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중동·우크라 지원 요구, 압박은 같지만 성격 다르다

美, '자신의 전쟁'인 중동 전쟁과 우크라전 관심도 달라
'호르무즈 파병' 韓 압박 강화 위해 우크라전도 끌어들인 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8.22.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김기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향해 '호르무즈 파병'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시사하는 제스처를 동시에 취했다. 한국에게 '동맹의 기여'를 보여 달라는 전방위적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두 사안의 무게감엔 차이가 느껴진다는 분석도 7일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파병 요구는 미국이 직접 수행 중인 전쟁에 대한 지원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을 압박하는 차원이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요구는 진짜 무기보다는 종전 협상의 원활한 타결을 위해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행동을 취하라는 요구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전쟁' 중동전…퇴로 확보에 필요한 것은 동맹의 동조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4일(현지시간) '이란 파병과 관련해 한국과 논의가 진행 중이냐'는 뉴스1의 질의에 "한국은 중동 석유의 가장 큰 수입국 중 하나"라며 "우리는 한국이 이 지역에 자산을 배치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개전 초기인 지난 3월부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응해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에 군함 파견을 요청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의 동참도 거듭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구체적인 입장을 내지 않으면서 개입을 피해 왔고, 독일 등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은 직접적으로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종전 협상 개시에 따라 미국의 '동참' 압박도 줄어드는 듯했으나, 이란과 미국이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고 다시 무력 공방을 벌이면서 최근 들어 파병 요구가 다시 거세지는 모양새다.

조기 종전을 장담했으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낮아진 지지율 속에서 11월 중간선거(상·하원 선거)를 맞이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조급해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장악력을 뺏긴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동맹의 파병을 통해 전쟁의 명분을 확보해 이란에게 종전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에도 폭스뉴스에 출연해 "우리는 나토와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지만,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한국도 그 예시"라며 주요 동맹에게 노골적 불만을 쏟아냈다.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료사진) 2025.8.23 ⓒ AFP=뉴스1

백악관 고위 관계자가 한국의 중동 자산 파견을 요구하던 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에 '트럼프가 어떻게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패트리엇 미사일을 만들도록 도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WP) 칼럼을 공유했다.

저자인 마크 티센 칼럼니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자국에서 개발한 M-SAM Ⅱ(천궁-Ⅱ) 요격 미사일(일명 '한국산 패트리엇')의 비축분을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문 비서관을 지낸 티센은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으로, '친 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에도 자주 출연한다.

그는 한국이 전쟁 중인 국가라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무기 판매를 하지 않으면서 지난 6월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천궁-Ⅱ를 공급한 것이 "터무니없다"(outrageous)라고 비난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중 타격을 당한 UAE 역시 '전쟁 국가'인데 UAE에만 무기를 공급하고 우크라이나에는 공급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논리다.

그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칼럼을 공유한 것 자체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해석된 측면이 있다.

불가능한 韓의 우크라 무기 직접 지원…미국도 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는 우크라전 발발 이후 수시로 제기됐음에도 성사되지 않은 방안이다. 한국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유지, 국가안보를 이유로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방위사업법 시행령 제68조 제7항은 △국제평화·안전유지 및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거나 전쟁·테러 등 긴급한 국제 정세 변화가 있을 경우 △방산물자 및 국방과학기술 수출로 인해 외교적 마찰이 예상되는 경우 △외국과의 기술도입협정 또는 전략물자 수출통제와 관련해 정부 간에 체결된 협정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의 상황에서 방위사업청장이 방산물자 수출을 제한할 권한을 규정한다. 우크라이나는 제한 상황 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대외무역법에 따르면 무기 등 전략물자 수출은 평화적 목적에 사용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UAE에 제공된 천궁은 중동 전쟁 발발 전인 2022년 1월 체결된 천궁-Ⅱ 10개 포대 도입 계약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미국 역시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우회 지원'이라는 방안이 도출된 것도 그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자신들이 보유한 155㎜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한국으로부터 155㎜ 포탄 10만 발을 구매했다. 우크라 지원에 따른 포탄 부족분을 한국산으로 채우면서 3자 간 간접·우회 지원 방식을 만든 셈이다. 2023년에는 한국이 미국에 155㎜ 포탄 50만 발을 대여 방식으로 제공하기로 한 사실도 알려졌다.

이 같은 전례가 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한국의 대(對) 우크라 무기 지원을 시사하는 제스처를 취한 것은 한국이 주요 현안에서 '미국 편'을 들라는 메시지를 부각하는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도 우크라에 대한 무기 지원에 열을 올리며 전황에 영향을 미치려 하기보다는,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 타결에 주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5~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연이어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각각 만나기도 했다.

정부도 이 같은 판단하에 우크라이나 관련 사안보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더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문제에 있어 미국과 이견과 갈등을 좁힌다면, 다른 사안에서도 한국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goldenseagul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