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CSIS 빅터 차 "北비핵화 당장 불가…핵 가진 북한과 '차가운 평화' 필요"

"대북정책, 비핵화에만 매달려선 안돼…군축·위기관리 논의해야"
"美 행정부 인사들 北언급 꺼려…트럼프가 판단할 사안이라 인식"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겸 한국석좌가 2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빅터 차 석좌는 북한의 비핵화는 단시일 내 달성이 어려운 목표로, 미국이 북한과의 '차가운 평화'(cold peace)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26.04.28.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미국 워싱턴DC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28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가 단시일 내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며 북한과의 '차가운 평화'(cold peace) 전략을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 석좌는 이날 워싱턴DC CSIS 사무실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 대상 간담회에서 1990년대 중반 '북핵 위기' 이후 30여년 간 이어온 미국 역대 정부의 북한 비핵화 전략에 대해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이같이 제안했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 정책은 CVID, 즉 완전(complete)하고, 검증가능(verifiabel)하며, 불가역적인(Irreversible), 비핵화(dismantlement, 해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돼 왔다"면서 "이는 어떠한 대북 협상에 임하든 미국의 일관된 정책 기조였다"라고 짚었다.

이어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가 이루어지면 무엇이든 가능하나, 비핵화가 없다면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해왔고, 그 과정에서 활용된 수단은 주로 '제재'였다"면서 "목표는 비핵화이고, 수단은 제재인 셈인데, 이는 실패한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말했다.

차 석좌는 "만약 실패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1994년의 제네바 합의나 6자회담(2003~2009년)의 핵동결, 불능, 해체 조치 등이 이행되지 않았을리가 없느냐"면서 "모든 약속 이행은 신고 단계에서 좌절되곤 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핵화는 중요하고, 항상 추구해야 할 목표"라면서도 "현실적으로 협상을 비핵화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차 석좌는 "현실적으로 북한은 5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추가로 50개를 만들 핵물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서 "비핵화가 단기간 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부연했다.

그는 "우리가 해 온 것이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인식이 워싱턴DC에 많다"며 "다만 많은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라고 언급했다.

앞서 차 석좌는 최근 게재된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을 통해서도 '차가운 평화'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이 전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바로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전략적 논리를 북한의 핵무기 해제라는 목표에서, 해당 무기들로부터 미국을 더욱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즉각적인 목표들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차 석좌는 차가운 평화의 4가지 핵심 요소로 △미 본토 보호 △미국이 상대해야 하는 적대국 수 감소 △아시아에서 핵 선제사용 위험 축소 △북러 관계 약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포화시킬 수 있는 핵탄두와 운반수단을 축적하고 있다"며 "비핵화에만 집중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이 북한이 미사일 전력을 계속 늘리는 것은 미 본토 방어에 좋은 공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거리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배치 제한, 탄두 탑재량 제한, 추가 핵분열 물질 생산 중단, 핵실험 금지 같은 일종의 군축 합의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미국이 현재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여러 적대국과 동시에 대치하고 있다며 "국가안보 관점에서 보면 적대국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이 가운데 미국이 현재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충돌하고 있지 않은 대상은 북한"이라며 "차가운 평화의 논리 중 하나는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적대국 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지역에서 점증하는 핵 위협과 관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자국이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천명했고, 그 직후 북한 또한 공식적으로 핵무기 선제 사용 교리를 채택했다고 발표했다"면서 "중국의 경우 핵무기 선제 불사용 교리를 고수한다고 하나 핵무기 보유량을 최소 1000기 수준으로 급격히 증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나 북한, 중국 같은 국가들이 재래식 군사 충돌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든, 혹은 잠재적인 재래식 군사 공격을 선제 차단하기 위해서든, 핵무기를 먼저 사용할 잠재적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라면서 "북한은 이른바 '참수 작전'과 같은 공격에 대비해 핵 타격 명령 권한을 지휘 체계의 하위 단계까지 사전에 위임해 둔 상태이기도 하다"라고 짚었다.

그는 "우리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어떠한 메커니즘도 갖추고 있지 않다"면서 "우리가 관리 메커니즘을 구축하려 하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행위라고 즉각적으로 해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과 핵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에게는 20분 정도밖에 없을 수 있다"며 "뉴욕 채널이나 판문점 채널은 그런 상황에서 유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북러 밀착에 대해서는 "매우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은 현재 러시아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있고, 그것이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러시아가 북한에 고급 군사기술을 제공한다면 이는 미 본토 안보 위협과도 관련된다"며 "북한이 러시아가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할 경우 한반도에서 오판 가능성도 커진다"고 우려했다.

차 석좌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 차이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은 북한의 행동에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중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원하지 않지만, 러시아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이날 간담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들이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언급 자체를 꺼린다고 전했다.

차 석좌는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이란, 우크라이나, 러시아, 중국에 대해서는 기꺼이 이야기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서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 대통령이 담당 데스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 석좌는 "그들은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북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보수 진영의 반응에 대해서도 "미국의 보수 인사 중 이 글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했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이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제재를 항상 강조하던 사람들도 이 글을 읽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며 "진보 진영은 당연히 이런 접근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차 석좌는 다만 차가운 평화 전략이 동맹 약화나 대북 양보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전략은 동맹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미, 미일, 한미일 미사일 방어와 억지력을 훨씬 강화하는 프로그램과 결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1961년 뉴욕 태생인 차 석좌는 조지타운대학교 교수로도 재직 중이며,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담당 국장(2004~2007)을 지냈다.

보수성향 인사로 분류되며, 도널드 트럼프 1기 정권 때 주한미대사로 내정(나중에 철회)되기도 했다.

차 석좌는 "나는 대북 강경파로 알려져 있지만 스스로는 실용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그 길을 계속 따라가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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