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만'과 시진핑의 '북한'…숨가쁜 동북아[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지난 2016년 12월 2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과 약 10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 대통령 또는 당선인이 대만 최고 지도자와 직접 통화한 것은 1979년 미·대만 단교 이후 37년 만의 일이었다. 이 통화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둘러싼 기존 외교 질서에 균열을 예고한 신호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 갈등을 벌였다. 또 전임 행정부들이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무기 판매의 규모와 시기를 조정해온 것과 달리, 무기 수출 절차를 보다 정례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했다. 임기 중 승인된 대만 대상 무기 판매 규모는 약 183억 달러(약 27조 원)에 달했다.
'대만여행법' 제정을 통해 고위급 교류를 제도화했고, 사이버·에너지 협력도 확대했다. 미 해군 함정의 대만해협 통과를 공개하며 군사적 신호도 강화했다. 이 시기 대만은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2기 대만 정책은 이전과는 다른 흐름을 보인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전제로 '전략적 명확성'을 강화했다면, 트럼프 2기는 다시 미국 우선주의 기반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핵심은 가치나 동맹이 아니라 거래다. 대만 역시 이러한 틀 속에서 다뤄지는 하나의 '옵션'에 불과하다.
미국 행정부의 시선도 달라졌다. 트럼프와 참모들은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잠식했다고 비판하며 애리조나 투자 확대를 요구했다. 동시에 대만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이례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라며 방위비 분담 압박을 강화했다. 이른바 '무임승차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최근 9년 만에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그는 방중 일정을 한 차례 조정하며 이란 전쟁 상황에 대응했지만, 전쟁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회담은 외형적으로는 성대하게 진행됐지만, 이란 문제와 대만 문제 등 핵심 현안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란 전쟁 종식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있었으나, 중국의 입장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 내 관세 정책을 둘러싼 법적 제약까지 겹치며, 트럼프가 활용할 수 있는 압박 수단도 좁아진 상태였다.
오히려 주도권을 쥔 것은 시진핑이었다. 그는 "대만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양국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긴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거론하며 미·중 충돌의 구조적 위험을 재차 강조했다. 대만을 미·중 관계의 핵심 변수로 전면에 올려놓은 셈이다. 트럼프는 명확한 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이번 회담의 가시적 성과로 제시한 것은 연간 17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 구매와 보잉 항공기 200대 도입 합의 정도였다. 기존 대두 2500만 톤 구매까지 포함하면 연간 270억 달러 수준이지만, 무역전쟁 이전과 비교하면 유의미한 확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시 주석에게 유화적 제스처를 보냈음에도 손에 쥔 계산서가 마땅치 않자, 트럼프는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전용기 안에서 대만 대상 140억 달러 규모 무기 판매를 두고 "매우 좋은 협상 카드"라고 말했다. 방공 시스템 승인 문제에 대해서도 "현재 보류 중이며 모든 것은 중국에 달려 있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미 국방부 엘브리지 콜비 정책차관의 방중 계획 승인을 보류했다. 대만 무기 수출 문제가 정리되기 전까지 고위급 안보 대화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중국이 압박 기어를 높이자 트럼프는 곧바로 한층 더 강력한 대응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조만간 라이칭더 대만 총통과 직접 통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대만 정상과 직접 소통하는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중국을 격분시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의 방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의 방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국 방문 그리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방한에 이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외교 일정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성사될 경우 2019년 이후 7년 만의 평양 방문이다.
시진핑의 방북 가능성은 여러 외교적 계산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다카이치 총리 취임 이후 가속화되는 평화헌법 개정 추진 및 군사력 강화에 맞서 북·중 안보 연대를 과시하려는 의도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북·러가 밀착하는 흐름을 견제하고, 동북아 안보의 중심축은 중·북·러이며, 그 중심은 중국임을 과시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북·미 관계의 중재자 자리를 중국이 선점하려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앞으로 미·중 무역 협상과 대만 문제에서 트럼프를 압박할 강력한 외교 카드를 쥐겠다는 계산이다. 동북아를 무대로 한 강대국들의 거대한 사투가 그 어느 때보다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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