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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도 녹여버린 체르노빌 30년…방재 작업은 아직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 30년

(서울=뉴스1) 국종환 기자 | 2016-04-26 10:40 송고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104㎞ 떨어진 프리피야트 마을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폭발이 발생했다.©AFP= News1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104㎞ 떨어진 프리피야트 마을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폭발이 발생했다.©AFP= News1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평가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26일(현지시간)로 30주년을 맞았다.

사고 발생 후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소재지인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 마을이 사람이 거주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려면 수천년에서 수만년까지 걸릴 거라는게 전문가들의 솔직한 평가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16년 보고서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자연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으며 이는 수천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체르노빌 사고와 같이 단일 사건으로서 이토록 다량의 또한 오랜 기간 지속되는 방사성 물질을 자연에 노출시킨 사건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원전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일부 전문가들을 인용 체르노빌 원전 인근 지역의 높은 오염 수준과 여러 증거들을 볼 때 최소 3000년 동안은 인간이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현장 정화 작업에 참여 중인 일부 핵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비관적이다. 이들은 복귀 시점을 3000년으로 잡은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며 이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체르노빌 원전 책임자 중 한 명인 이호르 그라못킨도 몇년전 미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체르노빌 원전 주변에 사람들이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최소 2만년인 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다. 원전 사고 당시 유출된 일부 동위원소의 경우 방사능이 수만년 동안 잔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폭발로 완전히 폐허가 된 원전의 모습©AFP=News1
폭발로 완전히 폐허가 된 원전의 모습©AFP=News1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104㎞ 떨어진 프리피야트 마을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원자로 실험 도중 원전 출력이 급증하면서 수소 폭발이 발생했다.

과열된 핵연료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면서 큰 화재가 발생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원자로 상부에 위치한 200톤(t) 규모의 크레인이 쓰러지면서 원자로 중심인 노심 상부를 파괴했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수소·화학폭발로 원자로 구조물 상부가 날아갔고 이로 인해 방사능을 포함한 분연이 1㎞ 상공까지 치솟아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 확산됐으며 한국에도 일부 지역에서 낙진이 검출됐다.

당시 겉잡을 수 없는 화재와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군용 헬기 30대가 동원돼 폭발 원자로 주변에 여러 물질들을 투하했다.

물질들은 중성자를 흡수해 연쇄 반응을 막기 위한 40t의 붕소 화합물과 열을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돌로마이트 600t, 방사능을 차단하기 위한 2400t의 납과 1800t의 모래와 진흙 등이었다.

동원된 헬기 조종사들은 방사능에 노출돼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의 각오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피폭을 줄이기 위해 헬기는 폭발 중심지 바로 위에 멈춰서지는 못했으며 원자로 주변을 통과하면서 투하물을 떨어뜨리는 방식을 이용했다.

그로 인해 투하물 중 일부는 노심에서 빗나가 주변에 떨어지기도 했으며 이것이 오히려 원자로의 온도를 높였다는 지적도 있다.

폭발 당시 2명의 작업자가 현장에서 죽었으며 10일간 지속된 진화작업에 원전 직원과 소방대원 대부분이 심각한 방사선 피해를 입어 7월 말까지 29명이 사망했다. 원전 주변 30㎞ 이내에 사는 주민 약 9만2000명이 방사능을 피해 강제 이주 조치됐다.

그 뒤에도 6년간 진행된 발전소 해체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5722명과 지역 주민 2510명이 직간접적 피해로 목숨을 잃었으며 약 43만명이 암과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체르노빌 사고는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INES)에 의해 분류된 등급 중 가장 심각한 사고를 의미하는 7등급으로 기록됐다.

폭발한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7개월 뒤 '석관'이라 불리는 콘크리트로 봉인됐으며 붕괴 위험이 있어 현재 교체 작업이 진행중이다.

◇ 소련 '철의 장막' 도 함께 멜트다운
미하일 고르바초프©AFP=News1
미하일 고르바초프©AFP=News1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철옹성같은 폐쇄정책을 유지하던 소련의 '철의 장막'을 여는 계기가 됐다.

소련은 사고 당시 발생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4월 26일 아침에 사고 지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1200㎞ 떨어진 스웨덴의 한 원전에서 소련에서 날아온 것으로 보이는 전례 없는 방사능이 검출됐다.

스웨덴 정부는 소련에 즉각 해명을 요구했고 소련 정부는 관영 통신을 통해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간이나 피해자 수 등은 언급하지 않은채 28일에서야 사고 발생 사실을 인정했다.

