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철수' 중동 안보지형 변곡점…美신뢰 상실에 '위험한 진공'

'에너지 생명줄' 쥐는 이란…美억지력에 대한 우방들 신뢰도 약화
'미군기지의 이스라엘 이전설' 주목…걸프국, 중·러 밀착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마크웨인 멀린 국토부안보장관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6.3.24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이란 전쟁은 단순히 국지적 무력 충돌을 넘어, 수십 년간 유지된 중동 질서와 미국의 대(對)중동 전략을 흔드는 변곡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우리는 (이란에서) 곧 떠날 것"이라며 철수가 2~3주 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란과의 합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없이도 떠날 수 있다는 등 일방적인 종전 선언의 군불을 땠다.

"해협은 자동 열릴 것"…트럼프의 낙관론

이날 앞서 언론 인터뷰에선 "(전쟁이 끝나면 호르무즈) 해협은 자동으로 열릴 것"이라며 "나는 그 나라(이란)를 궤멸시켰고 그들에겐 힘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니 해협을 이용하는 국가들이 직접 가서 열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어 "내 유일한 목적은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전쟁 승리 기준을 제시했다.

트럼프의 예상처럼 미국의 공격이 멈춘다면, 해협은 다시 개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은 선박을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통행료를 징수하거나 미국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식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이전과는 달리 통제하려 할 수 있다.

또한 해협이 닫힌 상태로 물러난다는 것은, 이란이 가한 경제적 고통이 미국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는 데 성공했음을 공식화하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억지력에 대한 동맹과 우방국들의 신뢰도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 미국의 대중동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안보 외주화'와 이스라엘 중심의 재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동 전략 핵심은 이란에 대한 고강도 압박과 고립, 그리고 아브라함 협정을 통한 '친미 동맹 확장'이다. 트럼프 1기 때 마련된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간 국교 정상화를 통해 중동 내 반(反)이란 전선을 공고히 하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동맹국들에 안보 책임을 분산시키고, 직접적인 중동 군사 개입을 축소하려 한다. 하지만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일련의 중동 사태로 미국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아브라함 협정을 이미 체결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스라엘 군사 행동에 대해 훨씬 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자국 내 여론을 고려한 결과다.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중재하던 이스라엘과의 정상화 협상을 공식 중단했다.

1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03.01 ⓒ 로이터=뉴스1

걸프국들은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과도하거나 무모하다고 판단하며, 통제되지 않는 이스라엘이 지역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다만, 이란의 미사일·드론 위협 대응 차원에서 이스라엘과의 비공개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도 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스라엘 영토 내 미군 기지 설치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는 이스라엘 매체의 최근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은 방안은 이전부터 논의됐다. 미국 유대인 국가안보연구소(JINSA)의 요니 토니 연구원은 지난해 7월 글에서 △이란 단거리 미사일에 대한 중동 내 미군 기지의 취약성 △카타르 등 주둔국의 작전 허가권 행사에 따른 미국의 전략적 효용 감소 등을 언급하며 미군 기지가 이스라엘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인 3월 중반엔 워싱턴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의 대니얼 드페트리스 국방분석국장이 언론 기고문에서 중동 미군 기지는 미국에 전략적 부담이 되고 있다며 종전 후 철수·축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는 트럼프와 같은 비개입주의 안보 정책을 지향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비(非)나토 동맹 중 하나지만 이스라엘엔 미군 기지가 없다. 이는 이스라엘의 강한 미사일 방어체계와 정예 공군도 이유지만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측면도 있다.

과거 냉전 시대부터 미국은 중동 내 에너지 자원 확보와 소련 견제를 위해 사우디, 요르단,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과의 동맹이 필수적이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된 민감성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에 미군 기지를 두면 아랍 세계 반발이 커질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동 내 흩어진 자원을 이스라엘로 집중시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타격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동 전체를 관리하는 데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라고 압박하면, 걸프 국가들은 미국산 최첨단 무기를 더 많이 사야 할 것이란 계산이 깔렸을 수도 있다.

미국의 이 같은 전략 변경이 가능하게 된 것은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원유 수입량 중 중동산 비중이 5~10% 수준으로 낮아진 덕분이다. 과거 석유 파동 이후 미국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약 30~40% 수준에 달했다. 미국 정유 산업과 전략비축유(SPR) 정책도 중동 의존을 전제로 운영됐다.

아랍 우방을 중·러의 품으로 떠미는 '부메랑'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6일 (현지시간) 베이징에서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 파이살 빈 파한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과 산책을 하고 있다. 2023.06.06 ⓒ AFP=뉴스1

하지만 이 같은 노선 변경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 극대화에 기여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있다.

사우디와 UAE 등 걸프국들은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철수하고, 미군의 공중 방어 시스템과 병력이 이스라엘로 옮겨갈 경우, 자신들이 이란의 보복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미국의 안보 보장이 약화했다고 판단한 아랍 국가들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중국·러시아와 새로운 안보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

이스라엘을 '최우선 파트너'로 공식화하는 것으로 해석돼 오랜 아랍 우방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크게 고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이 아랍 우방들을 중·러의 품으로 떠미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걸프국들이 이란과 밀착해 타협점을 찾으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트럼프의 '효율적 중동 관리' 전략이 오랜 아랍 우방들을 적대 진영의 품으로 떠미는 지정학적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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