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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만화가 윤태호 "독자들과 같이 나이들고 싶다"

[인터뷰]웹툰 플랫폼 '저스툰'에 작품 '오리진' 연재하는 윤태호 작가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6-11 10:17 송고 | 2017-06-12 09:05 최종수정
윤태호 웹툰 작가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6.9/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윤태호 웹툰 작가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6.9/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저는 이상하게도 '필생의 작품으로 뭘 써야지' 하는 게 없어요. '내 창작은 결국 이걸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작가들도 분명히 있지만 저는 그런 '키워드'가 없어요. 그냥 독자들과 같이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미생' '이끼' '내부자들' 등 사회성 짙은 만화를 그려온 윤태호 작가가 교양만화를 들고 왔다.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윤 작가는 사물의 '오리진'(기원)을 알아내는 미래에서 온 로봇이 주인공인 만화 '오리진'을 웹툰·웹소설 전문 플랫폼인 '저스툰'(www.justoon.co.kr)에 연재한다고 밝혔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만든 '저스툰'에 작품 연재뿐 아니라 기획까지 참여한 작가는 오리진이 "독자를 학습시키겠다는 목표아래 노골적으로 로직(논리)이 짜인 학습만화와는 달리 서사에 교양의 요소가 들어간 교양만화"라고 소개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미국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에 나오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에 힌트를 얻어 그리게 된 이 만화는 단행본 100권을 목표로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이다.

작품은 '봉투'라는 귀여운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담고 있는 분위기는 만만하지 않다. 윤 작가는 "미래에 욕망을 채우면서 아주 오래 살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생각해보니 암울했다. 젊은이들은 목숨을 스스로 끊고 수퍼컴퓨터에 모든 지식을 넣어두고 꺼내쓴 탓에 사람들의 머리는 깡통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런 환경에서 미래의 인류가 욕망이 들끓고 활력이 넘쳤던 21세기로 '봉투'를 보내 그 21세기의 동력이 무엇이었나, 당시 지식은 어떤 것이었나 알아보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센테니얼맨처럼 로봇이 인간에 대해 배우고 인간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으로 끝낼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오리진'의 주인공 봉투(저스툰 제공)© News1
'오리진'의 주인공 봉투(저스툰 제공)© News1

윤태호 작가는 1988년 만화계에 입문해 허영만 화백의 화실에서 2년, 조운학 화백의 화실에서 3년 문하생으로 일하다가 23세인 1993년 '비상착륙'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그 후 잘 안되어서 조운학 화실로 들어가 다시 2년을 보냈어요." 10년의 무명생활을 보낸 후 윤 작가는 2007년 웹툰 '이끼'를 통해 스타 웹툰 작가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미생' '파인' '내부자들' 등 내는 족족 작품이 성공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만화방이나 대여소를 통해 소비되던 만화는 웹툰으로 형태를 바꾸면서 디지털 시대에 안착했다. 그와 함께 만화가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는 인식도 자연히 바뀌면서 40~50대 중년남성에게까지 만화 소비층이 확대됐다. 만화산업의 변화는 고스란히 윤 작가의 이력과도 맞물렸다.

"예전 시장 같으면 아동만화 중심이라 대부분의 작가는 나이 들어 (감각이 달라지면서) 설 자리가 좁아졌어요. 그런데 이제는 또래들도 많이 웹툰 매체를 들어가 웹툰을 보니 '같이 늙어가면 좋겠다. 조금은 어른스러운 것을 해도 되겠다'고 느껴요."

하지만 너무 유명 작가에게만 웹툰의 소비가 몰리는 것 아닌가 묻자 윤태호 작가는 "영화도 그렇고 TV도 그렇고 한번 잘되었던 작가나 콘텐츠에 사람들이 계속 신뢰를 주는 관성이 있기는 하다"면서 "그래서 아직도 수천 명의 신진 작가들이 바닥층을 형성하며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작가는 "그래도 몇 년 전에 비해 꽤 많이 좋아졌다"면서 "단행본 판매를 하기 때문에 주목을 받아 소수의 작가만 인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작품을 좋아하는 나이든 세대 말고 어린 세대들이 보는 또 다른 만화 작가들의 세계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이름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도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이 이어졌다.

윤 작가가 우려하는 것은 도리어 만화산업의 과열이다. 만화판 자체가 너무 뜨거워져서 플랫폼만도 40여 개나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플랫폼들 대부분은 '19금'에 주력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나 매체가 개발되면 가장 먼저 포르노가 진출한다. 현재는 그런 분위기인 듯하다"면서 "이 흐름이 지나가면 폐허에 무엇이 남을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미생' '꼴' '식객'같은 좋은 기획만화"라고 말했다.

이는 윤 작가가 웹툰 플랫폼 저스툰에 연재뿐 아니라 기획에도 참여한 이유기도 했다. "저스툰을 통해 아주 잘 만든 기획만화나 장르만화만 선보일 거예요. 당대의 놓칠 수 없는 소재에 교양을 결합해 원색적인 만화가 아니어도 가치 있는 것을 제대로 만들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요."

무한도전 등의 TV프로에서 젊은이들에게 조언하는 멘토 역할을 했던 윤 작가는 웃으며 "나도 모르게 나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술술 해서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젊은이들에게 '꿈꾸라', '도전하라' 이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면서 "꿈꾸고 도전하고 모험하고 그러다 실패한 것을 이력서에 쓰면 인정해주지도 않으면서 그럴 수 있냐"고 했다.

그리고 윤 작가는 "청년정책은 중년정책과 함께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실업 관련 정책 등을 내놓아 효과를 본다고 해도 빈곤에 허덕이는 중년이나 폐지줍는 노인들이 여전히 많으면 어떻게 희망을 품느냐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뭔가 이야기해주는 것도 중요한데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미래인 아버지들의 삶에 희망이 없으면 청년들은 안믿을 것 같아요. 청년 정책과 함께 중·노년 정책도 추진되어야 청년층이 온전한 희망을 가질 것 같습니다."

윤태호 웹툰 작가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6.9/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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