이후 사고 규모와 사망자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확산되자 소련 정부는 30일 방사능 누출로 입원한 환자의 수를 공개했다. 소련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5월 6일에 이르러서다.

소련 정부는 이후 스웨덴 정부 등에 공식적으로 화재 진화를 위한 소방관의 파견과 의료 지원 등을 요청했다.

경기 침체와 미국과의 군비 경쟁, 식량난 등으로 허덕이던 소련은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중심에서 원전이 폭발하자 중대 고비를 맞게 된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원전 사고 수습 비용과 별개로 내부에서 충당하던 식량까지 줄면서 식량난은 더욱 심화됐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사건을 계기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본격화한다. 고르바초프는 개혁 개방의 2대 정책을 기치로 구소련의 변화를 이끌었으며 이 과정에서 독일의 통일을 비롯해 구소련 아래 있던 다수의 동유럽 국가들이 독립을 선포했다.

◇ 원자로 덮개 공사 마무리…내년말 완공 예정
사고 진원지인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폭발이 발생한 원자로 4호기 건물 전체를 초대형 강철 덮개로 덮어 씌우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사고 진원지인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폭발이 발생한 원자로 4호기 건물 전체를 초대형 강철 덮개로 덮어 씌우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사고 진원지인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폭발이 발생한 원자로 4호기 건물 전체를 초대형 강철 덮개로 덮어 씌우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덮개는 높이 약 107m 이상, 길이는 약 152m의 초대형으로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될 경우 내년 말쯤 완공돼 원자로 4호기 전체를 봉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그렇게 되면 콘크리트 석관으로 임시 봉인한 것을 대체해 향후 최소 100년간은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공사장에는 약 2500명의 근로자들이 투입돼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WSJ은 밤이 되면 근로자들이 입은 안전조끼에 빛이 반사돼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뉴 세이프 컨파인먼트(New Safe Confinement)'란 이름으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의 안전 책임자 데이비드 드리스콜은 "웸블리 스타디움(영국 국가대표 축구경기장)과 주차장을 모두 덮을 수 있는 크기"라고 규모를 설명했다. 그는 공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장 근로자들은 매일 방사능 노출 정도를 모니터링하고 15일 근무에 투입되면 이후 15일 의무적으로 쉬는 등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방사능 보호장비 등의 관리로 인해 치아 X-Ray를 찍을 때 0.014밀리시버트(m㏜)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반면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경우 시간당 방사선 노출량은 0.0075m㏜ 정도라고 전했다.
총 24억5000만달러(약 2조8000억달러)가 투입되는 덮개 설치 공사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국제사회가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 사람이 떠난 자리엔 야생 동물이

프리피야트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야생동물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AFP= News1
프리피야트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야생동물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AFP= News1


현재 체르노빌 인근 지역은 주민들이 대부분 떠나 유령 도시가 됐으나 일부 소수 주민들이 위험에도 불구하고 귀향을 결정해 돌아와 살고 있는 상태다. 일부 외신에 따르면 현재 원전 인근 마을에는 약 160명의 주민들이 돌아와 살고 있다.

현지 주민 올렉산드라 로즈빈은 "남편은 평생에 고향에 돌아오기 원했으며 모든 것이 폐쇄되고 출입이 금지된 상태에서 결국 귀향했다"면서 "그는 가시 철조망을 넘어 귀향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체르노빌 원전에서 불과 7㎞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다.

로즈빈은 "우리 부부는 체르노빌의 역사를 지키기로 결정했다"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다시 이곳에 돌아와 살기를 꿈꾸며 그들의 아이들과 손자들도 이곳에서의 삶을 보기 원한다"며 더 많은 주민들의 귀향을 호소했다.

프리피야트 마을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야생동물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부분별한 사냥이 자취를 감추면서 동물에게 있어서는 어느곳보다 안전하고 이상적인 서식지가 된 것이다.

의학 전문 학술지 현대생물학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 주변 4200km² 근방에서 말코손바닥사슴, 멧돼지, 늑대 등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원전 인근에서 발견된 늑대 수는 근처 공원에 비해 7배가 넘는다.

짐 스미스 영국 포츠머스대학교 연구원은 "현재 체르노빌에는 사고가 나기 전보다 더 많은 동물이 산다"면서 "방사능이 야생 동물에 도움이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사냥 등이 야생 동물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조사였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체르노빌 구역에서 서식하는 동물 중 어느 정도가 암이나 유전적 질환 등 방사능과 관련한 질병에 걸렸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jhk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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