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에…외통수 몰린 美 중동 안보전략 [최종일의 월드 뷰]
- 최종일 선임기자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미국의 중동 전략 핵심은 이란 고립과 이스라엘-걸프국 연대로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국들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안보 우산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란 전쟁의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중동 안보 지형은 어떻게 재편될까.
2019년 9월,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시설을 공격했다. 사우디는 매년 수백억 달러를 국방비로 쏟아부었지만, 저가형 드론과 순항미사일 몇 기에 핵심 심장부가 뚫렸다.
이에 따라 전체 산유량의 절반이 일시적으로 감소했고, ‘석유 ↔ 안보’ 계약의 불완전성이 드러났다. 사우디는 자체 방어력 강화와 지역 안보 전략 재검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는 전쟁의 위기감과 동시에 비공식적 외교 노력도 이어졌다. 양국 모두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에서 미군 드론 공격으로 살해되면서 화해 시도는 중단됐다. 당시 이라크 총리는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이란은 극도로 분노했고, 미국과 동맹국을 향한 보복 위협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미국이 꺼내든 카드는 '아브라함 협정'이었다. 미국은 같은 해 8~9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의 수교를 중재했다. 목표는 이란 고립과 수니파 국가·이스라엘을 묶는 안보 환경 구축이었다.
하지만 중동 상황은 미국에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UAE는 2022년 8월 테헤란 대사관을 재개하며 이란과 직접 소통 채널을 열었다. 이는 ‘헤징(Hedging, 위험 회피) 전략’으로, 더 큰 충돌을 피하고 오판으로 인한 전쟁 가능성을 낮추려는 선택이었다.
특히 2023년 3월, 사우디-이란 외교 관계 수립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재국은 중국이었다. 아람코 시설이 계속 공격받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중국을 끌어들여 ‘안전 보장’을 확보하고, 경제 개혁을 위한 안보 우선 전략을 택했다.
그러다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전쟁이 터졌다. 아브라함 협정 확대 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였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하마스 시설을 집중 공격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사우디는 내부 여론과 외교적 부담으로 수교 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이스라엘은 전선을 확대했고, 군사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2025년 9월, 이스라엘은 도하에서 하마스 지도부를 정밀 타격했고, 카타르는 강력히 반발했다. 특히 카타르는 중동 최대 미군 기지를 보유한 미국의 핵심 안보 파트너였지만, 미국 방공망이 공습을 저지하지 않은 사실은 걸프국들에 큰 공포를 안겼다.
이 직후, 파키스탄 총리가 도하를 방문하며 강력한 연대를 과시했다. 이는 사우디-파키스탄 간 전략적 상호 방위 협정(SMDA) 체결과 ‘이슬람 나토(NATO)’ 구상 논의로 이어졌다. 걸프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영향력에 대응해 이란과의 협력 가능성도 모색했다. 이란 전쟁 직전, 이집트와 이란은 대사급 외교 관계를 복원하며 소통을 공식화했다.
찰스 프리먼 전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는 언론 기고문에서 “미국-이스라엘 공격 이전, 걸프 아랍국들은 이스라엘 군사 패권에 맞서 이란과 어떤 형태로든 연합을 모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28일 시작된 이란 전쟁은 이 같은 흐름을 뒤흔들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본토를 공격할 경우 주변국과 미군 기지를 공격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격 공습을 단행하며 중동을 전쟁의 불길로 밀어 넣었다. 이란 고립을 넘어 레짐체인지까지 노렸다.
전쟁 초기 미국의 한 싱크탱크는 “사우디·UAE의 이란 긴장 완화 노력이 수포가 되었고, 이란은 실존적 군사 위협으로 재정의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러한 공격은 걸프 국가들을 미국 쪽으로 더 밀착시키고, 이란을 지역에서 고립시킬 가능성을 높인다"고 봤다.
이 보고서대로라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을 시작하면서 염두에 뒀을 여러 성과 중 하나는 결실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걸프국들은 현재까지 여전히 헤징 전략을 유지하며, 전면 충돌보다는 제한적 공세 작전을 선택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립안보연구소(INSS) 요엘 구잔스키 연구원은 “미국 장기 안보 공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이스라엘과 공개적으로 손을 잡는 대가는 너무 크다. 따라서 걸프국들은 이란과의 다리를 완전히 끊지 않고 전쟁을 지원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걸프 국가들이 직면한 더 광범위하고 중요한 질문은, 한때 현상 유지를 지키는 안정화 세력으로 여겨졌던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현상을 타파하려는 주체가 됐으며, 따라서 지역 안정의 위험 요소가 된 것이 아니냐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걸프국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미국에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다. 이란의 공격 역량을 물리적으로 무력화하고, 걸프 안보의 숨통을 틔우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이스라엘을 배제한 안보 구상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점은 전쟁이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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