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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계'가 끝이 아니었다…의사-한의사, 의료행위 영토 분쟁 중

14일 '초음파 사용' 파기환송심…13일 골밀도측정기 1심 판결
국소마취제 리도카인·신속항원검사 등 소송 줄 이어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2023-09-13 06:01 송고 | 2023-09-13 09:04 최종수정
의료진이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News1
의료진이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News1

뇌파계 사용 합법 여부를 두고 13년간 이어진 양의계와 한의계의 지난한 싸움이 지난달 한의사들의 승리로 막을 내린 데 이어 오는 14일 '초음파 판결'을 앞두고 의료계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뇌와 관련된 질환을 진단하거나 뇌를 연구하는 데 쓰이는 뇌파계보다는 초음파 기기를 사용하는 한의사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여 양측모두 이번 판결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의료기기를 둘러싼 양의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이번 '초음파 판결'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초음파 사용 파기환송심을 하루 앞둔 13일엔 한의사 엑스선 골밀도측정기 사용 여부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다. 엑스선 골밀도측정기는 뼈의 미네랄 밀도를 측정해 골량에 따라 정상, 골감소증, 골다공증 등을 진단하는 데 사용되는 기기다.

한의사 A씨는 엑스선 골밀도측정기를 이용해 소아 환자의 성장판 검사를 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2019년 1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과 한홍구 부회장은 지난 1일 수원지방법원을 찾아 "엑스선 골밀도측정기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바란다"며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탄원서 지지서명에 참여한 한의사들만 1만5171명에 달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이자 부정맥 치료제로 보통 액제, 크림, 연고 등의 형태로 국소 마취에 사용하는 전문의약품이다.

문제가 된 건 한의사 B씨가 봉약침액 시술을 하면서 리도카인을 섞어 사용하면서다. B씨는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봉약침액과 마취제를 혼합해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B씨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한 B씨는 지난해 10월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오는 11월 10일 선고 공판이 열린다. 

한 병원에서 면회객이 면회에 앞서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하고 있다.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한 병원에서 면회객이 면회에 앞서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하고 있다.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오는 11월엔 한의사들이 질병관리청을 상대로 제기한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RAT) 사용에 대한 행정소송 1심 판결이 예정돼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환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대한한의사협회는 그동안 '한의사들도 신속항원검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 등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왔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질병관리청장은 한의사들의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 접속을 차단했고, 한의사 13명은 지난해 10월 질병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한의사들도 충분히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방 의사들만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그래도 최근 판결들을 보면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점차 허용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보조적으로 사용해 진단한 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에 의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거나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 발생 우려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초음파를 사용해 진료한 한의사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지난달 상고심이 진행된 한의사 뇌파계 사용 상고심에서도 법원은 한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영향을 미쳤다. 법조계는 이틀 뒤 열리는 초음파 파기환송심의 결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규탄 기자회견' 중 삭발을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뉴스1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규탄 기자회견' 중 삭발을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뉴스1

하지만 의사협회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어떤 결과든 끝까지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필수 협회장은 “의학적 용도의 진단 장비 사용 위험성은 반드시 정확한 진단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타 학문의 의료장비를 이용해 한의사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국민 보건위생상 많은 위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한의사 측은 사안별로 소송을 거쳐 한의사들의 영역을 확대하기보다는 더욱 전향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양의사와 한의사가 계속해서 갈등을 빚으며 가느니 하루빨리 정부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물꼬를 터주길 바란다”며 “한의사들이 의료기기 사용을 폭넓게 할 수 있다면 필수의료 등에서도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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