적이진 못하지만 누구의 얘기라도 듣고 유쾌하게 위로해주고 싶다. 남녀노소 어느 누구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내 방식대로 위로하고 싶다. 사실 그동안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서 토커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왔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까'라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까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했을 때도 많았고 상대의 말에 편견을 갖고 내 방향으로만 이끌어갔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말을 하기 보다 상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중심을 두고 편견 없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믿고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면 더 좋은 토커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먼저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셈이다. 지금까지는 말하는 게 앞섰다는 반성도 했다.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상대가 필요한 얘길 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다.

- 예능인, MC, 작가, 연기, 가수 등 박경림은 정말 다방면에서 많은 활약을 펼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개인적으로 더 애착이 가는 분야가 있는지, 혹은 대중이 더 기억해줬으면 하는 분야가 있나.

▶ 저를 개그우먼으로 아시는 분도 있고 방송인, 예능인, MC로 아시는 분들도 있다. 나를 무엇으로 아시든 다 좋다. 그분에게는 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개그우먼으로 기억된 것이고 진행자로서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MC로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으로 기억되든 전혀 상관이 없다. 저는 사실 마이크를 잡는 일이면 다 좋다. 그래서 다양한 영역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MC로서도 예능인으로서도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면 다 좋다.

- 올해로 데뷔 20주년이다. 그간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면.

▶ 어린 나이에 너무나 큰 사랑을 많이 받았고 상을 받았던 순간들도 기억에 남지만 라디오 진행할 때가 유독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가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제일 좋다. 청취자 분들이 손편지로 직접 보내주신 사연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한 번은 군대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편찮으셔서 힘든 시가를 겪고 있을 때 내 한마디가 힘이 돼서 버텼다는 사연도 특별했다. 나도 부족한 사람인데 누군가를 버틸 수 있게 했다는 그 말이 너무 감사했다. 그때 내가 했던 말도 사실 별것 아니었다. '힘들죠? 지금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두고 보세요. 다 지나갑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분에게 이 말이 크게 와닿았던 거다. 예전에 김국진씨가 해준 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경림아, 네 옆에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지금 제일 힘들지 몰라'라고 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웃는 모습만 보고 '이 사람은 괜찮을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사람을 더 깊이 보려고 하게 됐다. 아무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줄 수 있는 한 명만 곁에 있어도 힘이 되지 않나. 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 앞으로의 30~40주년을 꿈꿔본다면,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요즘은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게 빨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흐름 속에서도 30~40주년에도 이렇게 원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좋은 사람들과 웃으면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분들이 나를 보면서 웃어주고 그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같다.


aluem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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