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뉴욕타임스와 워런 버핏의 응원을 받다

(서울=뉴스1) 진성훈 국제부 부국장 = "요즘 같은 세상에선 쿠데타도 못해."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후였나, 아니면 인터넷과 PC통신에 황홀해하던 때부터였나. 하여튼 꽤 오랫동안 잊을 만하면 술잔 넘어 누군가 한 번씩 그런 비슷한 말을 했다. 은밀한 군부대의 기동 같은 건 꿈꾸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말을 믿지 않았던(혹은 듣지 못했거나) 누군가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서울 도심에 보내기는 했다.
그날 밤 스마트폰을 비롯한 신문물은 쿠데타 시도를 저지하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 소셜미디어(SNS)로 국회 앞 상황이 실시간 중계됐고, 분노한 시민들이 몰려들어 병력을 막아섰다. 스마트폰을 쥔 누구나 미디어이자 인플루언서, 활동가가 되는 세상이다. SNS로 꽃피운 집단지성이 공동체를 지켜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모두가 미디어 역할을 하고, SNS가 대세가 되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뉴스는 세계 어디서나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미국인(18~29세) 76%가 SNS에서 뉴스를 접한다고 말해 언론사 홈페이지(60%)에서 본다는 응답보다 많았다. '틱톡'으로 본다는 응답이 43%로 가장 많았는데, SNS로 본다는 그 뉴스에는 '뉴스인 줄 알았던' 것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그 많던 주산학원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고, 삐삐가 골동품이 됐듯, 뉴스를 다루는 언론업도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지는 중인지 모른다. 모두가 행복하다면야 크게 미련 가질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언론이 사라지면 누가 가장 행복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후 미국 대다수 언론들은 매 순간 혹독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돼지" "멍청이"라고 막말을 쏟아내는 것은 원래 품성이 그러려니, 침 한번 꿀꺽 삼키면 그만인데, 기자들이 더 예민해지는 건 트럼프가 쏟아내는 무수한 거짓말들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국정연설 같은 중요한 장면에서 뉴욕타임스나 CNN 등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 발언 중 사실이 아닌 부분을 조목조목 정리한 '팩트 체크' 기사를 곁들이곤 한다. 같은 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대견스럽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순간도 된다.
욕받이 신세 멸종위기종 무리를 이끄는 뉴욕타임스(NYT)의 사주이자 회장·발행인인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가 최근 직접 NYT 자체 제작 광고에 나와 "독자적인(original) 보도에 전념하는 모든 언론사를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NYT는 작년에만 디지털 구독자 140만 명을 추가해 연말 기준 전 세계 구독자가 1278만 명에 달한,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대표적 신문이다. 설즈버거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언론, 특히 지역 매체의 붕괴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의식을 강조해 왔다. 정치 권력과 사회 감시 역할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한낱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언론사 사주가 다른 매체라도 괜찮다며 구독을 요청한 건 이례적이다.
3월 2일 첫 선을 보인 설즈버거의 이 육성 광고는 "지원이 절실한 지역 신문이라면 더욱 좋고 (NYT가 아닌) 다른 전국지 또한 매우 좋다"며 "만약 NYT를 지원해 주시면, 우리는 그 돈으로 기자들을 현장에 보내 인공지능(AI)은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사실과 맥락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마치 "군자금을 보태주시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하겠소" 하는 비장함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다. SNS 세상에 넘쳐나는 부정확한 정보들 사이에서 등대 역할을 해줄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선 기자들이 현장에 가야 하고, 그러려면 이를 든든히 밀어줄 언론사가 필요하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지난해 12월 31일부로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지난해 4분기, 마지막 신규 투자로 NYT 주식 507만 주(현재 주가 기준 약 4억 달러)를 매입한 사실이 지난달 공개됐다. 버핏이 무너지는 신문 산업에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등을 돌린 지 6년 만에 신문을 다시 들었다.
특히 단순히 수익성 좋은 미디어 종목 하나를 발굴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월가의 시선에 마음이 쏠렸다. 넘치는 정보로 인한 언론의 위기로 '신뢰받는' 언론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을 받는 순간이라는 평가다. AI발 허위 정보들에 맞설 해답도 설즈버거가 강조하듯 '현장'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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