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조이려는 트럼프, '환거래은행' 맹점에 발목 잡혔다
WSJ "제재에도 수십억 달러가 미국 은행 통해 유출"
미국 은행과 환은 관계 맺은 해외 파트너 통해 계좌 접근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을 글로벌 금융망에서 고립시키기 위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지만 해외 파트너를 통해 미국 은행 계좌에 접근하는 '환거래은행(correspondent banking) 시스템' 때문에 제재 집행에 난제를 맞고 있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연계 금융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미국의 제재에도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란 자금이 미국 은행의 청산 계좌(clearing accounts)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이란은 미국 은행들과 환거래은행(환은) 관계를 맺고 있는 해외 파트너사들을 통해 이 계좌들에 접근하는데,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연결하는 이 제도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미 재무부는 최근 미국 내 환은 계좌를 통해 이란과 달러 거래를 처리하는 외국 은행들에 경고장을 날리는 한편, 미국 은행들에도 이란 연계 거래에 대한 감시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재무부는 지난달 28일 이란의 미국 금융망 접근을 돕고 있는 국영 이집트 은행의 아랍에미리트(UAE) 지점을 지목하고 차단 조치에 착수했다. 당국에 따르면 이집트 국영 방크 미스르 UAE 지점은 미국 내 환은 계좌를 이용해 이란의 그림자 금융 네트워크와 연계된 기업들의 자금 최대 18억 달러를 송금 처리했다. 이집트 외무부와 은행 측은 미 당국과 소통하며 규제를 준수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 조치는 중동 내 적대 행위를 종식하고 이란을 재정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신규 '경제적 고립 작전'의 일환이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리더들에게 이란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을 경우 미 달러화 중심의 금융 시스템에서 완전히 퇴출당하는 2차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미국 대출 기관들이 환은 관계를 더욱 밀착 감시하도록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미국의 노력이 제한적인 효과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무부는 지난해 미국 은행을 거쳐 간 이란 자금이 약 9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으며, 전문가들은 미국 은행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 금액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워싱턴에 위치한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일레인 데젠스키 전 국토안보부 고위 관리는 "그림자 금융 네트워크를 탐지하기란 극도로 어렵지만 이란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 및 환은 은행들의 직접적인 책임을 강조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의심스러운 거래에 대해 법적으로 의무화된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제재 집행을 위해 재무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비공개 회동에서 미국 금융기관들에 이란 자금 흐름을 더욱 철저히 모니터링할 것을 독려해 왔으며, 재무부 고위 관리 진 랭은 "제재 준수는 선택사항이 아니며 위반 시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달러화 기반의 환은 시스템은 전 세계 모든 달러 거래를 미국 은행이 최종 청산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워싱턴이 이를 통해 국제 자금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제재 대상의 자금을 차단할 수 있는 핵심 무기가 된다. 이란은 이러한 감시를 피하려 위안화나 가상화폐를 선호하지만, 무역 거래와 군용 부품 구매 등을 위해 여전히 달러가 필요하다.
WSJ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이란의 한 엔지니어링 기업은 무기와 드론에 쓰이는 전자부품 15만 개를 중국 공급업체로부터 구매하며 65만 달러를 뉴욕의 미국계 결제 기관을 통해 송금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재 대상인 이란 테자라트 은행을 거쳐야 하는 이 거래는 미국 금융망을 직접 통과할 수 없어, 미 은행과 환은 관계가 있는 외국 은행 계좌를 가진 유령회사를 거치는 방식을 취했다.
환은 시스템은 실물 현금 이동 없이 국경 간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글로벌 금융의 필수 축이자, 미국 은행들에게는 수익 창출원이다. 그러나 워싱턴은 이 시스템이 이란의 자금 세탁에 악용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규제를 너무 느슨하게 하면 자금이 유출되고, 너무 조이면 각국이 달러 대안을 찾게 되어 달러 패권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미 재무부는 방크 미스르 UAE 지점에 대해 전면적인 2차 제재 대신 30일의 유예 기간을 두고 미국 환은 계좌 접근만 제한하는 신중한 조치를 택했다. 이는 외국 은행을 완전히 파산시키거나 미국 대출 기관들의 환은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과도한 충격을 피하기 위한 타협점으로 풀이된다.
ky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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