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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애 공연, 궁금하시죠? 많이 웃고 박수 칠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인터뷰] 국립극장 기획 무장애 음악극 '합★체' 연출 김지원
"불가능에 도전하는 주인공, 나와 닮았다고 생각"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2022-09-09 10:00 송고 | 2022-09-11 09:44 최종수정
 무장애 음악극 '합★체'의 김지원 연출가. (국립극장 제공)

"그냥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웃기는 부분이 있으면 마음껏 웃고, 박수도 치면서요. 그저 일반 공연을 보러 오시는 것처럼 와서 즐겼으면 좋겠어요."

오는 15~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하는 무장애(배리어 프리) 음악극 '합★체'의 김지원 연출가가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남긴 당부다.
'합★체'는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와 비장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작은 키가 고민인 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계도사'로부터 키가 크는 비법을 들은 뒤 특별 수련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작은 키'는 합과 체의 최대 고민이다.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키가 작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 연출은 원작을 읽는 순간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는 준비 중이던 다른 작품을 제쳐두고 '합★체' 연출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

"'불가능한 혁명'에 나서는 합, 체와 내가 닮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도사를 따라 황당무계한 훈련을 한다고 해서 키가 크지는 않겠지만 지푸라기를 잡는 심경으로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예술을 꿈꾸는 내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김지원 연출이 출연 배우 및 수어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모습. (국립극장 제공)
김지원 연출이 출연 배우 및 수어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모습. (국립극장 제공)

김 연출은 원작을 읽는 내내 '진짜 키가 컸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보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장애인 연극단체 '다빈나오'의 상임연출가로 20년 가까이 장애예술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 노력해왔던 터라 그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였다.
무장애 공연이란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김 연출은 해외사례를 찾아보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 노력했다. "당시 유럽도 무장애 공연에 대한 시스템이 갖춰지지는 않았지만, 수어 통역과 함께하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모습 자체가 신선했어요."  

유럽 작품들에서 느낀 점은 또 있다. 뚝심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 연출은 "무장애 공연 특성상 대사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런 게 당연한 거야'라고 일러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배우나 제작진이 그런 자세로 임하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았다"고 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익힌 경험은 10여편 이상의 무장애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원동력이 됐고, 마침내 국립극장이란 든든한 울타리의 도움도 받게됐다. 김 연출은 "무장애 공연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국립극장에서도 인정을 해줬다는 느낌"이라며 "이 분야에서 전문성 인정받는 느낌"이라며 밝게 웃었다.

'합★체'의 출연 배우 및 수어 배우들이 연습하는 모습. (국립극장 제공)
'합★체'의 출연 배우 및 수어 배우들이 연습하는 모습. (국립극장 제공)

그만큼 작품의 만듦새는 탄탄하다. '합★체'에는 무장애 공연 최초로 하나의 배역에 2명의 연기자가 등장한다. 배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른바 '수어 배우'가 있어서다. 김 연출은 "단순한 수어 통역에 그치지 않고, 배우의 연기를 수어로 전달하는 역할이라 '배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또한 음성 해설은 다른 무장애 공연처럼 장비를 통해 제공하지 않고 극 중 배역으로 풀어냈다. 농인 관객에게 작품을 더 세심하게 전달하고자 농인 당사자가 수어 대본도 번역했다. 작품에 나오는 아버지 역할도 실제 저신장 배우인 김범진이 맡았다. 오랜 기간 장애예술과 특수교육 등을 연구해온 전문가가 접근성 매니저로 합류, 작품 안팎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각, 청각 장애인들 연습 현장 모니터링도 이뤄지고 있다. 
  
전례 없는 화끈한 지원이 이어질수록 책임감도 커진다. 그는 "여전히 장애에 대한 낯선 시선이 있기에 일단 '잘 만들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크다"고 전했다.

'웰메이드'의 기준은 장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 연출은 "'몸이 불편하지만 배우로서 캐릭터를 잘 살리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관객이 받았으면 한다"며 "그래서 무대 위에서 박수받아 마땅하다는 인식을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합★체’에 출연하는 배우들. 왼쪽부터 김혜정, 이성민, 박정혁, 김범진. (국립극장 제공) 
‘합★체’에 출연하는 배우들. 왼쪽부터 김혜정, 이성민, 박정혁, 김범진. (국립극장 제공) 

김범진 배우에게도 강조한 내용이다. '저신장 아버지'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 자체에 몰입하도록 한 것이다. 김 연출은 "관객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당당하게 연기할 것을 주문했다"고 했다. 

그렇기에 많은 비장애인이 공연장을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애예술인의 공연을 자주 접하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편견이 바뀌고 해소됐으면 해서다.

바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장애인이 연기를 한다는 이유로 누가 봐도 웃긴 부분에서 웃지 못하는 관객들도 있어요. 웃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거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관객부터 선입견을 내던지면 좋겠어요. 많이 웃을 준비와 박수를 칠 마음만 챙겨 와주시면 좋겠어요."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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