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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 들었을까 '두근두근'…"설렘자판기로 5000원에 책사요"

장르만 선택하면 헌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책이 나와
사라지는 청계천 헌책방 안타깝게 여긴 연세대학생들이 개발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8-27 10:20 송고
경기도 고양시 스타필드에 설치된 '설렘 자판기'(책 it out 제공)© News1
경기도 고양시 스타필드에 설치된 '설렘 자판기'(책 it out 제공)© News1

지난 24일 문을 연 경기도 고양의 최첨단 복합건물 스타필드. 9만1000㎡의 규모에 총 130여개의 매장이 입점해 있는 이 곳에서는 국내 두 개 밖에 없는 물건 중 하나가 있다. 바로 2층 디자인 전문 쇼핑몰 '텐바이텐'(10x10) 매장 안에 위치한 책 자판기인 '설렘자판기'다.

설렘자판기는 랜덤(무작위)으로 책을 추천해주는 이색자판기다. ‘추리, 로맨스, 여행, 지식교양, 아동, 자기계발, 힐링, 랜덤’ 등의 총 8개 분류 중 원하는 장르를 선택하면 오랜 세월 책을 다뤄온 헌책방 주인이 미리 골라 포장해 놓은 책 한 권이 나온다. 포장 속 책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기욤 뮈소의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해당 분야의 걸작이나 화제작들이다. 
고양 스타필드에 앞서 지난 6월10일 텐바이텐 대학로점에 설치한 설렘자판기는 약 2달간 7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온 반응도 '신선하다' '사회적 가치에 공감했다' '책도 깨끗하고 읽고 싶은 책이 나왔다' 등 긍정적이다.

설렘자판기를 운영하는 주체는 7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이다. 기업가 정신의 실천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 '인액터스'(Enactus)의 학교내 지부에 속해 있던 이들은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해왔던 헌책방들이 쇠퇴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약 3년 전부터 '책 잇 아웃(it out)'이라는 이름으로 ‘헌책방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설렘자판기'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연세대 책 it out의 팀원들(책 it out 제공)© News1
'설렘자판기'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연세대 책 it out의 팀원들(책 it out 제공)© News1

서울 청계천 5~6가 사이의 버들다리부터 오간수교까지 약 300m 구간에 자리 잡은 헌책방 거리는 1960년대 만들어져 한때는 200개가 넘는 서점이 성업했다. 그러나 최근 10~20년 새 종이책 인기가 떨어지고, 온라인 서점이 늘어난 여파로 손님이 줄어 현재는 20여개만 남았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이틀 헌책방을 찾아 한번에 70~100권 책을 받아와 자판기에 채워넣는다. 처음에는 무슨 책이 나올지도 모르는 책 자판기라는 아이디어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던 헌책방 주인들도 이제는 학생들이 오는 시간을 기다린다고 했다. 책 잇 아웃의 팀장 이현진씨(21·경영학과 2년)는 헌책방 살리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요즘은 사람들이 쉽게 물건을 사고 빨리 버린다. 중고책의 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되는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설렘자판기의 사용법은 일반 자판기와 똑같다. 현금 5000원이나 카드 등을 넣고 원하는 장르를 누르면 무슨 책인지 알수 없도록 포장된 책이 밑으로 나온다. 세계 최초의 책자판기는 1822년 한 영국인이 감옥에 가지 않고 토머스 페인의 책 '이성의 시대'같은 선동성이 있는 책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국내에도 그간 지하철 역 등에서 얇은 책을 파는 책 자판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자판기를 헌책과 연결해서 '깜짝 선물'을 주는 듯한 시도는 국내 처음이다.

책 잇 아웃의 현지윤 씨(23·영어영문학과 4년)는 “사업에 참여하기 전에는 헌책은 낡고 더러운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설렘자판기에 들어가는 헌책방의 책들은 새 것과 같은 수준”이라며 “헌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또 다른 목표는 설렘자판기를 통해 책과 소원해진 현대인들에게 유쾌하고 쉬운 독서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허빈 씨(22·국제학부 2년)는 “스마트폰에 지친 사람들, 독서가 하고 싶지만 책을 고르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설렘자판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판기에서 꺼낸 책.(책 it out 제공)© News1
자판기에서 꺼낸 책.(책 it out 제공)© News1


설렘자판기에 넣을 책을 싸는 헌책방 사장님.(책 it out 제공)© News1
설렘자판기에 넣을 책을 싸는 헌책방 사장님.(책 it out 제공)© News1


서울 청계천의 헌책방 거리.(책 it out 제공)© News1
서울 청계천의 헌책방 거리.(책 it out 제공)© News1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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