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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우리 지금 만나" '육사오'가 던진 유쾌한 제안

로또를 두고 남북이 협상을?… 영화 '육사오' 리뷰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2022-09-03 09:00 송고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영화 육사오(6/45) 포스터. 
영화 육사오(6/45) 포스터. 

"협상은 원래 붙었다 깨졌다 하는 거야. 다시 끈을 이어봐야지!"

남북 병사들이 로또 1등 당첨금을 두고 협상을 벌이는 기막힌 상황, 영화 '육사오(6/45)'에서 남측 강 대위(음문석 분)가 한 말이다.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 분)가 우연히 손에 넣은 1등 당첨 '로또'는 순간의 실수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GP 상급병사 용호(이이경 분)에 손에 넘어가고, 남북 병사는 당첨금 57억원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협상과 사투를 벌인다. 실제론 일어나기 어려운, 그야말로 '영화 같은' 상황이지만 남북의 냉혹한 현실에 유쾌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영화 육사오(6/45) 스틸컷. 남한의 병사들.  
영화 육사오(6/45) 스틸컷. 남한의 병사들.  

57억의 운명이 걸린 JSA 회담?

"45개 번호 중에 6개를 맞추면 거금을 준다며 남조선 인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극악무도한 자본주의 착취기술이디요."

대남 해킹 전문인 북한 상급병사 방철진(김민호 분)은 '로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육사오'는 45개 숫자 중 6개를 맞춰야 한다는 로또의 북한식 표현이다. 이런 '극악무도'한 착취기술인 로또는 아이러니하게도 남북 병사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계기가 된다. 하필이면 공동급수구역 'JSA'(Joint Supply Area)란 가상에 공간에 모인 남북 병사들의 협상은 꽤 진지하다. '돈'이란 노골적 목표가 'JSA 회담'을 더 솔직하고 코믹하게 만든다.

회담을 먼저 주도하는 건 남쪽이다. 일단 로또는 한국에서 당첨금을 줘야 하는데, 세금의 개념조차 모르는 북측이 더 많이 갖겠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에 로또를 이미 '쥐고 있는' 북측은 그리 나온다면 당장 불태워 버리겠다며 '벼랑 끝 전술'을 펼친다. 남북 대표는 로또를 양쪽으로 잡아당기며 찢어지기 직전까지 대치하는데, 결국 둘 다 손을 놓고 로또를 지켜낸다.
웃자고 만든 영화라지만 실제 남북의 앞선 회담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마주 앉고, 서로 협상안을 제시하고, 때론 '벼랑 끝 전술'까지 펼치며 상대를 압박하는 게 그렇다. 협상 판을 깨더라도 '목표(로또)'까진 훼손하지 않은 채 아슬아슬 판을 이어가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물론 현실 회담은 이보다 더 쉽지 않지만.

영화 육사오(6/45) 스틸컷. 북한의 병사들.   
영화 육사오(6/45) 스틸컷. 북한의 병사들.   

남북 병사가 바뀐다면?

영화에선 남한 보급관(류승수 분)이 중재안을 제시한다. 당첨금은 남북이 반반씩 나누고 당첨금을 찾을 때까지 남북 병사 1명씩 바꿔 근무하자는 것이다.

남북 병사가 상대 측으로 넘어가면서 '판타지'는 시작된다. 북한 병사 용호는 오해받지 않기 위해 '혼바비언' '문송' '이생망' 같은 남한 신조어를 바짝 공부해가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행동을 숨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1호'의 신년사를 달달 외워간 남한 병사 천우는 북한 병사들이 맨몸으로 돌덩이를 깨대는 상황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지만 남북 병사는 각각 의외의 활약을 펼치며 반전을 만들어낸다. 용호는 자신들이 설치(?)한 목함지뢰를 제거해 동료의 목숨을 구하고, 축산학과 출신의 천우는 가축 대량 증식에 성공해 평양 간부학교로 차출될 뻔한다.

다소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측면이 없진 않지만 70여년을 서로 남처럼 지내온 남북이 극명히 대비되는 모습은 언제나 웃음을 유발하는 듯하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남북 병사들은 그 '다름' 속에서 정을 쌓으며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간다. 황당하지만 상대 측에 들어간 이들의 기적적(?) 활약을 왠지 모르게 응원하게 된 이유일 것 같다.

통일을 기대하며 헤어지는 남북 병사들

영화에서 남북 병사들은 우여곡절 끝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헤어진다. 어느새 잔뜩 정이 든 남북 병사들은 "통일되면 만나자"는 약속까지 한다. 그 말이 어쩐지 공허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릴 무렵 한 북한 병사는 "통일이 별거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게 통일이지"라며 여운을 남긴다.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엔 필연적으로 통일이란 판타지가 숨어 있는 듯하다. 통일은 아직 '보고 싶을 때 보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되지 못했으니.  

영화 육사오(6/45) 스틸컷. 남한 병사 천우(고경표 분).
영화 육사오(6/45) 스틸컷. 남한 병사 천우(고경표 분).

남북은 싸우고 다시 마주 앉길 반복한다. 로또 혹은 '육사오'를 두고 한 회담은 이렇게나 유쾌하게 풀리는데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영화 속 남한 병사는 "협상은 원래 붙었다 깨졌다 하는 것"이라며 장기하의 '우리 지금 만나'를 확성기로 틀곤 북한 병사들을 불러냈다. 남북이 실제로도 다시 '붙는' 날이 올 수 있을지, 괜스레 기대하게 된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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