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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자리 메우는 교수들 "몸 2개 아냐…2주 버틸 수 있을지 캄캄"

40~50대 교수 체력으론 최대 2주…의협, 사상자 발생 우려
임상강사·전임의도 "이대론 안돼"…최악의 의료 대란 올수도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2024-02-20 13:54 송고 | 2024-02-20 14:15 최종수정
12일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실로 향하고 있다. 2024.2.1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12일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실로 향하고 있다. 2024.2.1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길어야 2주요? 하긴 하겠죠. 버텨야죠. 당직도 많이 서보고 했지만 솔직히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환자들도 그렇고요."(서울의 한 대학병원 필수의료과 교수)

결국 전공의 절반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또 이들 가운데 4명 중 1명은 병원을 떠났다.
2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따르면 전날 밤 11시 기준 상위 100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모두 6415명으로 파악됐다. 이들 병원에 소속된 전공의의 55%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 중 25%에 해당하는 1603명은 출근도 하지 않고 업무에서 이탈했다. 상위 100개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는 총 1만2461명으로 이들 중 약 절반가량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들 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이 빠진 자리를 남아 있는 전임의(펠로우)와 교수들이 메우는 것으로 당직 등 스케줄을 조정해왔다. 간호사들도 이미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떠안게 됐다.

전공의들이 이탈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병원들은 지난주부터 가장 먼저 수술과 입원 일정을 조정해왔다. 삼성서울병원은 당장 급하게 해야 하는 수술을 제외하고 20일 기준 수술 30%를 줄였고, 서울성모병원도 위·중증도에 따라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 등에 대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필수 과 진료는 당연히 진행이 되는 것이고 수술 유보를 해도 바이탈(생명)에 지장이 없는 정형외과나 성형외과 등을 중심으로 수술과 입원을 미루게 된다"고 말했다.

빅5 병원만이 문제가 아니다. 전남대병원은 224명, 조선대병원은 108명의 전공의들이 이날 아침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20일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4.2.20/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20일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4.2.20/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당장 큰 문제는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응급 환자를 받는 필수의료 과들의 의료진들이 얼마나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필수의료과 교수는 "안 그래도 사람이 없어 매일 허덕이는데 전공의들이 빠진 자리까지 우리가 메워야 하니 앞이 캄캄하다"며 "전공의들이 빠졌다고 일단 모든 게 멈추는 건 아니지만 교수들도 몸이 두 개가 아니라 피로는 누적될 것이고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병원 사정은 더 열악하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수도권 병원들이야 대체 인력들로 어떻게든 돌리기는 하겠지만 문제는 응급 수술이 많은 필수 과들은 특히 업무 과부하가 걸릴 것"이라며 "지방은 안 그래도 인력이 없는데 전공의들마저 빠져버리면 더 빨리 무너져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의료계는 전공의들이 빠졌을 경우 병원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을 최대 2주로 보고 있다. 복지부도 '비상진료대책'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2~3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기간 사상자 발생 가능성도 예상하고 있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나이 40~50대인 교수가 외래·입원·응급의학과·회진 등을 다 커버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느냐. 그럴 만한 체력도 안 되고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버틸 수 있는 기한은 최대 열흘로 본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복지부도 모르는 건 아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중수본 브리핑에서 "전체적으로 업무가 과중되는 게 맞다. 기존의 인력들도 버티다 보면 업무가 과중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공의들의 업무를 대신할 간호사, 전문의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이날 빅5 병원을 포함한 전국 82개 수련병원들의 임상강사·전임의들은 '정부 의료정책 발표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의료 정책에 대한 진심어린 제언이 모두 묵살되고 국민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고 밝혔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 몇 명만 빠져도 남은 의료진들이 그 로딩을 다 뒤집어써야 하는 구조라 남은 의료 인력마저 이탈이 가속화될까 두렵다"며 "전임의와 임상강사마저 나간다면 아주 빠르게 병원이 무너지게 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 오른쪽)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료개혁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2024.2.20/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 오른쪽)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료개혁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입장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2024.2.20/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이에 복지부는 의료 공백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공공의료 기관의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할 계획이다. 또 전국 409개의 응급의료기관의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해 비상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할 방침을 내놨다. 보건소 연장진료와 공중보건의, 군의관도 의료기관에 배치하고 PA(진료보조) 간호사 활용 방안도 제시했다.

박 차관은 "현재 국립대병원,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들도 사직하는 마당에 비상진료 대책으로 내놓은 공공병원 활용책이 잘 먹힐지 의문"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상급병원에서 꼭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전체의 한 절반 정도로 보고 있다"며 "인력이 30~40%가 빠져나가는 상황에선 가급적이면 경증이나 이런 외래들은 2차 병원으로 돌린다면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군병원과 공공병원이 실질적으로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는 걸로 보고받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료계 입장은 다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금 상황이 쉽게 해결되지도 않을 것 같고 병원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주인데 그 2주가 지나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버리게 되면 그 환자들을 보건소, 군병원, 공공병원, 2차병원들이 다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으냐"며 "지금도 환자들이 '수술 못해준다더라', '쫓겨났다' 하는데 이 환자들은 2차병원이 없어서 안 갔던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응급실 24시간 운영해 비상진료하겠다는데 그 또한 남은 의료진이 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느냐고 묻고 싶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공공병원, 2차병원이 없어서 생긴 게 아니다"며 "책상에 앉아서는 '비대면 진료, PA 간호사로 막으면 되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료 현장 돌아가는 걸 알면은 절대 할 수 없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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