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방어 개입한 美 "원화 변동성 주시"…한미 공동개입 가능성은
베선트, 엔화 매수 배경 설명하며 원화까지 언급…한일 대미투자 연결 해석도
타깃은 美금융시장 흔들 수 있는 엔화…한일 통화 절상시 美기업에 도움도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미·일 협조 개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국 원화의 과도한 약세를 언급, 엔화 매수를 넘어 원화 가치 회복을 위한 개입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로선 베선트 장관의 언급은 이례적인 엔화 매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엔화 약세가 원화나 중국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 불안'과 연결된다는 점을 부각하는 취지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미국이 직접 행동에 나선 데에는 일본을 돕는다는 차원보다는 엔화 약세를 방치할 경우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인 일본발 금융시장 불안이 미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재무장관의 공개적인 원화 가치 회복 기대 자체로, 원화 가치 하락 대응에 고심하는 한국 외환당국이나 금융정책당국의 정책적 공간에 보다 여유를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일각에서는 엔화·원화 가치가 상승할 경우 무역 협정에서 합의된 한일 양국의 대규모 대미 투자 실행에 따른 부담을 줄어들 수 있다는 점까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고려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4일(현지시간)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통화 약세 압력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우려해 엔화 매수 협조 개입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엔화가 크게 약세를 보이면 다른 통화들도 이를 따라갈 수 있다"며 한국 원화의 높은 변동성과 중국 위안화 저평가 문제를 언급했다.
앞서 CNBC 인터뷰에서도 그는 "엔화가 크게 약세를 보이면 다른 통화들도 이를 따라갈 것"이라며 "한국 원화에서 과도한 변동성을 목격했고, 많은 사람이 중국 위안화가 저평가돼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이어 "무역 흐름, 일본 경제의 규모, 글로벌 저축 시장(global savings market)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엔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선트 장관이 언급한 "글로벌 저축 시장에서 일본의 역할"은 일본이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국채 보유국이라는 점과 관련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AFP는 전했다.
일본이 단독으로 엔화 방어에 나서기 위해 보유한 미 국채를 대규모로 매각할 경우, 미 국채 가격 하락과 장기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미국 내 우려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1조1000억 달러가 넘는 미국 국채를 보유한 최대 해외 보유국이다. 일본이 엔화 방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달러 자산을 매각할 경우 미국 금융시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입장에서는 엔화 급락을 방치하기보다 선제적으로 관리할 유인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위험 요인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미국 주식과 채권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해 온 글로벌 자금이 엔화 가치 급락에 따른 손실 우려로 포지션을 정리할 경우, 주식시장 급락과 신흥국 자금 이탈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다.
존 브롬헤드 모디스 애널리틱스 이코노미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미국 입장에서 엔화 지원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은 보험"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이번 엔화 매수 협조개입이 미국 금융시장 방어를 위한 엔화 가치 회복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강하지만, 이외에도 무역이나 대미 투자 측면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도 걸려 있다.
엔화 약세가 장기화하면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미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 지난해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약 1460억 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했고, 일본에 약 820억 달러를 수출했다.
또 엔화 약세는 일본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에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은 2025년 무역 협정에 따라 미국 내 약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데, 엔화 가치 하락은 기업들의 투자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이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 수출시 미국 기업과의 가격 경쟁이나 한국이 무역 협정에서 약속한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이행 과정에서 원화 가치의 절상은 변수가 된다.
베선트 장관의 원화 언급이 단순히 엔화 매수 개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이해관계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 원화 절상시 한일 양국을 향한 대미투자 이행 압력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엔화 매수 개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아시아 금융 안정'을 강조하는 데에는 외교적·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재무부는 그동안 다른 국가의 환율 개입을 감시하고 비판해 왔던 만큼, 미국이 특정 통화 가치 방어에 직접 나서는 모습은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개입을 역내 금융 안정과 글로벌 시장 위험 관리 차원의 대응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선트 장관이 한국 원화와 중국 위안화를 사례로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조치가 일본만을 위한 엔화 방어가 아니라 아시아 금융 질서 안정에 기여하기 위한 대응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현재의 엔화 약세 상황은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가 있다. 당시에는 태국 바트화 폭락 이후 외환보유액 부족과 국가 부도 위기가 주변국으로 확산했지만, 현재는 엔화 약세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주요 문제로 꼽힌다.
미국의 또 다른 목표는 일본의 경제 정책 방향 전환이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 3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다카이치 정권은 아베노믹스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약 15년에 걸친 경기 부양책으로 일본 경제는 지속 가능하고 강력한 기반을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장기간의 금융완화와 재정 확대가 엔화 약세의 배경이 됐다는 판단 아래, 일본이 초저금리 정책에서 벗어나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적극 재정과 금융 완화를 중단하라는 의미와 다름없다"며 "미국은 외환시장 개입에는 일본을 도왔지만, 경제 펀더멘털(기초 여건)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베선트 장관은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과 비공식 회담을 가졌을 당시 "계속 정책금리를 올리라고 말해왔는데 왜 올리지 않느냐"며 강한 어조로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 노선에 대해 금융시장에서는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졌고, 장기금리 상승이 이어졌다.
신규 발행 10년물 일본 국채 유통금리는 다카이치 정권 출범 전 약 1.6% 수준이었지만, 7월에는 2.9%대로 올라 30년 만의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은 일본의 금리 상승이 미국으로 번져 미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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