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통역 도맡았던 美이연향씨…"둘 다 굉장히 솔직"

싱가포르 회담 회고하며 "김정은, 국제무대 데뷔 무대에서 상당히 잘 대처"
지난달 美국무부 국장직 은퇴…"외교통역은 잘하면 당연, 실수 치명적"

이연향 전 국무부 언어서비스국장(워싱턴 특파원단) ⓒ 뉴스1 류정민 특파원

(워싱턴=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의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 모두 통역을 맡았던 이연향 전 미국 국무부 언어서비스국장이 26일(현지시간) "두 정상 모두 굉장히 솔직했다"라고 당시 회담 분위기를 회고했다.

이 전 국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분위기가 좋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계가 좋았다고 말한 것은 맞는 이야기 같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국장은 2018년 싱가포르, 2019년 베트남 하노이, 같은 해 판문점에서 열린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 모두에 미국 측 통역으로 참여했다. 당시 두 정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전한 인물로 한국 국민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그는 "다만 딜(합의)이 되고 안 되고는 복합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라면서 "두 사람 모두 진정성 있게 대화를 해보려는 노력도 있었고 솔직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을 회고하며 "김정은 위원장이 사실상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저도 알고 있었다"며 "제 나름대로 그 분위기를 편안하고 긍정적이며, 차분하고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그렇게 많은 경험이 없었는데도 상당히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가 직접 영어로 대화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김 총비서가) 영어를 직접 사용하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아듣는 것 같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국무부에 입직해 16년 7개월간 근무하며 언어서비스국 국장까지 올라 미 연방정부 최고위 공무원단인 SES(Senior Executive Service) 소속으로 활동했다. 국무부 언어서비스국 국장은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행정부 최고위 인사들의 외교 현장에서 통역·번역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으로, 수십 명의 정규직과 약 1000명의 계약 통·번역 인력을 지휘하는 자리다.

올해 2월 국무부에서 은퇴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경주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회담이 이 전 국장의 마지막 정상회담 통역 업무였다. 은퇴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친필 서명이 담긴 감사 서한도 전달됐다.

그는 과거 미국 대통령 통역 경험과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답게, 문장이 법률문서처럼 길고 복잡해 논리 구조를 끝까지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생각의 속도가 빠르고 화제가 갑자기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 화제가 전환되는 경우도 그냥 전환되는 게 아니라 연결고리가 있는데, 그러한 연결고리까지는 나에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라는 의외의 평가도 전했다.

통역 과정에서 난감했던 사례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통역했던 '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라는 말을 통역한 사례를 들었다.

이 전 국장은 "그분(바이든)이 자주 쓰는 표현이었는데, 그게 통역이 그렇게 쉽지 않았다. 너무 강하게 '미국과 반대편에 서지 말라'라고 전달하면 그 즉시성이라는 것이 굉장할 것이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낮춰서 얘기를 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편에 서지 말라고 했다'면서 난리가 났는데, 그것을 한국 외교부가 '통역의 잘못'이라고 했다"며 "너무 화가 나 주미대사관에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느냐 따졌고, 기자회견까지 하려고 했지만, 이것도 통역의 역할인가 싶었다"고 회고했다.

통역 업무에 대해 이 전 국장은 "영어를 잘하는 것과 외교통역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며 "외교통역은 메시지의 핵심을 뽑아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무로 치면 중심 줄기와 가지, 잎을 구분해 전달해야 한다"고 비유했다.

이 전 국장은 "단어 하나하나가 매우 신중하게 선택되기 때문에 통번역 분야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리스크가 커 기성 통역사들이 오히려 외교통역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실수하면 평판과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는 현재 국무부에 한국어 통역 정직원은 1명이며, 계약직은 10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외교 관계에 따라 언어 수요가 크게 변한다. 우크라이나처럼 갑자기 수요가 급증하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국장은 부친(이재우 씨)이 이란 주재 무관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어린 시절 이란에서 생활한 경험도 소개했다. 그는 "당시 이란은 한국보다 더 잘사는 느낌이었고 유럽 같았다"며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는지 직접 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AI 시대 통번역에 대해서는 "기술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AI 번역은 너무 자연스러워 오류를 놓치기 쉽다. 국무부의 경우 반드시 직원들이 감수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무부가 오래전부터 AI 등 기술을 통번역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고 설명하며, 기술 도입은 이미 진행 중인 흐름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술을 받아들이되 인간이 책임 있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국장은 "앞으로 워싱턴DC에서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2월 2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이 TV에 중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뒤로 이연향 통역사의 모습이 보인다.(YTN 캡쳐) 2019.2.28 ⓒ 뉴스1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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