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단 낫다"…걸프국, 이란 호르무즈 통제 '뉴노멀' 수용 기류

WSJ "2월 말 이후 에너지·인프라 공격 172건 이상"
원유 수송량 '10분의1' 급감에 경제적 피해도 커져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항의 원유 저장탱크. 2026.5.6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들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현실'(new normal)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추가 군사행동으로 이란의 영향력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일정 수준의 이란 통제를 인정하더라도 호르무즈의 안정적 통항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걸프 지역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걸프 국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란의 영향력 확대 자체보다 전쟁 재개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다시 이란을 대규모로 공격할 경우 이란 또는 친이란 세력이 사우디와 UAE, 쿠웨이트 등 걸프 국가들의 석유 시설과 항만, 선박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단 이유에서다.

WSJ는 미·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한 지난 2월 말 이후 걸프 지역의 에너지·인프라 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172건 이상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전쟁 발발과 함께 이란이 장악한 호르무즈해협 문제 또한 걸프국가들을 압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호르무즈해협은 이란 전쟁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20%를 책임졌던 핵심 교역로였다. 그러나 전쟁 전 하루 약 2000만 배럴에 달했던 호르무즈해협의 원유 수송량은 최근 약 220만 배럴 수준까지 줄었다.

이처럼 세계 원유 공급의 핵심 통로가 사실상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걸프 산유국들도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우디와 UAE는 호르무즈 우회 송유관과 별도의 수출항 확충 등을 추진해 왔으나, 이번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런 우회 인프라 역시 이란이나 친이란 세력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한계가 드러났다.

결국 걸프 국가들로선 이란과 최소한의 합의를 통해 호르무즈 통항을 안정시키는 게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이란은 현재 오만이 중재하는 협상에서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호르무즈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걸프 국가들이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일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핵 문제와 이란의 역내 무장세력 지원 문제 등은 그대로 남는다.

게다가 호르무즈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학습효과'를 이란에 줄 경우 향후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이란이 이 카드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아울러 이란은 해협 통항 재개 조건 가운데 하나로 주변국 주둔 미군 철수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으로선 지난 수십년간 주도해 온 걸프 지역 안보 질서 자체를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애틀랜틱카운슬 글로벌에너지센터의 엘런 월드 선임연구원은 "5개월간 전쟁을 겪은 걸프 국가들이 해협을 통한 해상 운송을 늘릴 방안을 서두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일시적이나마 입·출항 선박 통제권을 이란에 넘길 경우 걸프 국가들의 수출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란의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 근본적인 위협을 제거하진 못한다"고 지적했다.

ys417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