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의사도 없이 '1인 간호사'가 지키는 '섬 중의 섬'…"잠 깊이 못 자"

[지방지킴] '섬마을 간호사' 윤현 신안군 재원도보건진료소장
18년 경력 살려 섬 근무 자청…"의료취약지 환경개선 시급"

(신안=뉴스1) 박지현 기자 | 2024-03-12 08:02 송고 | 2024-03-12 08:58 최종수정
편집자주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 지방 소멸을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든든한 이웃을 응원합니다.
11년간 전남 신안군 낙도에서 보건진료소장으로 1인 진료를 해온 윤현 보건진료소장./뉴스1
11년간 전남 신안군 낙도에서 보건진료소장으로 1인 진료를 해온 윤현 보건진료소장./뉴스1

"저를 딸처럼 의지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11년 동안 7개 낙도를 돌며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는 전남 신안군 임자면 재원도보건진료소 윤현 소장(53·여)은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신안군에는 '섬 중의 섬'이라고 불리는 23개의 낙도가 있다. 낙도에는 각 보건진료소에 1명의 간호사가 배치돼 2년마다 순환근무하고 있다.

신안군의 낙도에는 총 102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윤 소장이 일하고 있는 재원도에는 60여 명이 주민이 살고 있다.

윤 소장은 2013년 전남 신안군 낙도 보건진료소에 처음 부임했다. 이후 11년간 7곳의 섬을 돌며 주민들의 건강을 돌봤다.

섬마을 간호사가 된 이유는 고향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신안 출신인 윤 소장은 18년 동안 쌓은 간호사 경력을 의료취약지로 꼽히는 섬마을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그는 "마을 주민들은 아파도 찾을 곳이 보건진료소밖에 없다"며 "하루 휴가를 간다고 하면 어르신들이 상당히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연차도 반납하고 주민들 곁을 지켜왔다는 윤 소장. 이제는 1인 진료가 익숙해졌지만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하는 섬마을 간호사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윤 소장은 "환자는 밤낮 구분 없이 발생하는데 진료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한명뿐이다"며 "24시간 긴장하고 있어야 해서 잠을 깊이 자기가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심근경색과 같은 1분 1초가 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더 비상이다. 재빠르게 소방과 경찰에 연락해 육지에 있는 병원에 닿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한다.

그는 "한번은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어르신이 벌에 쏘여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도시였다면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며 한동안 마음이 많이 쓰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윤현 신안군 재원도 보건진료소장(오른쪽 뒤)이 치매안심 교육 후 어르신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본인 제공)2024.3.11/뉴스1
윤현 신안군 재원도 보건진료소장(오른쪽 뒤)이 치매안심 교육 후 어르신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본인 제공)2024.3.11/뉴스1

섬마을 간호사만의 고충도 있다. 본가가 있는 전남 목포에서 재원도까지는 편도 2시간이 걸린다.

다리가 개통돼 임자도까지 1시간 30분가량 차로 이동한 후 다시 배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근무지가 나온다.

일주일에 한 번 본가에 가지만 강풍주의보나 태풍이 들이닥치면 꼼짝없이 섬에 발이 묶인다. 한번 출근할 때 일주일 치 식량을 챙기는 것은 필수다.

고된 간호사 생활이지만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주민들과의 유대감이다.

병원은커녕 상비약조차 구하기 힘든 곳에서 다치거나 아픈 어르신들이 치료를 통해 회복되고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윤 소장의 생활을 응원한 가족 덕분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그마저도 배편이 여의치 않으면 가족 곁을 지킬 수 없었지만 집안 살림을 챙긴 남편은 윤 소장에게 큰 힘이 됐다.

낙도에는 수십 년을 1인 간호사로 살아온 선배 간호사들이 많은 만큼 그 뒤를 잇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선 군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특히 어르신들의 교육프로그램 강사가 더 자주 파견돼야 한다는 게 윤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치매예방 사업의 일환으로 강사들이 파견나와서 수업을 하는데 어르신들의 반응이 뜨겁다"며 "그런데 8번 중에 1번만 오기 때문에 더 자주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윤 소장은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의료 취약지역의 공백을 메우고 환자들과 후배 의료인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는 "일부 섬의 경우 배를 2번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의료인도 많다"며 "10년 넘게 일하면서 나는 익숙해졌지만 젊은 후배 의료인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쓰겠다"고 말했다. 최근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에서 울림이 큰 그의 한마디였다.


warm@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